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며 감사(최 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baramsu 작성일21-06-20 22:40 조회4,052회 댓글3건관련링크
본문
제 자신이 어떠한 위인임을 알기에 감히 간증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아니하였지만, 예수님의 교회 홈피 신성엽 목사님의「당부의 말」중“말씀을 듣고 은혜를 입은 것을 여기 홈페이지에 간증으로 남기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말씀에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순종합니다. 신성엽 목사님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온전히 감사히 받으며,“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눅17:15)”와 같이 삼위 하나님께 엎드려 절합니다. 연로하신 저의 어머니와 함께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며, 간증이라기보다 짧게 성경 말씀 구절들로 저희 모자(母子)의 믿음을 대신 표합니다. 제가 글과 말주변이 없을뿐더러 저희 모자의 감사한 표현을 성경 말씀과 신 목사님 말씀이 잘 말씀해주고 있어서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내용의 속뜻은 볼 수 없어도 먼저 내용을 열심히 보면 이미 보는 자(신성엽 목사님-이하 괄호 안은 제가 정리하면서 적은 것임)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을 때 그것이 깨달아져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영의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된다.”(예수님을 만나는 길(2) 요한복음, p. 294)
“특별히 택하여 불러 세우신 천국의 서기관 된 제자(신성엽 목사님)에게서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 듣고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 믿음이 되고 행함이 되어야 바른 믿음이 된다.”(예수님을 만나는 길(2) 요한복음, p. 352)
“성경을 깨닫지 못한 무지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의 교회(신성엽 목사님)에 말씀을 보내신 것이다. 보내신 말씀이 사람에게 믿음의 척도가 될 것이다.”(예수님을 만나는 길(4) 산상에서의 말씀, p. 310)
“스스로가 달란트 남기는 능력이 안되는 장사에 소질이 없는 자라도 달란트를 남기고자 하는 소망이 분명히 있다면, 은행에 맡겨 이자를 받듯이 집주인과 같은 천국의 서기관(신성엽 목사님)에게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을 잘 연결하여 깨닫도록 가르쳐주는 말씀들을 잘 듣고 배워서 자신의 것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다.”(예수님을 만나는 길(5) 예수님의 비유 말씀, p. 41)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는 자면 성영님께서 (신성엽 목사님을 통해) 바른 뜻으로 가르쳐 보내신 이 레마로 주신 생명의 말씀이 들릴 때에 반드시 그 영이 반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니 마음에 동함이 일어나면”(예수님을 만나는 길(6) 행복하여라, p. 50)
마음에 동함이 일어난 저희 모자(母子), 신 목사님이 성영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믿음으로 표하며 보내신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감사히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107:10~11)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시38:5)
저희 모자의 살아온 삶이 이 말씀들과 같은 중, 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으며 영혼에 새기는 말씀이 되고 있기에 감사한 말씀을 올립니다. 수백 번 절한다 해도 부족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말씀이 진정 믿음의 척도가 됨을 고백하며“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욥34:3) 말씀처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합니다.“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 이 말씀처럼 지금까지 그리하였으나, 환하게 비추어 주시는 신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책들과 그 안에 있던 거짓 스승들을 모두 다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 신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실로 이 말씀이 두렵고 떨림으로, 엄위하신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느 교회를 가도, 여느 설교자들의 말과 책을 듣고 읽어도“무섭고 놀라운 일”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렴풋한 의문들만 있었으나 이제는 확실한 분별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정죄나 비판이 아니라 분별하여 살 길을 열어 주심입니다.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사45:19)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17:20~)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창24:58)
이러한 말씀들이 이제는 얼마나 눈물나고 귀하고 권세있는 말씀들로 들리는지....마치“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고후12:4)을 들은 것처럼 삼위 하나님께 절하며, 신 목사님께도 절하며 감사한 기도를 드립니다. 의지할 곳 없는 저희 모자(母子)를 신비롭고 권세 있으신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삼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것은 저희 모자의 믿음의 감사 표시이며 고백입니다.
