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 처녀 비유와 2023.12.10. 권면의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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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창순성도 작성일24-05-31 19:44 조회844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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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기대를 목사가 알고 채워주기를 바랐고, 만족이 있어야 하는데~
안 되니 여긴 내게 오는 복이 없다! 여기 말씀은 자유가 없다! 라고
말씀에다 그 이유를 두니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영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영적 능력이 될 수도 없고 힘이 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들에게 믿음에 힘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 '영을 다 믿지 말라'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또 결론을 말씀하여
주셨으니 말씀대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가 뭐냐? 가시와 엉겅퀴는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거~
이거 창조의 이치고 영적 진리잖아요! 아멘! 영적 이치고 진리이죠! (아멘)
열매를 보면 안다는 말씀! 이거 어떻게 부인하겠어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거부하고 자꾸 무슨 목사 탓~
말씀 탓~ 누구 탓을 하겠어요?
오늘 영상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성영님이 바로 잡아주시고 우리 믿음이 무엇인가를 계속 가르쳐 오신 것을
여러분이 듣고 보셨잖아요?
오늘도 예배 오기 전에 성영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속임에 속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여 주셨습니다.
같은 말이긴 해도 그것에 대한 지각을 가지고 속지 않고 깨어 있게 하시려고
자꾸 반복하여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더욱 생명의 근원인 네 마음을 지켜야 하는데 뭔가 자기 생활에 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더 갖고 싶은 것이 있고~ 여기 예배 올려면 차비도
들여야 되고 돈 들잖아요! 그러니까 좀 넉넉해서 걱정 안 하며 다니고 싶은데
분명히 보이는 뭔가가 확실하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 것들에 마음을 늘 뺏기고~ 휘둘리고 그것이 삶의 근본도 본질도 아니고~
염려에 매여야 할 것이 아닌 것에 습관 붙어버려서 염려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냥 마음에서 깨끗이 내려놓지 못하는 이런 것들로 인해서
영적인 능력인 신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는 것을~
오늘 아침에도 지적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같이 세밀하신 성영님의 간섭해 주심이 저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사요
기쁨입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영광 돌립니다. ... (중략) ...
믿는 세월이 오랜 자가 자기 속에서 속이는 자의 속임에 절여져서
다시 말해 ‘자아가 살아 있으면, 옛사람의 성품이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들지
않으면~ 육의 믿음에 머물러 있으면 이미 그 자신이 속이는 자요,
또 무차별 속이는 것에 또 속는 것이니, 그같이 속임에 절여져서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실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것을 침노하여 빼앗을 능력은
더더욱 없는 것이니 그의 믿음은 거짓인 것이 당연히 드러날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빼앗아 자기 소유로 해도 되는 그 자유가 없는 것을
남 탓으로 돌려야 하니 또 자신에게 속아 거짓말하는 것이지요.
속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와 있는 자입니다.
성영님이 오셔 계신 참 종자는 속지 않습니다. 아멘!
성영님 오시지 않은 자는 속이는 자요. 속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영님이 오신~ 속지 않는 영의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아멘!
(23.12.10.‘반석 위에 지은 지혜의 집과 어리석은 집’ 권면의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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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성도님의 댓글
김명준성도 작성일
어느 날 교회에 볼일이 있어 교회에 들려 볼일을 보고 차에 타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어느 성도님 두 분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들으려고 들은 게 아니라 성도님의 목소리가 제 귀에 너무 강렬하게 들렸습니다.
"인간의 죄는 연약해서 짓는 윤리적인 죄이고 사단의 죄는 연약해서 짓는 죄가 아니라 악해서 짓는 교만적인 죄라고"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4년전쯤에 정말을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는 복음을 전하기에는 저의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과 성경을 온 힘을 다해 읽기 시작했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더욱 성을 다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는게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읽어도 성영님께서 일하시지 않고 그 사람이 이 복음을 받기 원하지 않으면 나의 이 노력은 결국 헛것이구나
그렇게 목적을 잃은 노력은 점점 힘을 잃어 갔고 아버지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내가 딴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건데 왜 이것 조차 못하게 하십니까?
기도로 이런 것 조차 이루지 못하는데 내가 성경을 읽어서 뭐하고 기도를 해봤자 뭐합니까?
그냥 이제 복음도 안 전하고 저 혼자 적당히 믿고 천국 갈래요"
이러면서 말씀 읽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결국에 저 순간 했던 기도 조차 잊으며 살았습니다.
