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3.12.10. 주 예수님의 날 예배 때 권면하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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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창순성도 작성일23-12-13 17:33 조회1,9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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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길(마16:25)을 스스로 택하여 갑니다.
예배당 열심히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중심,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믿음에 대한 것이든~ 자기 삶의 것이든~
자기가 구상하여 속에 갖고 있는 그것을 마음에 중독되듯 굳게 지키고
있는데~ 많은 세월 흘러도 그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또 자기 속의
거짓이 스스로 드러나진 것 같으니 마음들이 자유하지 못하고 말씀
앞에 있을 수가 없는 영의 상태가 차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무엇인가
마음 귀퉁이에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같은 것,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불만 같은 것이 도사려 있게 되니 그것이 무엇으로 나와? 나는 마음에
자유가 없다! 입니다. 자기 속이 어두우니 그 어둠이 겉으로 나타난 것이
지요.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지 않으므로 자라온 그 어둠의 것을 자
기가 스스로 알거나 깨닫지를 못하니 절대로 그 속에 자유가 없는 것,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근원인 그 마음이 없는 육의 사람이라는 것이 사실은
또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육의 욕구들을 붙잡고 지키고 있던 그것이
자기 믿음의 길이였던 것이지요. 믿음 생활의 열심과 자기가 주체가
되어 육으로 말씀을 듣고 성경을 아는 것에 온전히 힘쓰니 결국은
바리새인이요 서기관인 그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자기 기대가
채움받기를 바랐고, 만족이 있어야 하는데 안 되니 만족함이 없다!
여기 말씀은 자유가 없다! 라고 말씀이 문제인 것처럼 이유로 삼으니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 믿음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영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적 능력이 될 수도 없고 힘이 될 수
도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들에게 믿음에 힘 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영을 다 믿지 말라'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또 결론을 말씀하여
주셨으니 말씀대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가
뭐냐? 가시와 엉겅퀴는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거~ 이거 창조의
이치고 영적 진리이지 않습니까! 아멘! 영적 이치고 진리이죠! (아멘)
열매를 보면 안다는 말씀! 이것을 어떻게 부인하겠어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어떻게 거부하고 남 탓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영상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성영님이 바로 잡아주시고 우리 믿음이 무엇인가를 계속 가르쳐 오신
것을 여러분이 듣고 보셨잖습니까? 오늘도 예배 오기전에 성영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속임에 속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을 계속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같은 말이긴 해도 그것에 대한 지각을 가지고
속지 않고 깨어있게 하시려고 자꾸 반복하여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중에서도 더욱 생명의 근원인 네 마음을 지켜야 하는데 뭔가 자기
생활에 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더 갖고 싶은 것이 있고~ 여기 예배
올려면 교통비도 들여야 되고 돈 들잖아요! 그러니까 좀 넉넉해서 걱정
안 하며 다니고 싶은데 분명히 보이는 뭔가가 확실하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 것들에 마음을 늘 뺏기고~ 휘둘리고 그것이 삶의
근본도 본질도 아니고~ 염려에 매여야 할 것이 아닌 것에 습관 붙어
버려서 염려에 매여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냥 마음에서 깨끗이 내려놓지 못하는 이런 것들로 인해 영적인
능력인 신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는 것을~ 오늘 아침에도 지적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같이 세밀하신 성영님의 간섭하심이
저에게는 말할 수없는 감사요 기쁨입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영광돌립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오셔서 성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이게 다 영적으로 살아야 하는 신약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전에 관계된 가르침의 말씀으로 믿음의 법입니다.
그러면 심영이 가난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성전 과정에서 어느 곳에
해당할까요? 물두멍이 아니고 번제단이에요. 번제단!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죄 없는 짐승에게 내 죄를 전가하여 죽이는 것을 통해서
나는 죄인이구나! 이 죄를 어찌할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살 가망이 없는 부패한 자요 타락한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하늘 들어가는 생명이 없으면 하늘 의가 없으면 빈껍데기로 지옥
불에 떨어질 것 밖에 없는 존재구나. 생명이신 예수님이 없으면
안 되는 영이 비어 있는 가난한 자로구나! 이것을 아는 것이 심영이
가난한 자인데~ 바로 그 번제단에서 이 같은 자기 실체를 알라는 거야
알라! 이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 번제단이라는 말입니다.
이 같은 자기 실체를 알 때에 어찌 물두멍의 씻어야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으며 율법이라고 대적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없게 하려는 사단의 종자들의 말입니다.
저는 더 씻을 것이 없나를 기도하며 씻어야 할 것을 더 씻고 싶은
거룩함을 원하고 거룩한 심영이 되기를 크게 원합니다.
씻는 것에 온 갖 변명과 이유와 반박하는 그런 꽉 막힌 굴뚝 속과
같은 쪼잔한 유들과는 나와는 격이 다르니 이제부터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크게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천국의 속성인 하나님의
거룩에 들게 하시려고 그 능력에 서게 하실 천국의 말씀을 보내셨고
깨닫고 능력에 설 수 있는 오랜 세월동안의 기간을 주셨습니다.
이 때에 그 능력에 서지 못한 것이면 가망 없는 자로 분별이 될 것밖
에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우리말로는 복이 있나니~로 해석되었지만 원문의 뜻은
‘행복하여라!’ '행복 자다' 라는 뜻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왜? 네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듣고 알게 되었으니 너는 행복 자로
천국이 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몰려든 유대인들을 앞에 앉히시고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의 말을 들으려고 내 앞에 왔으니 복 있는 자들이라,
심영이 가난한 것을 아는 자는 복이 있다. 번제단 말씀을 하시는거야!
그걸 아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이기에 행복 자다.
그리고 결론에 가서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
라, 그에게 온전한 천국이 된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셨으니 이제 예수님의 의를 나타내며 사는 하늘의 신분이 되었으니
예수님의 그 의로 살려하니 같이 사는 부부라도 믿지 않는 쪽이 핍박하는
것 아닙니까? 서로 믿는 것이 다르면 핍박하지 않느냔 말이에요!
그리고 같이 어울려서 세상의 오락과 유흥을 즐기며 살았는데 예수님을
믿고보니 다 죄구나! 하고 돌이키니 비난과 조소를 받게 되고 핍박을
받잖아요! 그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행복하여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결론이에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아멘!
애통하는 자! 이것은 성전의 과정에서 어디에 해당할까요?
물두멍이에요. 물두멍! 하나님 말씀에 나를 비춰보니, 이게 다 씻어야
할 죄들이에요. 행하고 사랑한 모든 것이 다 죄로 걸려드니 씻어야 할 것들
이예요. 씻어야 할 죄들을 보고 애통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용서 받았으니 예수님의 피를 사랑하여 의롭게 살아야
되는데~ 또 죄를 짓는 자기를 보고 애통이 나오잖아요! 죄를 볼 때마다
애통하잖아요! 그것들을 씻어야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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