(3) "혀의 말로써 따르는 복과 저주"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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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창순성도 작성일24-04-01 23:18 조회4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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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2장에 ‘군사로 다니는 자’라고 했습니다.
요1:12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그러면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좋은 씨를 뿌리셨
다고 하셨으니, 좋은 씨는 예수님 자신을 말씀한 것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말씀이요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씨가 싹터 자라서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향하신 뜻이니까요.
그러면 자신이 이 좋은 씨를 받은 밭이면, 그 속에 있는 것이 표현되어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좋은 씨를 심었는데 그 속에서 부정적인 것이 나오는
것이라면, 좋은 씨가 심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집
이면 그 집에는 누가 계셔야 합니까?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이 주인으로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집의 역할인 나는 문, 곧 입을 열면 집주인이
보여야 하고 집주인이 나와야 하는 거예요. 입의 언어가 긍정적인 것의 열매가
되어 나와야 하나님의 집이지 않겠습니까?
그다음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이라’고 했으니,
사신은 대사라는 말입니다.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서 외교 하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가는 것이니 본국의 지시대로 공식적인 말을 해야
지 만일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거 처벌을 받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하는 사신이면 우리 입에서 무엇이 나가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설명이 필요 없잖아요.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으니 내가 편지면 사람들이 나에게서 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읽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합니까? 또 군사로 다니는 자라 했으니 영, 혼, 육체가 영적 전투에 갖춰야
할 무기가 무엇인지 저의 말씀을 들은 것이면 여기에도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면 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는 것이 여러분 그냥 쉽게 “아! 예수님 영접합니다.
이름을 믿습니다.”하는 것으로 자녀의 권세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 권세는 성영님과 함께 온 천사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엇으로 배가 불러있으며, 만족하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여전히 부정적인 말이 입에 있다면 그 속도 부정적인 것에 지배
받고 있다는 증거이잖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찬송가의 가사들도 개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왜이겠습니까?
물론 기존의 가사도 하나님 말씀의 뜻에 합당한 가사도 있고, 영감으로 된 가사
도 더러 있어서 기쁜 찬송이 된 것은 있지만은, 그러나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아주 잘못된 인본의 가사, 사람의 양심에서 난 가사가 많이 있어서 고치지 않으
면 안 되었지 않습니까? 과거에 제가 불편한 가사들에 대해서 고민이 크게
있었는데, 어느 날 성영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혼에
맞는, 인본에서 나온, 인간 양심이 만든 가사가 되었고, 또 이미 주셨고 이루어
졌음에도 이루어 주시라고 구약을 가사로 하여 찬송한다고 하니, 도무지 시대적
감각도 없어 ‘믿음의 능력이 서지 못하고, 사람들의 영혼이 도무지 영의 믿음으
로 돌아올 수가 없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저 다 자기감정과
기분에 취하여 부르는 것이 되어 하나님과 상관있는, 받으시는 찬송이냐 하는
것은 놔두고라도, 자신들이 바른 믿음, 영의 믿음으로 올라설 수 없게 하는 것을
도무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성경적이지 않고 영적이지 않은 그것을 입으로 부르니, 그것이 입의 열매가 되어
사단이 영광을 받는 사단의 찬송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관계로 열릴 수가
없는, 성영님이 친히 사람들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되어 있
다고 했습니다. 인본의 양심에서 난 것들로 가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뿐더러
그것을 모두가 종교심의 감정으로 부르도록 사단이 영의 눈과 귀를 다 막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개사한 이 찬송가 가사를 마음의
감동으로 받는 영의 사람은 극히 드물 뿐~ 영으로 받아야 하는데~ 영으로 받지
못할 이 종교인들이 자기의 흙 대가리, 죄로 아주 캄캄한 그 머리에 가진 고정관념으로 우리의 찬송을 대하면서, 이단이니 삼단이니 비난하고 이단으로 몰아붙이
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그런 구약적인 인간 양심에서 난 초등적인
것과 같은 어린아이의 찬송을 언제까지 부를 수는, 더는 부를 수는 없습니다.
아멘! (중략)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창세기에는 여러 사람에게
계속 말씀으로 ‘언약’하시고... 신9:11-15절에 약속을 ‘돌판’에다 새기고...
신28:58, 신31:24, 25절에 ‘책’에 기록하여 궤 옆에 두었다고 했고...
왕상8:9에, 역대하6:11절에 돌판에 기록한 것을 ‘언약궤’에 넣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셨고... 히8:8절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언약’을 두셨고...
히9:18절에 ‘언약을 피로 세우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성영님의 강림이 최후의 언약입니다.’ 이 모든 언약을 가지고 오셔서
이루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세요.
그다음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언약의 모든 말씀을 또 가지고 오신 분이
누구예요? 성영님이세요. 예수님께서 수천 년 동안 언약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그 이루신 그 모든 언약의 뜻을 내 안에 가지고 오신 분이 바로 성영님입니다.
그래서 히8:10절에 ‘언약을 우리 마음에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성영님이 그 모든 언약을 가지고 오시니 우리 마음에 기록이 되었다.
기록을 했다고 말씀하는 거예요. 예수님 피 흘리실 언약으로 구약의 모든 언약을
한 점으로 모으시고...이 모든 것을 성영님에 의해서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전 언약의 역사이기 때문에 신약과 구약은 천육백 년
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서로 만난 적도 없고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쓴 책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 강림은 최후의 언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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