점점 말씀에서 멀어 지다 보니 아버지 뜻 안에 나를 맞추는게 아니라 아버지 뜻을 저에게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점점 저의 사정, 저의 인본, 저의 생각에 맞춰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3~4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버지께서는 저의 영 상태를 꾸준히 보여주셨는데 늘 맨발로 목적지도 없이 맨발에 걷다가 발에서 피가나던가
아니면 영적으로 벌거벗어 수치를 당하는 모습이던가 몸 여기저기에 하얀 고름이 나서 붕대로 꽁꽁 싸맨 모습 늘 안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꾸준히 죄를 짓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으로 꿈에 나오는지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받지만
세상으로 눈이 가려져 속사람이 바뀌지 않으니 수 없이 속사람이 다치는 거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도 뿌리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라고 하셨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계속 뽕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데 입으로만 뽕나무가 뿌리 뽑혀서 바다에 던지우라라고 한다고 뿌리 뽑혀서 바다에 던져질까?
분명 한두번은 바다에 던져져서 뿌리 뽑히겠지만 이게 뽑을 의지는 없고 습관적인 기도가 된다면 그래도 성영님께서 도와주실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인은 죄에서 돌이키기 위해 몸부림 치다 연약해서 결국 육에게 지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
죄인인걸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 만한다면 그건 죄인이 아니라 악한자가 아닐까?
그러면서 지금은 교회를 떠나신 분인데 그분이랑 했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세상 것을 해도 하나님이 지킬 실 것이라고 그때는 이 말이 맞는 거처럼 들렸습니다.
어차피 살다 보면 세상을 접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책임감 없는 말이었습니다.
욥기서에 하나님과 사단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단은 인간을 삼키기 위해
자그마한 권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 행동에는 자유가 있지만 자유가 있는 만큼 책임도 져야했습니다.
인본으로 예수님을 믿다 보니 사단이 매번 시험하려 들어와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얄팍한 지식으로 그냥 살기 위해 허우적거리면서
이게 앞으로 걷고 있는 건지 뒤로 걷고 있는지도 모른 체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 사람들은 전부 떠나갔고 세상에서 자랑으로 내세울 수 있던 지식들도 모두 까먹고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내 자존심마저 처참히 무너트렸습니다.
이제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초라하다 못해 비참했습니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더 숨기고 싶었고 하지만 숨기면 숨길수록 추잡해지고 비참했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예레미야 29장 12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장 18절
아버지 분명히 내가 부르짖으면 듣는다고 하셨고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십니까?
내 정신은 피폐해지다 못해 점점 미쳐가는 거 같은데 왜 말씀을 안 지키시고 계속 저를 모른 척하세요?
얼마나 더 벌거벗은 몸으로 수치를 당해야 합니까?
왜 좋은 음식이 아니라 남이 버린 음식을 제가 먹어야 합니까?
왜 제 기도는 매번 이렇게 힘 없이 무너집니까?
그러다 4년 전에 했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분명 성경 안 읽고 복음 안 전한다고 했던 것들 다 잘못한 게 맞는데 그런데 그런 것들 보다 하나님 앞에 제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제 생각을 더 높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제 감정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면서 분명 10년 동안 성전 말씀을 몇번을 읽었는데 그때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본의 것들을 가지고는 성소 안에서 분향단 위에 떡들을 먹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 악한 것들이(사단의 것들이) 가득한데 예수님으로(세마포) 옷 입을 수 없었습니다.
내 안에 악한 습성을 가지고서는 성영님이 함께 계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 요한복음 14장 18절 말씀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왜 많은 것들 중에서 고아로 비유를 드셨을까?
고아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 세상에서 버림받기로 작정한 자들
그들을 예수님께서 모른 척 안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어야 했습니다.
사단의 것들은 철저하게 버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버리지 못하니 매 순간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걸으면 다행이고 뒤로 걷고 있다면
성영님께서 깨닫게 하시기까지 얼마나 뒤로 걸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과연 내가 실낱같은 믿음이라도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기회를 주실 때 잡을 수 있었을까?
그저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고 단순히 성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성소의 믿음이 되는 법을 깨닫게 하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진희성도님의 댓글
유진희성도 작성일
김명준성도님이 쓰신 글을 읽으며,
복잡한 인본의 생각속에서 빠져나오고자 얼마나 많은 번민과 갈등을 해왔는지를 알게 되네요.
그러나, 그만큼 고민을 했다는 것은 이 레마의 말씀을 통해 성전의 믿음 되기를 소원했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결국 빛이신 이 레마의 말씀안에 있으면서 성전의 믿음을 사모하여 성영님께 아뢰며 소원하니, 성영님께서 성도님의 심영을 굳게 잡아주셔서 한줄기 빛을 잡고 나와 '성소의 믿음이 되는 법'을 깨닫게 해 주셨네요.
인본의 자아(자기지식,자기생각,자기감정)가 무너져 예수님으로 속사람이 세워지도록 명준성도님의 믿음을 도우시는 성영님께 저도 함께 감사드리며, 찬송가261장(어둔밤 마음에 잠겨)으로 삼위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