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1 - (1) 달란트 비유 (마25:14-30) (14.12.28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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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1-03 22:02 조회11,075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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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목사 (14.12.28의 말씀)
마태복음 25장 14-30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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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작성일
달란트비유의 말씀을 다시 듣는 중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 중 간혹 어떤 이들이 그런 말을 한다.
"신 목사님의 말씀은 사람을 너무 정죄하는 것 같다.
옳은 말이긴 하나 너무 다그치고 정죄하는 것 같아서 듣기가 거북하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몹시 속이 상하면서 왜 그렇게 반응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말이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자기 변명,
혹은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 달란트비유 말씀을 다시 들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새삼 다시 하게 됐고,
유대인들이 초림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배척했던 것과
사람들이 신성엽 목사님의 가르쳐 전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거절하며 배척했던 이들인데,
하물며 세상 교회가 알아 주지 않는 한 여인의 가르쳐 전하는 말은 얼마나 무시하고 짓밟기 쉬울 것인가?
어떻게 생명의 말씀을 거절하며 '정죄'하는 말로 여겨
땅(자기 머리, 자기 생각, 자기 방법, 세상 교회의 방법과 전통.....)에 묻어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자기가 선호하는 설교 스타일이 아니라며 거절하고,
목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하다며 거절하고,
적당히 융통성 있게 책망해도 될 것을 대놓고 책망한다며 듣기를 거부하고,
유명 교단에 속하지 않았다며 거절하고,
여자(성경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다며 나름 근거를 대면서...)라고 거절하고,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거절하고.....
거절의 이유도 각각 다르고 별 희한한 이유들을 대며 거절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신 목사님의 가르쳐 전하신 말씀을 들을 귀가 없다는 데 있다.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도리어 듣고 고침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에
자기 편에서 먼저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며 신 목사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25:24-25)
그들이 수천 수만 가지의 이유와 핑계를 대며 신 목사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하며 예수님을 거절했던 유대인들과 똑같다.
뿐만 아니라
"어디서 이렇게 귀한 말씀이 있었는지, 왜 이제야 이 말씀을 듣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하며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감격하며 좋아하던 이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말씀을 대적하며 떠나게 되는 것도 다 똑같은 이치이다.
그들 역시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하며 목사님의 가르쳐 전하신 말씀을 땅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26:11) 하신 말씀 그대로,
잘못된 것임을 알아 떠나 나왔으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은 것이고
돼지가 자기 앞의 진주를 발로 밟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 안의 귀신 하나를 내쫓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깨끗이 소제되고 수리된 집을 더욱 전심전력하여 지키지 못하니
나갔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소제되고 수리된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
한 달란트,
참 생명의 말씀임을 듣고 깨달았으면
그 말씀을 영접함으로 장사하여 남기면 되는 것을,
어찌 사람들이 이리도 어리석은 것인지??!!
선임님의 댓글
선임 작성일
이렇게 생명의 말씀을 왜 받지 못할까? 하는 은혜로님의 글을 읽으며 성경에서 이런 부류들을 책망한 선지자들도
참 많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은 자들은 다 멸망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성영께서 성서 곳곳에 기록하셔서 경계의 법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와 자기합리화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며 자기존재는 어떤
처지인지 알지 못하는 저희쪽의 무리들이기 때문이지요.
성영께서 주신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자기 인본이 막힌 담이 되어 있다면 도저히 받을수 없는 말씀이라는것
알수 있잖아요.
자기경험, 자기생각, 이론, 계산,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진실로 믿기 원한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어떤 뜻으로
하셨나를 가지고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나의 눈으로 보니까 그런 여러가지를 핑계삼아 듣지 않고 귀를 닫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마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이 주신 구약 율법을 통하여, 백성들이 죄를 지을때마다 짐승의 머리에 자기가 지은죄를 다 전가 시켜
생명(목숨)을 죽여서 흘린 피를 받아 성전안에 제사장이 가지고 들어가서 속죄소에 뿌리고 번제단에도 뿌리고
짐승은 온전히 태워 올리는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가 되어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복을 받도록 하신것을 통하여,
이같은 것은 모형이요, 그림자이고, 이제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나기 위하여는 완전 무결한 흠없는 피로써 낳아 주셨기에 하나님이신 주예수님이 오셔서 단번에 피흘려 완전한 죄용서를 해 주셨다는 은혜를 깨닫고 자기의 구주로 받아 드리면예수님의 생명으로 자라가는 일을 하는 것이 달란트 남기는 일인데요.
