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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문서) 두 증인이 누구인가, 재림의 두 양상, 환난 때의 구원 (계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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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창순성도 작성일25-01-24 00:24 조회41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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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말씀을 받기 전에 모든 사람(교인)들이 다 천년시대에 들어가면 살줄 알아! 구원받을 줄 알아! 큰착각이에요~ 인간의 살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착각그러니까 맞아~ 그 천년시대에 들어가려고 피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잔꾀는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 두렵지만 그러나 마지막 기회이니 두려움에 지지 말고 절대로 목 베임 받아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니 살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든지 살아남으려고 이리저리 숨고 피하는 것은 여전히 지옥입니다. 그때는 이것이 현실이구나! 실상이구나! 이제 상황으로 증명이 됐으니 다른 방법이 없는 거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분명한 증거가~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는 그것이 얼마나 큰 다행이며 얼마나 큰 복인 것입니까?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복 복 복 그 복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복이라고~ 이것만큼 다행한 일이 세상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계시록 1315절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했으니 다 죽인다고 했어! 다 죽인다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것도 믿는 자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것이니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불구덩이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을 생각한다면 죽지 못할 것 절대 없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원한 지옥입니다. 지옥! 불못에 던져진 그 지옥! 영원한 지옥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지 잠깐의 고통을 피하려고 영원한 지옥을 택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망설인다면 영원한 불구덩이가 있으니 불구덩이에 들어가겠으면 망설여도 됩니다. 666 짐승의 표 받아도 됩니다. 지금 이 은혜의 때에 (이미 은혜의 때도 지나감이라고 지금 교회에게 선포하셨어요!) 은혜의 때에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은 자들에게 인애를 베푸사 그때에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이니, 반드시 목 베임 받음으로 믿음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것을 피하면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자기 선택입니다.잘 피하여 살아남아 천년시대로 들어갔어도 수명을 더한 것일 뿐,그것이 오히려 그때는 말로 할 수 없는, 절대로 기회가 없는 큰 저주이니, 절대로 구원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목 베임을 받을 것을 스스로 자청해야 합니다. 영원한 지옥 불구덩이의 고통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이니 자청하여 예수님의 피의 믿음을 시인하고 목 베임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강조하고 강조하는 거예요. 인식되어 행하라고죽는 것은 잠깐의 고통이에요. 잠깐의 고통! 잠깐의 고통이지만 잠깐의 그 고통을 택한다면 모세와 엘리야를 일으키신 것처럼 일으키셔서 하늘로 올리우실 것입니다. 만일에 환난에서 살아남아 천년시대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요. 구원 없어요. 환난에 남은 자에게 지옥이냐 구원이냐 절대 절명의 일이 걸린 것이기에,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제가 거듭거듭 당부하여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장에 환난 때 남은 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보이도록 하셨고 천년시대의 상황도 이미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다 예언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하지 않은 말을 제가 또 하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천년시대에 들어가서 100살에 죽은 것을 아이라! 저주라고 했어요. 아이라! 저주라고~ 우리 6517절에서 20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천년시대의 일이예요.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 시대로 들어가는, 예수님과 함께 심판하러 지상에 온 휴거된 성도들은 이 천년시대에 들어와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 기쁨이 영원하고 즐거울 것이다고 말씀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이제 천년시대의 이야기죠. 백세에 죽거나 못 되어 죽으면 뭐라고 한다고 했어요?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말했어요. 저주를 받은 것이라그것은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입니까? 구원의 때, 은혜의 때, 지금 이 구원의 때 은혜의 때를 지나 기회 주신 또 마지막 구원의 때까지도 지나갔으니 이후는 구원의 기회가 없어 저주라는 말이에요. 사단의 저주를 가진 자라는 말이예요. 그리고 아이겠고~ 지각이 없는, 눈 앞의 것만 보고 잡으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사리분별력이 없는 자라는 말이예요.  

