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님께 개인적인 답글(댓글이 너무 길어 따로 올립니다.) > 영광을 돌립니다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영광을 돌립니다

Home > 게시판 > 영광을 돌립니다

 

영광을 돌립니다

이웃사랑님께 개인적인 답글(댓글이 너무 길어 따로 올립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5-19 00:38 조회9,852회 댓글6건

본문

 
     게시판에 질문 올리셨던 이웃사랑님이시군요!
기쁘고 반갑고 고맙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은 아니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입니다.
20대 초반에는 4년 정도 선교단체에서 훈련도 받았던 사람으로 교회 안과 밖을 어느 정도는 경험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교회생활에 비례해서 믿음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오랜 교회생활이 그 사람의 성숙한 인격을 담보해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제가 오랜 교회생활을 굳이 언급한 것은, 오랜 교회생활과 믿음(신앙 인격)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굉장히 직관이 강하고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직관이 강하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과 이해가 따르지 않고 굳이 어떤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아도 이미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혹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어떤 것인지 꿰뚫어 보는 능력이 보통 사람들보다는 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이 직관력은 어떤 사람에 대한 됨됨이나 성격, 성품, 드러나지 않는 기질까지 파악할 수 있고 대부분 직관을 통한 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는 성격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저의 강한 직관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이미 직관을 통해 어떤 것을 파악했다면, 그 직관이 옳은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해 제 스스로 저의 생각을 이모저모로 살펴보고, 검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들이 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또한 저는 진리, 절대자, 삶, 죽음, 영생, 죄 이런 것들을 직관적 성향을 힘입어 깨달은 사람입니다.
저의 이 직관력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사람은 왜 사는지, 나는 누구인지,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죽으면 끝인지.... 등등 수많은 인생의 근원적 질문들에 대해 아주 어릴 때부터 생각하고 질문을 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너무 어린 나이인지라 생각하는 것도 막연하고 그 깊이도 깊지는 못했지만, 이런 질문들을 제 스스로 갖고 있었고, 그런 것을 해결하고 배우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나와 똑같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이후 많은 삶의 질고가 있었지만, 이런 저의 성향을 가장 잘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그리고 주 예수님에 대해서도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방법으로 계시해 주셨고, 믿음을 갖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무슨 체험이니 경험이니 이런 것들이 없어도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을 견지할 수 있는데, 제가 남들보다 대단한 믿음을 가져서가 아니라 저의 이런 성향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고, 그러니 남과 비교할 성질의 것도 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생긴 모습 그대로, 주신 성향 그대로 믿고 섬겨가는 것이고, 주신 것 안에서 달란트 남기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저의 오랜 교회생활과 제 성향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지 짐작하시겠는지요?
제 성향대로라면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비성경적인 부분에 대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도 벌써 깨달았을 것인데,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비성경적인 것들에 대해 깨닫기는커녕 감히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눈이 가리어졌던 것일까요?
그렇죠.
눈이 가리어져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생각하건대, 오랜 교회생활이 저에게 가져다 준 것은 타성에 젖은 믿음과 그에 따른 무비판적인 순종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교회에 대해, 목회자의 결정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요?
절대로 그럴 수 없죠!
더욱이 교인과 목회자와의 관계가 상하 복종의 관계로 굳어 있는 한국 교회의 틀 안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 안에 성경 말씀을 벗어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제가 올린 <나는 교회를 사랑하는데, 교회도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비성경적 부분에 대한 깨달음은 일종의 쓰나미 현상처럼 제게 몰려 왔고, 싫든 좋든 그런 것들을 분별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 깨달음(분별)은 제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제 눈을 열어 주시고 보게 하심으로써 가능한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제가 어버이주일 예배에 관해 친구와 설전을 벌였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지만,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지켜지고 있는 성탄절이며, 부활절이며, 사순절이며, 추수감사절이며 여타 모든 절기며 행사들은 또 어떤가요?
그런 절기며 행사들이 오랫동안 교회의 전통으로 이어져 왔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본질로 여기는 현상은 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예수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런 것을 지키는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되어 있지는 않던가요?
  
