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5 - 선을 택한자와 악을 택한자 (창4:1-22) (14.01.12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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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3-28 02:40 조회12,109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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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 목사 (14.01.12의 말씀)
창세기 4장 1-22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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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박사님의 댓글
열쇠박사 작성일
삶의 모습.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 성경에서 말씀하신
가인의 길과 아벨의 길? 그것이 이런 뜻이었군요. 하나님의 경고에도 아벨을 죽인 가인. 무지막지한 사탄의 행위.
선과 악의 분별력을 주옵소서.
가인의 마음이 들지 않도록 죄를 다스리는 능력을 입혀주소서.
임영희성도님의 댓글
임영희성도 작성일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인간에게는 선의 길과 악의 길, 두 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도 알고 사단도 알게 된 사람은, 선이신 하나님을 따를 것이냐 악을 따를 것이냐 선택해야 하는 자기 의지에 대한 책임이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타났는데
한 사람은 선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이 집중되어 선의 길을 따른 영의 사람으로
또 한 사람은 육체를 위해 사는 것에 집중되어 악의 길을 따른 육의 사람으로 나타났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표적에 맞힌 하나님의 생각을 드렸음으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표적에 맞히지 못한 자기 생각을 드렸음으로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고, 또한 그것을 하나님은 죄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선이신 하나님을 택하라는 것이지 악의 길을 택하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요, 소원입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의 피로 말미암아 내게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를 아버지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로 영광 올려드립니다.
백창순성도님의 댓글
백창순성도 작성일
"믿음은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고 그다음 예수님(삼위 하나님)을 알고 더 깊이 알아 관계를 맺고 사랑하여 따르는 일에 힘쓰고 애쓰는 노력이 있느냐 또한 삶의 중심, 삶의 목적, 삶의 표적을 영과 육, 하늘과 땅 어디에 두었느냐로 그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드러나 보이게 됩니다. 만약 믿는 자의 삶이 하나님의 표적에 맞히지 않으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았다는 수천 번의 고백을 한다해도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자기의 죄악을 대속한 피와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표적에 맞히는 삶은 그 생명이 하나님의 것임을 보이는 증거이니 그와 그의 예배(헌금)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바로 선(하나님과 그 계시를 따른 삶)을 택한 아벨과 악(자기와 자기의 생각을 좇은 삶)을 택한 가인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이 창조 때의 일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요, 의지요, 선언입니다. 그것을 배우고 알아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믿음과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신이 지금 어느 쪽인지? 아벨인지 가인인지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날 예수님 믿는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님이 누구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자기의 창조주 예수님을 모르면서 자기의 실체가 영적 존재라는 걸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또한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 받았단 말은 하나 어떤어떤 피를 흘리셨는지 모르니 자기가 왜 죄인이며 하나님께 어떤 죄를 범했는 줄도 모를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짓는 죄들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죄 사함의 피에 대해서,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눈꼽만큼도 관심 없습니다. 그러면서 땅에서 부요하고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잘 믿고 있는 증거라 배워 알고 또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 지식(생각)에서 난 것이나 인본의 머리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한 것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그래서 가인의 믿음이요 땅의 믿음입니다. 