 

래서 아이들이라도 말입니다. 자아 성립이 된 아이들이 천년시대에 들어가면 저주입니다. 그 시대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은 천년을 사는 것입니다 천년시대이기 때문에~ 천년을 살아~ 천 살까지 사는 거예요. 그런데 환난에서 살아서 들어간 자들은 100년 안에 다 죽습니다. 죽는 그들은 저주라, 사단의 말을 따른 자들이라, 그래서 아이라 한 것은, 종말의 믿음에 대한 지각이 없는 자라, 지각이 없으니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분변 못하고 천년시대로 들어가면 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나 은혜의 때에 있던 자들이 천년시대에 들어가서 구원받을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백세 못 되어 죽으니 저주입니다

 제가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전하는 목사들의 외침이 한참 요란했을 때 그 말 속에는, 또 환난에 들어가서 살아남으려면, 환난을 대처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환난 때, 짐승의 표 받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통조림, 물, 불, 양식 등을 미리 준비하라! 저런 오지 등 찾을 수도 없는 곳에 가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 7년만 잘 견디면 된다는 식의 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말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종말의 때에 심취되어 있는 사람들의 말들이에요. 그래서 저도 그 얘기를 듣고 그래야 되는 것인가? 그러면 이런 것들을 성도들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뜻을 성영님이 밝히 비추어 보게 하시니 그렇게 말하는 것들은 다 사단의 작전에 따른 인본의 꾀요, 전부 다 예수님이 없는 자들이 제 목숨 살기 위해서, 목숨 부지하려고,목숨 때문에 목숨 부지하려고 만들어 낸 인간의 잔꾀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나 예수님이 없는 성영님으로 믿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의 속이는 망할 꾀라는 것입니다.

 

만일 들림받지 못했으면 거기에 답은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답은~ 믿음을 시인하고 사단에게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음으로써 사단에게 목숨을 내놓으란 말입니다. 내놓음으로써 모세와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살리심을 받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환난의 때에도 구원받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자들이 많이 있어요. 그 증거의 말씀이 마2431절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하셨고, 계시록 713절,14절에 우리가 지금 읽은 그 이하 내용입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입니다. 2431절7년 환난에서 나오는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은다는 말씀이고, 계시록 7장은 사방에서 모은 그 영혼들이 하늘에 올라와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휴거될 줄 알고 있다가 남겨진 자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죠. 이때 구원받는 자가 많은 것은, 남겨진 자가 많이 있다는 그런 의미이죠. 목사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한 것을 스스로 잘 믿는 것으로 여기며, 구원받을 줄 믿고 있다가 남겨진다면 이 얼마나 기막힐 일입니까? 이 얼마나~ 두려움에 정신을 잃고 까무러칠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안 믿어지는 거예요. 왜 내가? 왜? 왜 내가 남아야 돼? 내가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무엇이, 내가 지금, 들림받지 못할 이유가 뭐야? 하고 화가 나는 거지요. 화가~ 그러니까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믿었는데 남겨진 자신을 보고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의 마음이 일어날 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정말 정말 안 돼요!

 

가인이 선을 행치 아니한 자기의 악을 보기보다는~ 자기 악을 보지 못했어! 그런데 자신과 제물을 열납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심히 분하여 하고 안색이 변한 것처럼 그때도 그럴 것이다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 가인의 제사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들림받지 못한 거예요. 그렇기에 들림받지 못하였음을 직시하고, 정신차려 남은 자들과 함께 서로 힘을 같이 하여 죽이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말고, 믿음을 시인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구원받는 것이니 혹이라도 정말 혹이라도 말입니다 마리아가 신약 성도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당부를 하였던 것처럼, 저는 오늘 당부하기를 누구든지 혹이라도 남겨진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믿지 않은,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제 힘(목숨)을 다해 제 명예를 다해 당부하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어야 다시 사는 것이니 환난의 때는 하나님의 이삭줍기와 같은 구원의 기회라는 것,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을 반드시 알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당부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16장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 진리예요. 우리는 육이 죽으러 왔어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으로 언제 죽어도 다 죽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환난 때는 예수님을 위하여서의 죽음은 아니지만은 그러나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으니 제가 거듭거듭 강조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죽음을 받아들여야 삽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지금 이때에 구원받은 믿음이 되어 예수님 강림하실 때 다 올라가야 한다는 것, 지금 이때의 구원의 기회가 또 우리에게 있으니 말입니다. 이 말씀을 또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하신 사명으로 받고 성영님 의지하여 말씀으로 사는 그 믿음이 되는 것에 목숨을 다하기를 참으로 바라면서 

오늘 저는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난 증인으로서의  속지 않게 하기 위한 증거가 될 말씀으로, '두 증인이 누구인가,' '예수님의 재림의 두 양상'과  '환난 때의 마지막 기회주신 구원의 법'에 관하여서 증거의 말씀으로 전하였음을 말씀드리면서 모두가 믿음으로 받으신 줄로 믿고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성영님을 보내주시고 오늘도 속지 않는 믿음이 되도록 말씀의 복을 주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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