한국 교회의 대부분이 5월 둘째 주를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버이주일뿐 아니라 어린이주일, 교사주일이 5월의 불변하는 행사로 지켜지고 있지요...)
그런데 삼위 한 분이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그분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리며 사모해야 할 주일을 인간이 감히 무엇이라고 ‘어버이주일’이니 ‘부활절’이니 ‘성탄절’이니 하며 마음대로 정해 놓고 기념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 놓고 지키라고 명령이라도 하셨던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오늘날의 주일)과 침례(세례)와 성찬식과 그리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 머리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한 것 외에는 없습니다.
(마리아가 아니라 마리아의 행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슨 기념일이니 절기니 만들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만들어서 지키려고 하고,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들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벌이라도 내리실 것처럼 말입니다.
지키라고 명하신 것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굳이 지키라고 명하시지도 않은 것들에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이 꼴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는, (신성엽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간 중심적 생각일 뿐이며, 인본주의적 발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 눈에 좋아 보이고, 진지해 보이고, 그럴듯한 명분과 전통이 있으니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실 것이라고 인간 스스로 진단해 버리는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은 가인의 예배요,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서 날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망령된 행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물론 설교 주제가 님께서 예로 드신 것처럼 이웃 사랑이나 부모 공경이 될 수는 있습니다.
말씀에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셨기에 이웃 사랑과 부모 공경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믿는다 하면서도 이웃 사랑하는 삶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보다 더한 불효를 하고 있다면 응당 지탄받아야 할 것입니다.
단지 설교 주제가 ‘이웃 사랑’과 ‘부모 공경’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어버이주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고 이것이 전통으로 굳어 있다면, 이미 우리 한국 교회는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행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主日은 주(하나님)의 날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경건하고 고상해 보이고 명분 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며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는, 주께서 지키라고 정하신 날입니다.
주일은 주의 것입니다.
물론 모든 날이 주의 날이지만(골2:26), 주일만큼은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것임을 우리가 고백하며 특별히 지키는 날입니다.
마치 십일조를 우리의 소득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주일은 오직 주(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날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경계하고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제 아무리 고상하고 그럴 듯한 명목의 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예배라면 그 예배는 이미 하나님을 가장한 ‘인본주의’라는 우상에게 드려지는 예배이며, 그 예배를 드리는 인간 자신이 경배 받는 예배인 것입니다.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한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친구도 제게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제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저와 같은 나이이지만 이미 권사이며(예장 통합측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과 믿음의 신실함은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친구의 믿음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연단된 믿음은 저 역시도 닮고 싶을 정도로 그의 믿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런 친구가 저에게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을 깨닫지 못한 채 감히 하나님을 가르치려드는, 욥과 같이 교만하고 자기 생각으로 꽉 찬 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어버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런 마음을 갖지 못했다면 그런 제가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제 심장은 교회에서 이단으로 몰릴 때만큼이나 오그라들고 아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며, 믿음의 연륜이 있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인 그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되다니, 참 씁쓸하고 괴롭고 황망했습니다.
  
‘어버이주일’로 굳이 지키고 싶고, 어비이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기리고 싶다면, 예배 후 따로 행사를 마련하든가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설교의 주제며 내용 전체가 오직 어버이에 대한 것일 뿐이고, 찬양곡도 어버이 은혜를 기리는 곡 일색이었으며, 폐회 찬송마저 세상(굳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도 좀 우습네요) 노래인 <어버이 은혜>로 지정해 부르고....
같이 예배를 드리는 저로서는 도대체 어버이를 예배하는 것인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참으로 혼란스러웠고, 마음은 지극히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싸움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종결되긴 했지만, 저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친구이든 누구이든 간에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로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극단적 믿음의 소유자로 몰린다 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 그것만이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내일(벌써 오늘이 되었네요) 교회 갈 때 우산 꼭 챙기시고, 주 예수님 안에서 평안과 은혜를 구합니다.
 