가인은 자기가 벌거벗은 영적 존재(실체)라는 것과 하나님 중심의 삶과 피로써 화해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아담(아빠)이 전해 준 구원의 언약과 계시의 말씀을 아벨과 달리 그냥 가볍게 여겼기에 오직 흙의 자아 곧 자기에게서 난 생각과 기준으로 삶의 길을 택하고 또 하나님께 제사한 흙에서 난 머리 믿음, 혼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육의 자아에 친숙하고 흥미로운 땅의 것들, 흙에서 난 각종 정보들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혼의 말씀으로 홍수를 이룬 이 어둡고 패역한 환경과 세대 가운데 있던 제게 레마의 말씀을 보내셔서, 선악과 먹은 에덴의 처음 사람과 그 영에 새겨 넣으신 여자의 후손 언약, 용서와 생명의 구원 언약이 기름처럼 흐르게 하사 마침내 제게도 구원의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곧 창조와 에덴에 넣으신 뜻과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독생자 언약과 또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과 메시아 언약과 성전과 제사를 통해 계시하시고 가르치신 뜻이 성영님으로 저의 믿음이 되게 하신 삼위 하나님께 그 완전하신 사랑과 크신 은혜에 감사와 감격으로 찬양(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윤혜선성도님의 댓글
윤혜선성도 작성일
아벨은 부모의 신앙의 가르침대로 여자의 후손이 오실 때까지 어린양을 죽여 피를 흘리고 생명을 내놓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제사하며 자기 죄 때문에 피 흘려 주실 메시야 언약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가인은 부모의 가르침을 똑같이 받았으나 표적에 맞히지 못한 육신의 것으로 땅의 것에 집중되어 계시 밖의 삶으로 자기 만족과 자기 열심으로 행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으니 받지 않으시는 가인과 그 제물이 되었습니다, 선을 택한 자와 악을 택한 자의 아벨과 가인의 삶의 목적이 삶의 중심이 삶의 표적을 어디에 두었는지 믿음의 표적이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행한 것과, 자신에게 맞춘 것으로 하나님께서 열납하시고 열납지 않았음을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알게 하시는 계시의 뜻을 알지 못한채 잘못 끼워진 옷의 단추처럼 악을 택한 자로 그저 세상 가운데 가시와 엉겅퀴 미움과 저주와 약육 강식 속에 저주받은 땅의 것들이 삶이 목적이고 세상과 벗되어 살아갑니다 . 아무리 예수님 피를 증거한다해도 육을 따라 사는 세상에서 떠나 나오지 아니하고 가인처럼 온갖 정성으로 하나님께 재산 다 바친다 해도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구원 받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 사단은 지금도 가인으로 살도록 부추기며 속이며 하나님의 표적에 맞히지 못한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 레마의 말씀을 안다해도 교묘한 인간생각, 삶의 것들, 사람의 관계적인 것 등으로 합리성을 가지고 평안을 깨고 믿음이 떨어지도록 분투하며 달려듭니다. 그러나 이미 레마 말씀이 나의 생명이 되었으니 잠깐 속을 지라도 사단의 역활은 나의 온전한 믿음과 평안과 사랑의 열매맺게 하는 도구로 사용 될 뿐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감사뿐입니다.
육축치는 자의 조상 미각의 즐거움 , 악기만든 조상 향락과 즐거움 , 사단의 지혜와 능력으로 음악과 예술의 세력, 농업 공업 전쟁도구 발명한 조상이 나와 끝없이 개발 발명 발전시키고 , 종교를 만들어 수양 학문 선행 교양 등을 통해 자기도취 죄악과 두려움을 잊어보려는 정신적 문화속에 살아간다고 하신 말씀에 너무나 동의가 되었고 , 예전에는 세상에 이런 인간의 삶이 왜 이럴까 생각조차 엄두 못하고 조상대대로 반복하며 사는 삶이라 일축했는데 말씀을 이렇게 세밀히 자세히 배우니 인간들의 삶이 왜 이렇게 사는 것인지 ,, 하나님을 떠나 육을 추구하며 사는 인간의 삶과 인간사 배후에 악한 영들의 역사하는 속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유도 목적도 신분도 자기 실체도 모른채 조상들이 살아온 방법대로 가인의 길로 나가 스스로 악을 택한 삶을 살다 죽을 영혼에게 이 말씀이 들려지게 하여 주셨으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뿐입니다 .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아버지께 감사와 감사를 올립니다
창조 때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의 뜻을 잘 배워 믿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 궁수의 활이 과녁에서 빗나가지 아니하고 표적에 잘 맞힌 화살이 되도록 배우고 알고 깨달아 나에게 적용하는 믿음과 삶이 되어서 아버지께 영광 돌리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
마음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 진실로 하나님이 아버지요 ,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고, 성영님과 함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죽은 자로 육의 자아를 부인하는 삶인가 ? 적당히 세상과 인본과 짝하여 양다리 걸치며 이정도는 괜찮지 하며 합리적인 것에 속아 적당주의 신앙인가 ? 아벨과 가인을 통해 가르치시는 뜻의 말씀에 감사드리며 아벨의 신앙의 삶처럼, 세상과 인본의 모든 것을 더욱 부인하며 예수님의 신부의 자격 곧 새 피조물의 능력을 성영님 도우심 간구하여 온전히 갖추겠습니다. 성영님 도와주옵소서 ! 아멘
임선양성도님의 댓글
임선양성도 작성일
하나님의 깊고 크신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 선악과 사건입니다.
