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십계명 주신 뜻, 피 흘려 사신 교회에서 육을 좇는 자 경고(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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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성엽목사 작성일24-02-22 02:24 조회69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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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네가 태어날 때부터 너는 죄를 가지고 나온 것이다. 처음 사람이
범죄 한 사단의 말을 듣고 불순종 하였으므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 되어.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은
이런 존재라고 선언하신 것, 죄를 가지고 태어나니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인정하여 받는 것이 곧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 범한 죄를 보여주는 것이
십계명이에요. 십계명! 그렇기에 사람들이 죄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 다 성영님이 그 안에 계시면서
성경의 모든 뜻을 그냥 쫙 알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계속 읽고 보고, 듣는 중에 점차로 눈을 열어주시며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고 행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도와주시는 것~
그래서 죄를 알고 그 죄에서 나와 구별 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십계명을
경계의 법으로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죽는 법과 사는 법입니다.
선악과는 생명과 사망을 담은 지식의 나무입니다. 선악과를 범한 것은
죽으나 다시 산다는 비밀이 담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셔서 너희가 죽음에 있으나 다시 산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계명,
이 죽는 법과 사는 법의 십계명을 구체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죽음을 가졌으니 지키면 산다고~ 그러나 사단의
죄에 빠진 사람이 이 십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어요? 없습니다.
도무지 지킬 능력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계명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은 죽는 법 아래 있지만 이제 죽는
법과 사는 법이 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너희를 살리실 것이라는 것을 계명으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자기 안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니 죽은 우리 영혼이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아멘) 우리가
잘나서 사는 거 아니에요. 그걸 지킬 수 있어서 살게 된 것 아니에요.
죄를 알라는 거야! 십계명으로 죄를 알라. 십계명이 없으면 죄를 몰라!
몰라~ 그렇기에 신약 성도도 무엇이 죄인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죄인이래~ 이런 두루뭉슬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죄를 알아야
회개도 할 수 있고 계명을 행하는 능력으로 사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죽는 법과 사는 법이 되신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니 그 법이 완성이 됐어! 죽음은 물러가고 생명으로 완성이
됐어! 그렇기에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 모셔들인 자
안에 다시 사신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오셨으니 이때는 이 법을
지켜야지! 지켜야지! 이런 것이 아니야~, 맞아! 지켜야지 하고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성영님으로 행하는 믿음이 된 것이기에, 기쁘게 계명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안 지키면 벌 받거나 죽을까봐서가 아니라 죽는 그 법에서는
자유해져버렸고 사는 법이 되었으니 그것이 산 자의 삶, 새로운
피조물의 삶의 방법이기 때문에 참으로 기뻐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자유의 법이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산 자가 된 이때는 그 계명을 행하지 않으면, 계명으로 살지 않으면
오히려 영혼의 힘이 없고 무기력해지듯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힘들어지는 거예요. 기쁘지 않은 거예요.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영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거예요. (아멘)
생명 얻은 법이니 생명이 안에 와 있으니 생명의 그 빛 안에서의
삶이되었기 때문에 빛의 행함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때는 예배도, 누가 가라 하라 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영이 알고 기쁨으로 예배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으면 나타나는 행함으로써 영적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이 이와 같이 영 안에서 자유해져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성영님으로 행하는 영적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에 걸림이 되는 생명 없는 죽은 것들을
스스로 분별하여 아는 영적 지각이 섭니다.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따라 사는
하나님의 수준에 맞는 거룩한 신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삶이 너무 기쁘고 너무 행복하고 너무 존귀하고 너무
가치 있는 것이기에 천하를 다 줘도 저는 이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안 버려,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은
이 복을 버리고 포기할 담대함은 나에겐 0.1%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영적 삶을 살려하니 또 그렇게 삶을 가르치니 그에
반하는 원수가 나타나는 것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역사적인 것이기에 그래서 나야 영의 기쁨이 크지만 그러나 마음
한쪽은 좋든 나쁘든 그들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이것도 물론
성영님께서 허락지 않으셔서 마음에서 깨끗이 청소해버렸습니다.
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했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일컫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에 해 끼치는 자,
누를 끼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하는 피조물로서의 겸손의 마음
중심이 딱 서게 되기 때문에 삼가 모든 삶에서 조심하며 또한
나에게 오신 예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사랑하여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고 사용하라 하셨으니~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을 뭐에 사용하느냐? 아픈 곳에 손 얹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 또 무엇을 구하려거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으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시고 받으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을 쓰라고 우리 안에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집 바깥을 넘어가지 말라는 울타리입니다.
경계의 법입니다. 거룩의 법이에요. 거룩의 법! 그러면 거룩이
다른 말로는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까? 구별이지요. 구별!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과 구별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과 믿지 않는 자들과 그 일과 구별하신 법이에요.
