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3.05.14. 주 예수님의 날 예배 때 권면의 말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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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창순성도 작성일23-05-17 22:10 조회2,2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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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와 같이 독자~ 독생자 예수님을 그렇게 죽음에 내주신,
십자가의 형벌에 내주신 그것을 예표 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것을~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에 대하여 눈을
열어보고 바로 내 떡, 십일조를 드리는 이것이 함께 언약 안에 들게 된,
예수님과 생명의 언약 관계가 맺어진 그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지
목사에게 돈 내는 것처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제가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이뿐만 아니라 교회의 소속이 된 성도는
어느 한 사람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에 들어온 지체이니 모두가 다 예수님의 지체예요.
그 지체들에게 성영님께서 각각 주신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그 은사대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을~ 은사대로~~
그렇기에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목사 위해서 한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목사 위해서 한다고 하는 것, 저 안 받습니다. 받을 수가
없어요. 받을 자격도 없고, 그러니 목사 위해서 한다고 하는 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 되고 또 목사가 그걸 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상을 줄 수도
없어! 우리는 예수님의 몸 안에 든 지체이기 때문에 지체로서 믿음의
일을 서로 협력해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예요. 아멘!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지~
우리가 십의 일을 내는 것도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의 떡!
내가 목숨 살기 위해서 수고하잖아요! 내가 직장을 다니는 것도,
내가 농사를 짓는 것도, 내가 먹기 위해서~ 육체가 사는 떡을 얻기
위해서, 육체는 먹어야 하니까~ 그래서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 떡을 예수님께 나도 드림으로 인해 서로 화목이 이뤄지는 거예요.
언약의 관계에 함께 들고, 화목하기 위해서 그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드렸으면, 믿음으로 드리는 그 자신은
하나님아버지의 이 같은 계시의 언약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자기도 이제 예수님 안에 들어갔으니 예수님이 또한
내 안에 오시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 내 목숨의 떡을 믿음으로 올립니다.
했으면 이제 드린 그것으로 그 관계는 끝나야 하는 거예요. 아멘!
했으면 끝나야 되지~ 교회가 무슨~ 돈을 어디다 썼냐? 뭐 했냐? 따져
보려고 하는 것, 헌금의 주인인 것처럼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진정
자기에게
복이 되게 하려면 이런 것은 마음속에도 깨끗이 없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권면했던 내용에서 했던 저의 얘기에 대해서도 여러분이
좀 알아들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자기는 목사 하는 일
이해가 안 된다. 한다든지 이해 해보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자기가 목사를 주관하겠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이해돼야만 목사 인정하고 이해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기 주제를 모르는 인본의 교만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랬다저랬다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입장도 있었습니다.
그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일로서 여러분에게 해당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주제넘게 분석하려 들고 이간질 하는 귀신의 종노릇을
하겠다는 것으로 행동하는 것이기에 제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믿고 왔다면,
처음에 가진 그 초심대로 마음 요동하지 말고(아멘!) 목사가 운영해
가는 방식 등, 다 하나님과 목사와의 관계~ 일이니 맡겨드리고,
자기는 하나님께 드렸으면~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목사가 잘못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징계해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스려요. 하나님의 소관이에요.
하나님이 주관하세요. 여러분이 주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성도들이 주인인 것처럼 주관하고 뒤에서 비판할 수 없는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왜 여기서 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답답한 마음이 있어서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제가 지금 말한 이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시간이 가지만) 좀 더 말씀을 이어갑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
했잖아요. 그렇죠? 성영님을 받기 전에 베드로는 바로 인간으로
예수님을 사랑했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위험에, 자기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난 저 예수 몰라! 두려워서~ 두려운 마음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그게 인간이에요. 그게~ 그게~
그러니까 사람으로는 예수님 사랑 못 하는 거예요. 사람으로는~~~
사람으로 예수님 사랑! 그거는 육의 사랑이에요. 육의 사랑~
혈과 육의 사랑~ 그러니 어떻게 육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어요?
못하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져도 육으로는 사랑할 수가 없어요.
원수이기 때문에, 혈과 육은 하나님과 원수예요. 원수! 원수~ (롬8:7,
갈5:17) 선악과 사건에서 불순종했잖아요. 원수 맺은 거예요.
육으로는 하나님을 따를 수도 없고 사랑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처음 사람과 베드로를 통해 여실히 증명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와 같이 자기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는 저 사람 몰라!
하고 아주 적나라하게 예수님을 배신하여 저주했습니다.
저 사람 몰라~ 함께 안 있었어! 저주까지 했어! 저주까지~ (마26:69-74)
그게 바로 육으로 한 사랑의 결과예요. 우리 다 똑같은 거예요.
에덴동산의 아담이 곧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예수님 부인한 그 베드로도 나였구나! 이걸 알아야 하지요.
성영님이 오시기 전에 나라는 존재라는 걸 알아야 돼요.
내가 바로 그와 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살아온 자~
그리고 현재 내 목숨의 위험이 닥쳤을 땐 부인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게 육이란 말이에요. 그게 육~~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육의 연약함을~
육신으로는 예수님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보여주신 거예요.
우리에게 베드로가 모델이 돼 버렸어! 또 제자들 다 도망을 갔어요.~,
제자들이라고 다 따른 게 아닙니다. 그게 바로 피조물의 한계라고요.
피조물의 한계! 피조물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사건이 바로 그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배반한 그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그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에 넣으려고 올라가신 거예요. (롬6:6, 갈5:24)
그리고 피 흘려~ 죄 없으신 그 피로, 그런 육이 지은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그 육은 죄와 함께 죽음에 넣어 장사지내버리고 이제 성영님이
오심으로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얻어, 그 부활 생명으로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그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로 올라가신 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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