제가 보는 견해로는 성경의 시작이 창세기(선악과)인 것처럼 성경의 결론도 창세기(선악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뜻이 창세기의 선악과에 있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첫사람 안에
예수님(구원의 뜻)을 넣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사람 아담이 먹으면 정녕죽으리라하시고 먹으니 살리시는 생명나무(예수님)도 있다는 것을 세상 중심에 걸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흙이므로 어둠이요, 땅이요, 육이니 첫 창조는 죽어야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이 삼위 하나님의 뜻이요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흙밖에 되지 않는 자기의 실체를 봐야 했습니다. 자기를 봐야 한다는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사람에게 두 길이 나게 되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만 바라는 신앙으로 계시의 뜻을(예수님의생명의피) 가진 자 되었고, 가인은 땅의 욕심과 열심으로
자기 것을 드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섬김이되고 섬김을 받으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이냐?악이냐? 생명이냐?사망이냐? 하나님이냐? 사단이냐? 선택해야 하는 영적존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열왕들을 통해서 ,이방나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으로
일하심과 역사를 통해서 사람에게 두 길이 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며칠 전 제가 사는 아파트에 음식쓰레기를 버리려고 쓰레기 통을 여는데 거기에는 먹지 못하는 조개껍데기와
비닐봉지에 일회용 용기가 들어있었습니다.
전에도 종종보아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화가났습니다. 정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래도 사람이라면 인격이 있고 상식이 있는 것인데 음식쓰레기에 일반쓰레기를 넣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제가 협조를 구하는 글을 써서 붙여놓았었습니다. 이런자..... 인간 쓰레기입니다.
아무 가치 없 는자입니다. 무례한인 입니다. 정말 꼴도 보기 싫습니다(에그~)
그런데 이것은 아주 작은 일입니다. 마지막 때가 된 이때
세상은 아주 쓰레기더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 줄도 모르는 죄의 감각 없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고, 산업 발달의 쓰레기들, 거기에는 인간과 사단의
합작품인 각종기기들의 쓰레기들,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문화 행사의 쓰레기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는
교회에서 조차 인본의 탈을쓰고 세상이 하는 행사를 따라 하고 지옥 백성 되게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회입니다.
어디를 봐도, 어디를 가도 온통 어둠이 아닌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를 통해서 자기를 봐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십계명)으로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 산 죄인인것을 보아야 하고,
그 죄에서 용서해주실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주신 율법을 모든 인류가 아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처럼.....
정말 말씀의 의미와 뜻을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자들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입니다. 큰 죄입니다.
이러한 죄의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속량 하셨는데도 무감각합니다.
아예 알려고도 하지않습니다. 화제를 돌려버립니다.
자기의 영의소원, 영의고통, 양심을 자기 등뒤로 버립니다. 영의 원죄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구도 탓할수 없는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
신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에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하게 하시고
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이시고 여호와(구원)하나님이신 것을 알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록을보면 출애굽 당시
애굽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려 천하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고 광야에서 백성을 하늘의 만나와,
반석에서 물이나게 하셨던 것과 불순종하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셔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추워와 더워를 막아주신 그 사랑을 끊임없이 행해오셨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조상들의 기록을(모세오경) 후손인 백성들에게 읽으면서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셨고 조상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추억하고 상기시키시면서 하나님의 크신 구원과 사랑을 다시한번 새김질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교훈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수님 사랑이 아닌 자기사랑으로 꽉차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의 받은 사랑의 은혜를 추억하여 보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그러나 그사랑의 깊이도 이제 겨우 발뒷꿈치 정도입니다.
그 발뒷꿈치만 들었을 뿐인데도 그사랑이 가슴 한 가득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에겐 더 없는 행복입니다.
나의 소원은 발뒷꿈치만이 아니라 한발자국, 한발자국 떼어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의마음을 나의 온몸(영혼육)과
나의 마음(지정의)이 성영님의 다스림 속에서 경험으로 알기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믿은자들) 향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받은 은혜에도 새김질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결국 받은 은혜의 기억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