생명을 얻는 이 계명의 법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사는
법으로 마땅히 구별시키신 거룩게 되는 법입니다.
지금 이런 말 할 필요조차 없는 말을 제가 또 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므로 속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요? 참으로!
그런데 오늘 동영상 말씀에서, 식물 한 그릇으로 자기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판 일에서(히12:16), 그걸 제가 ‘육체’의
배고픔인데 ‘육’의 배고픔이라고 표현을 잘못했습니다.(혹간 이런
표현이 있을 때 여러분이 정정하여 듣는 것으로 하기 바랍니다.)
육은~, 본성, 자기, 인본, 자아 이 같은 것으로 구분되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육이 육체에 붙은 관계예요. 쉽게 말해 한 패예요.
그래서 제가 육에~ 육에~, 이렇게 표현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5:24)에서 그랬죠!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육체와 그 자아 혼의 지정의 곧 인본에서 나는 자기 뜻,
혈과 육에서 나는 뜻, 그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분해서 듣기를 바랍니다.
제가 영상 말씀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것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따라 다녔으니
이것이 어찌 예수님 만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대로 본다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따랐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도 지금 예수님과 함께한다고 하잖아요?
이곳에 지금까지 함께 있던 모든 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해서
따른다고, 죽는데도 같이 가겠다고 하며 스스로 집 팔고 직장도
다 버리고 앞장서서 이곳에 따라온 자들이 아닙니까?
목사가 집도 팔고 직장을 버리고 오라고 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교회의 말씀이 영의 사람으로 사는 능력을
갖추는데 부족한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이 말씀으로 산 사람입니다.
이 레마 말씀으로 살았고 재창조 되었고 지금 예수님 계신 곳,
하늘 보좌 예수님이 계신 그 우편에 함께 앉은 사람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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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땅님의 댓글
좋은땅 작성일
감추인것이 드러나지 않을것이 없고 숨은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12:2)
신성엽 목사님께서그동안 성도들에게 영적일들에 대하여(사단, 하나님의일) 낱낱이 숨김없이 가르쳐왔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의 도움을주고자 필요하다면 목사님의 개인적인 일들을 경험으로 예로 들어주어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셨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영적교제를 통하여 보화같은 많은것을 읻었고 정말 기쁘게 아멘으로 하나가 되는 (가족과같은)세상에는 없는 행복한 시간이 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료 뿌리내리지 못한 영혼들의 틈을노려 생각으로 거짓으로 미혹하여 (스스로) 풀수없는 실타래를 만들어말씀을 대적하는것으로 드러내 교회를 혼란케하고 영혼사랑으로 애쓰고 힘쓴 목사님의 마음에 깊은 상심을 끼쳐드리고 갖가지 이유로 말씀을 버리고 나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이니 할말은 없습니다만....
그간 목사님에대한 불편한 오해와 말씀에 대한오해들로 인하여 말씀을 버리고 나간자들...다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이 없으시니 거짓된곳에 말씀을 주실수 없다는것입니다.
이것이 해답 입니다.
신성엽목사님의 삶이 말씀으로 되지 않았다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도 생명없는 울리는 꽹과리 일뿐일것이고,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경험없이는 절대 나올수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성도들도 그동안 함께 말씀을 배워왔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하니 속사람의 능력이 되지 않아 얼마나 애통하며, 분투하고 아픔을 겪으며 지금까지사모하여 왔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으로 삶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능력은 물론이고 오실 예수님을 맞을수 없다는것 다 아는 것이지요. 그것은 죽음을 통과해야 하기때문 입니다
그래서 분투하며 성영님 의지하여 나가는것입니다.
성영님께서 목사님을 안고 교사가되어주시고 가르치셨다는것은, 말씀은 물론 삶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보아왔지요.
여기에는 내 생각이 아닌 보내신 레마의 말씀으로 으로 비추어 판단되어 져야 합니다.
내생각은 사단이요, 육이요, 인본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목사님을 어느누구도 판단할수없다 하셨기에
자기생각으로 판단하여 분수를 넘는 교만은 그쳐야할것입니다.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성영님 뿐이십니다.
저는 지금 말씀을 변호하는것도, 목사님을 변호하는것도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을 배웠으니 말씀으로 판단하여 쓰게 되었고 성도로써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홈피의 댓글에 답글도 저의 일이기도 합니다.)
너는 그를 좇지말며 듣지말며 긍휼히보지말며 애석히 여기지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신16:8)
말씀 하셨습니다.
덮어 숨기지않고 말씀으로 드러내주신 성영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경계의 기회로 삼고자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