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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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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3-27 10:32 조회10,417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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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립보서 2장 5절~18절)



많은 이들이 구원 얻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한다.
믿는 자로서 삶의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의 구원은 헛것이며 거짓이라고 한다.
구원은 취소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한 번 구원(영접)은 영원한 구원이 될 수가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구원은 오직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에 행위가 개입될 수 없다고 한다.
행위 여부를 떠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기에, 한 번 얻은 구원은 행위 여부에 좌우되지 않고 결코 취소될 수도 없다고 한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가?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나는 말할 수 없다.
공방은 끝이 없고, 영원과 직결된 구원은 오늘도 핑퐁 게임 중이다.
나름의 확신과 약속을 갖고 있지만, 오직 말씀으로 주 예수님께서 주시는 확신을 붙잡기 위해,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간다.
빌립보서 2장 12절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한다.
읽고 생각하며, 또 생각하는 가운데 기도한다.


“주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 이전에 무슨 말이 있느냐?)

“항상 복종하라고 합니다. 복종...... 무엇에 복종한다는 것입니까?”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 보아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복종.... 복종.... 복종.....”

(12절의 첫 단어가 무엇이냐?)

“그러므로입니다.”

(그러므로는 결론을 내릴 때 쓰는 말이 아니냐? 12절은 결론적인 말이다. 결론을 내리기 전의 구절들을 파악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 그렇군요.”


빌립보서 2장의 전반부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그는 하나님과 동동한 분이시나 도리어 종의 신분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다.... 오셔서 철저히 종의 신분으로 사셨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뜻을 버리고 온전히 복종하셨다.... 그 복종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었다.... 온전히 죽는 것이었다.... 자신의 원대로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복종....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복종했다....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상의 군대를 불러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인류 역사를 블랙홀 속으로 집어넣고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할 수도 있었다.... 인간들이란 본래 한 덩이 진흙에 불과한 존재, 우주의 흙먼지로 사라질 존재들이다.... 그런 인간들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구원의 약속들과 말씀들을 텅 빈 어둠속으로 내던져버릴 수도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무가 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함부로 휘두르는 폭력에 힘없는 부녀자처럼 흠씬 두들겨 맞았다.... 입술은 터지고 눈덩이는 찢겨졌으며, 벌거벗겨진 몸은 피로 범벅이 되어 부끄러움마저 감춰 주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폭력과 무례함의 채찍에 휘둘려.... 죽은 자들의 뼈의 무덤, 골고다 언덕 위에 저주 받은 죄인으로.... 쾅, 쾅, 쾅, 우주를 뒤흔드는 소리에 뼈가 고통으로 뒤틀렸다.... 목마름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약속을 이루기 위해 마취 성분의 음료마저 거부했다.... 고통, 고통, 고통.... 저주와 수치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무게에 짓눌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헐떡이는 힘마저 다 사라지고, 마지막 호흡마저 자신을 버리고 떠나기 전,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다, 이, 루, 었, 다.... 온 우주에 그 소리가 메아리쳤다. 다 이루 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죽기까지 순종했다...."

(복종이 무엇이냐?)

“........”

(항상 복종함이 무엇이냐?)

“.........” 

(구원이 쉬운 것이더냐? 구원의 약속이 어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더냐?)

“..........”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약속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내 아들이 지불한 값을 헤아려 보았느냐? 너희에게 약속하고,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졌더냐? 누가 그 일을 이루었느냐? 내 아들 예수가 너희를 위해 순종했느니라. 내 아들이 받은 수모와 고통과 저주의 몸부림을 나는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느니라. 그를 저주하며 죽음에 내주어야 했던 나의 고통을, 너희가 아느냐?)

“.........” 

(네 구원이 무엇이냐? 무엇으로 구원을 얻느냐?)

“믿....음....입니다.”

(무엇을 믿느냐?)

“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습니다.”


(오직 내 아들이 너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었느니라. 그 피가 너희의 구원의 보증이 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하느니라.)

“......이루라면....행위???......” 
 
 
(오직 예수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너희의 구원은 아직 미완성이니라.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약속했으며, 나 여호와의 말인즉 반드시 이루어질 그 구원이 내 아들의 순종으로 완성한 것 같이 너희의 구원도 순종으로 이루어야 한다. 너의 주인은 누구냐?)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아들 예수가 너의 주인이더냐? 그러면 내 아들이 너의 주인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내 아들 예수가 너의 주인 됨을 무엇으로 입증하려느냐?)

“순종.....입니다.”
 
 
(내 아들의 말, 기록한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야 예수가 주인 됨을 입증하는 자니라. 순종하는 자만이 구원을 이루는 자이니라. 순종하라. 죽기까지 순종하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떠들지 말라. 종 된 자는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자이니라. 순종하라. 믿음으로 순종하라. 너희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한 내 아들처럼, 구원을 얻은 자로서 순종하라. 구원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라. 오직 내 아들 예수의 피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며, 믿는 자에게만이 내 아들의 영이 보증이 되리라. 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낸 성령이 보증된 자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느니라.)
 