댓글목록

이웃사랑님의 댓글

이웃사랑 작성일

오직주의은혜로님. 그 어린 나이때부터 진리를 추구해오셨다니, 정말 놀랍고 반성도 되고 하네요.

저는 올해 예수님을 영접하여 지금 내가 제대로 된 믿음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할 정도로 그저 배워가는 단계에요.

오직 주의 은혜로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아마 친구분의 말씀을 더 길게 들었다면 그게 맞는것인가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예수님 믿기 전부터도 저는 늘 판단력이 부족했었는데, 지금은 믿음생활에 있어 혹시라도 잘못 판단할까봐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어요. 이게 맞는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뭏든 아직 무언가를 분별할 만한 수준이 되지를 못해서,
솔직히 오직주의 은혜로님의 입장이나, 친구분의 입장이나,
저에게는 스스로의 믿음으로 어떠한 입장, 의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근데 그 분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받으시는 분일텐데, 님과 의견이 그리 다르다면,
답이 한가지인 것은 맞는 것인가요? 저는 정말 몰라서 질문을 드려요.

저같은 초보신앙의 입장에서는 선생님 두분이 의견이 다른 것 같아 혼란스러운데,
로마서 14장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 구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요?

사실 로마서를 읽으면서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지만 이 구절도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또 저희 동네의 모든 교회가 성탄절 부활절 그러한 절기들을 이름붙여 예배를 드리던데,
그런 것들이 불법행하는 것들이라는 것은 배워서 알고 있는데,
그럼 예배를 교회에서 아예 안 드리는 것이 불법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니까 더 합당한 것인가요?
아니면 예배는 드리되, 제 분별력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저는 지금 의문 투성이입니다.

이웃사랑님의 댓글

이웃사랑 작성일

주일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동안 교회나가지 않고 있다가 지난주부터 교회에 나가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오늘 나간 교회도 물론 처음 나간 곳이었는데, 오늘의 설교는 스승의 날 맞이하여 참된 스승에 대한 것이었어요.
윤리도덕시간 같은 설교말씀을 듣고, '성령의 불로'라는 성가대의 찬송에,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기도를 끝으로 예배시간이 마쳤습니다.

교회에 앉아있으면서도 저는 계속 의문이었어요.
교회에서 이렇게 잘못된 것만 눈에 들어오는게 과연 맞는 것인가.
이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가 아닌가 판단을 하며 불편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도 되는 것인가..

아뭏든지 결론은 이 교회는 다시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교회문을 나서긴 하였는데,
그래도 교회를 찾아 예배는 드리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요?
불편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아예 안드리는 것이 맞을까요?

부디 성령님께서 인도하여주셔서 좋은 교회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최엘리님의 댓글

최엘리 작성일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댓글을 달아봅니다.
저의 경우는 마치 교회찾아 삼만리를 했을 정도로,
교회의 십자가라고 붙은 곳은 거의 방문을 해 보았고 가보지 못한 곳은 인터넷을 통해 설교를 접하였지만 헛수고였으며,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얼마나 값없이 지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한탄과 그래도 진멸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이 더 깊게 다가오면서,
하나님 아버지는 어느 누구도 멸망하기 원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신다는 마음이 되어 있을때,

이곳 예수님의 교회를 인터넷으로 접하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감격으로 맞이 할 수 있었답니다.

제가 지금 다니는 교회는 만족하지는 않지만 작은교회인데, 다른 모든 것은 일반교회에서 하는 것과 차이가 없지만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접할수는 있다는 것과 거의 예배는 그들 속에서 그들의 소리를 닫고 하나님 아버지께 합당한 예배가 되도록, 나의 모든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나올 수 있는자가 되도록 인터넷으로 예수님의 교회 말씀 영상을 적어가면서, 심도 있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시는 그 한사람이 되기위해 성령님께 간구하며 나의 삶의 모두가 예배가 되도록, 정말 나의 한 순간의 호흡마저도 구원의 깊은 사랑의 자락에 와 있는지?를 두려운 마음으로 가고자 한답니다.