나는 죄인이요, 전적으로 부패하고, 사단과 한몸, 한맘, 이루어 하나님을 떠나 죄가, 그 자체였는데,
신성엽목사님을 통해배운 삼위의 하나님과 전적으로 죄악으로 부패한 나, 였음을 아는 성경말씀의 지식과 지혜의 말씀.
창조전부터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게 해서 영생주시려는
완벽한 구원의 계획으로 섭리하신 계시가 창세기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영께서 기록하여 주시고,
우리목사님을 통해 성영님께서 눈을열어 주셔서 말씀을 보고 깨닫게 해 주셔서
오늘날 영혼이 고침받고 치료받고 구원의 소망을 품은 구원받을자에게, 들을귀 있는 모든자에게
들을수 있게 해주신, 아버지가 찾으시는 영혼이 들을수 있는 말씀입니다.
달란트는 이렇게 죄인인 나와, 구주이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열리고 그 주예수그리스도를 더욱
깨달아 인격적인 만남이 됨으로 내 안에 주예수님의 것으로 충만하라고주신
사랑의 말씀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안으로 들어오기를 소원 합니다.
은혜로님의 안타까움이 저의 안타까움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진리의사람님의 댓글
진리의사람 작성일
저도 여기 말씀을 전할 때 겪은 반응들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정죄하지 않는다.
또는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반응들을 하길래 첨엔 무척 뜨악했습니다.
"이건 뭐지? 왜 그렇게 느끼지? 이상하다. 나는 전혀 그렇게 들리거나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러나 그들의 말이 저에게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고
그보다도 더 강하게 제 영이 제 안에서 동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훨씬 강력했기에
마치 철이 자석에 강하게 이끌려 달라붙듯이 제 이성보다도 제 의지보다도 앞서
거부할 수 없이 제 영이 그렇게 여기 말씀에 반응되었기에
저는 저대로 계속 여기 말씀으로 세워져 가는 일에 애쓰면서 달려왔습니다.
그러면서 문든문득 "왜 그런 반응들을 보이는 거지?" 하며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요사이는 제 나름대로 그런 추론을 해보게 됩니다.
그동안 거짓말씀에 속아 살아왔다는 것의 결과인 것 같다는,
즉 '정죄와 책망', '비판과 분별'에 대해 말씀에 근거한 정확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에
그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 지식이 있으면 당연히 나타나게 되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책망을 정죄로 오해하여 들어버리는,
참과 거짓을 분별해 생명과 멸망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는데도 비판으로 오해하여 들어버리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인간간에 정나누는 것, 따뜻하게 대해주고, 한없이 위로해주고, 부드럽게 다독거려주고,
하는 것 등으로만 대체적으로 각인돼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도 그와 같이 나타나야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러니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니 "뭔소린가~" 하고 도무지 알아 듣지를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작금의 기독교인들의 현주소이며,
그런데 저도 그 속에서 엊그제까지 똑같이 살았던 자였다라는 것이죠.
다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제 영이 아니라고 하는 소리에 괴로와하며
참 말씀을 찾아 헤매었던 것 말고는 똑같은 죄속에서 살았습니다.
(말씀에 대한 엉터리 지식, 그러니 모든 것이 신앙이 바로 잡히지 못하고 뒤엉키고 섞여서
혼란과 혼미함 가운데 처해 육적 본능이 시키는 대로 세상것 추구하면서
해결되지 않은 허무감에 몸부림 쳤던 지난 날의 저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남같지 않아요. 어제의 저였기에 한없이 한없이 아픔의 눈물이 솟구칩니다.
"아버지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저들을 살려 주세요. 저도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이렇게 살려주신 것처럼
저들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고 살려 주세요. 거기에 가깝게는 제 가족이 있고 제 형제들이 있고
제 친구들이 있고 친척, 이웃들이 너무나 많아요. 아버지 구해 주세요. 어찌해야 합니까?"
눈물로 통곡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제도 정말 신기하게 모든 상황을 만드셔서 복음을 받을 자를 만나게 해주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이 말씀을 먼저 주셨으니 이 말씀을 전하는 것,
참 말씀을 만났으니 이 말씀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시작도 성영님이시지만 이 후에 모든 것도 성영님께 다 맡기고 이루심을 믿고 전하며
오늘도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삼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