 

  * * * * * * * * * *
 
 
   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죄 가운데 있는 나를 친히 찾아와 주시고, 피 묻은 그 은혜의 손을 내밀어 주신 주 예수님!!.....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더렵혀진 내 모습을 누가 보게 하였던가?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누가 가르쳐 주었던가?

    나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 보혈의 공로를 갈망하게 하셔서, 당신의 기쁘신 뜻,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자녀 되기를 소망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당신께서 은혜로 거저 주신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구원 얻은 당신의 자녀 된 삶을 오늘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았으며,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도 없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주 예수 당신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1월 어느 날,
빌립보서 말씀을 묵상하며 받은 은혜를 정리해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퍼왔습니다.
 
오늘 아침, 디모데전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집사의 직분을 받을 수 있는 자의 특징 중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와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
두 구절에 특별히 더 마음이 갔습니다.
비록 겉사람은 후패하고 세상에 내놓을 것 아무것도 없는 자이지만
그 안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이라는 한 번뿐인 나그네 길, 믿음의 연단과 훈련을 잘 통과하므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물려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상속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 원합니다.) 
 
 
 

댓글목록

최엘리님의 댓글

최엘리 작성일

오직주의은혜로님의 글 중 .......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약속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내 아들이 지불한 값을 헤아려 보았느냐? 너희에게 약속하고,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졌더냐? 누가 그 일을 이루었느냐? 내 아들 예수가 너희를 위해 순종했느니라. 내 아들이 받은 수모와 고통과 저주의 몸부림을 나는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느니라. 그를 저주하며 죽음에 내주어야 했던 나의 고통을, 너희가 아느냐?)

너무나 깊게 다가옵니다.

요즈음 목사님의 말씀 영상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들으면서,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의 깊이를
말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벅찬 감정으로 '감사합니다'입니다.

오직주의읂몌로님의 댓글

오직주의3… 댓글의 댓글 작성일

제가 올린 글을 보고
혹여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부디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댓글을 다시 올립니다.

53번에 올린 "이런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글에도 나와 있듯이
저는 지극히 이성적인 성향의 사람이며, 논리적인 귀결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거나 환상을 보았다거나
혹은 꿈을 꾸었다거나 계시를 받았다거나 하는 등의 직접적인 체험이 없습니다.
꿈은 간혹 꾸기도 하는데,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은사도 겸하여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기도하는 중에 그간 고심하며 깨닫지 못하던 말씀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말씀을 열어 주시는 은혜도 종종 경험하고,
때로는 섬광처럼 어떤 깨달음이나 영감이 떠오를 때도 있고,
글을 쓰는 중에 어떤 인도하심 가운데 글이 완성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굉장히 직관이 강하고 종교적, 철학적 성향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직관으로 깨닫게 된 깨달음이나 이해를 제 생각이 따라잡지 못해 애를 먹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위에 올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의 글도
구원에 대해 설왕설래 하는 어느 카페의 토론을 지켜 보다
마음 가운데 주시는 영감이 있었는데, 오랫 동안 묵혀 두다
마침 빌립보서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기도하며 생각을 정리해 글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우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저의 경우 글을 쓰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컨대 목사님들이 설교문을 준비하거나 설교를 할 때 성령의 붙드심과 인도하심을 보게 되는 경우처럼
저의 경우에도 글을 쓰는 중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깨달음이 있을 때가 있고
(글을 쓰는 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글이 써지는 대로(이끄시는 대로) 쓰려고 합니다.

때로는 글로 잘 표현되지 못하고 막힐 때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아예 깨끗이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주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보다는 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더 앞세울 때 그러는 것 같습니다.


저의 기도제목 중 하나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입장이 아닌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말씀을 깨닫거나 받은 은혜들을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글을 쓰거나 올리다 보면
은연 중 제 자신의 의가 드러날 때가 있고
제 생각과 의지가 알게 모르게 글 속에 녹아져서
성령이 주시는 것마냥 포장될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는 정말이지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올리는 것도 후회가 되고
마음은 그지없이 짐스럽고,
또 때로는 높아진 마음을 다스리느라 애를 먹곤 한답니다.


교만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지 싶습니다.
고난이나 고통은 인내하는 가운데 연단이 되고, 열매도 맺게 되지만
교만은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게 하고, 인격과 의지를 죄의 자리로 끌어 내리는 악한 종기와 같아서,
교만을 물리치는 데에는 약도 없고,
애써 낮음의 자리,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으면 절대로 물러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쓰다 보니 또 길어져 이만 줄이겠습니다.

최엘리님의 댓글

최엘리 작성일

저의 경우, 글을 쓰다보면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향해서 '너를 사랑한다'라고 수없이 반복하고 계셨다는 것과 
나를 운전하듯 움직이며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어 가신다는 것에 예수님을 찬양하고
나의 마음 가득히 감사로 가득 채우시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의 삶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동행하심에 기쁨과 감사로 예수님을 사모하며, 내가 더 깨끗한 마음이 되어가도록
회개와 사랑의 글로 나를 인도해 주시며, 구원의 깊은 사랑의 복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도록 하는 듯 합니다.


이메일 : sarah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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