교회를 이곳 저곳 기웃거려도 헛수고라는 것과 이곳 예수님의 교회를 통해 말씀을 보충하면서,
나의 삶이 예수님께 촛점이 되도록 예수님의 인격이 나의 인격이 되도록 분투를 하며,
만족할 수는 없지만 꼭 교회는 나가십시요 라고 부탁 드리고 싶네요.
부족한 가운데, 그것이 불완전한 나의 모습이고 그러니 더더욱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뼈저리게 느껴지면 지금의 상황들에 한탄은 되지만 중보자로서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될 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옛 모습이었고
하나님은 그들도 나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 오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구원의 사랑으로 가시면서 대적하지 마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자락으로 인도 되어야할 전도 대상자라 생각하시고
구원으로 이끄는 선한 일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지도록
성령님께 지혜를 간구하며 이끌어 보십시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직주의은혜로님의 댓글

오직주의은혜로 댓글의 댓글 작성일

최엘리님의 글에서는 항상 용서하시고 인내하시고 품으시는 예수님 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늘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님께는 저 또한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당부의 말과 조언도 늘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왜 저에게 그 교회로 다시 나가게 하셨는지는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종종 생각날 때마다 그 친구와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위해 기도는 해왔습니다.
저는 그 교회 목사님의 인격과 됨됨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안타까운 마음에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딜 가나 저는 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밀려 있었습니다.
떠났던 교회에서도 목사님께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교회에서 제가 유일했지만
싸움의 한복판에는 늘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주는 일을 끔찍히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차라리 내가 지고 물러서는 방법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저의 성향이나 기질, 성격 등은 굉장히 독특한 것 같습니다.
매사에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또 굉장히 순응적이고
(사실 제가 공무원이란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지요)
매사에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대한 포용하려 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혹여 칼끝에 누가 베이기라도 할까 싶어 포기하게 되는,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세한 구조로 얽힌 정체불명의 생명체와도 같은 저를, 저는 늘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던 저로서는
살아 남기 위한 나름의 생존 방법을 터득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그런 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출가를 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하더군요.
대학시절을 빼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진리와 절대자를 찾아 헤매고, 늘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인생의 참 의미를 알 수 없어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줄 수 없었던 제가
(남들 보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자체가 아이러니고 수수께끼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마음 가운데는 불을 품고 있으면서도 물을 받아들일 줄 알고
끝없는 우주가 내 안에 있으면서도 작고 사소한 존재로 숨어 살 줄 알고
하나님을 향한 끝없는 갈망으로 불타오르면서도 한없이 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참으로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가 저라는 존재임을.... 요즘 들어 새삼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저를 친구의 교회로 이끄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최엘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옛적의 나를 생각하며 성령의 지혜와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막8:22-25)

저 역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였으나
예수님 손에 붙들려 흑암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졌으며
성령의 안수로 죄를 깨닫고 심판을 보게 되었지만
아직 여전히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고백할 수밖에 없었고,
오직 다시 안수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만물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기에,
그들 역시 다시 안수 받아 예수님 은혜로 밝히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 주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오실 일이 있거나, 제가 그곳으로 가게 되거나(그럴 일은 아마 거의 없지 싶습니다)
예수 믿는 믿음 안에서 만나 교제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잠시 해보았습니다. 


저 역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최엘리님의 댓글

최엘리 작성일

오지주의은혜로님,
뵙지는 못해도 항상 가족 같은 마음입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사랑합니다.

예수님의제자님의 댓글

예수님의제자 작성일

비밀글 댓글내용 확인


이메일 : sarah161@hanmail.net
Copyright© 2015 예수님의 교회. All rights reserved.

에이아이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