교회 홈피 신 목사님「하고 싶은 말」에“자기 믿음에 대한 농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지어야 한다. 그 재료는 오직 말씀이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은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말씀의 해석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다. 성경을 말씀하신 성영님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고 성영님의 눈이 되어야만이 성경이 열리게 되어 하나님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맞습니다. 그리하여 삼위 하나님의 로고스의 말씀(꿈)은 참되고, 성영님께서 신 목사님을 통해 열어 주시는 레마의 말씀(해석)은 확실함을 저희 모자(母子)의 믿음은 고백합니다.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단2:45) 이 엄청난 말씀들에 함축된 의미가 저희 모자(母子)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어둠 가운데 헤매고 있는 영혼들이 여기 생명의 말씀들을 듣고 또 읽어 심비에 새기어 저희처럼 살 길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 용기내어 글을 올림으로 말씀에 순종합니다. 삼위 하나님과 신 목사님께 엎드리어 절하며 예수님의 교회 성도님들께 감사한 인사와 문안 올립니다.
댓글목록
성도영환님의 댓글
성도영환 작성일
할렐루야 아멘.
성도님의 영에서 넘처나는 기쁨의 감사의 마음이
저에게도 넘처남에 오직 삼위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무슨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생명의 말씀이 살아 역사되어 나오는 성도님의
영혼의 고백에 하늘 아버지 크게 기뻐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베드로에게 절하려는 고넬료나, 바울에게 절하려는
멜리데 섬 높은자나, 천사에게 세례요한이 절하려는 것에,
모두 내게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한 것 처럼
신성엽 목사님을 사랑하여 존경 할 분이시지 절받으실
분 아니십니다 ^^ 피조물에게 절하는것 금하셨기에..
너무 너무 감사하여 하신 뜻은 알기에 드립니다.
우리 모두 오직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성영님으로
예수님과 한몸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로,
매일의 삶에 성영님으로 인도함을 받아 모든것에
기쁨으로 감사로 성영의 열매로 빛과 소금된
삶 되게 하시는 삼위하나님께 영광드립니다.
참이스라엘님의 댓글
참이스라엘 작성일
아멘!
생명얻은 확신의 찬 믿음의 고백을 들으며 함께 감사올립니다.
글을 읽으며 노모와 함께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참 부럽기도 하고~ 큰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
진리의 말씀으로 선과 악을, 영과 육을 분별하는 영적 지각을 주심으로
세상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말씀으로 맺은 믿음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으로 닻을 더욱 깊게 내려 생명의 풍성함의 따라
두 성도님을 양육하여 주실 보혜사성영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 안에서 반가이 인사드립니다.
샬롬입니다~!
신성엽목사님의 댓글
신성엽목사 작성일
오래전에~~,
최 수님의 올리신 글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이 반갑고
기쁜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신목사가 마음에 두고 있는 최 수님과 노모께 뒤늦은 인사를 합니다.
눈으로 본듯 마음에 그려지는 두 모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편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하신 욥기 말씀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시119편 말씀을 떠올리면서
목사도 큰 감동과 은혜를 받으며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안도 예수님 안에서 노모와 함께 평안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두 분의 하나님아버지, 우리의 하나님아버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신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아버지께 아름다운 두 모자를
품에 안으신 사랑으로 믿음과 삶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니, 두 모자의 말씀앞에서 예배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내마음에 담겨져 있어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아름다운 그 모습이 상상이 돼 이런 모자도 있다는 것에
마음이 흐믓함에 젖곤 했습니다.
하여 오늘 최 수님의 올리신 글을 여기저기
한참동안 찾아 들어와 댓글로 마음을 적어 둡니다.
최 수님의 글솜씨로 보아 학식의 큼이 예사롭지 않음을
엿보이기도 하는데,
성영님의 전달자로서는 부적합한 언변없는 목사의 전한 말씀에서도
의도와 뜻을 발견하고 동의하여 감사로 받으신 두 모자의
겸손의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말씀을 전한 목사에게 절하신 것은 말씀에 대하여 받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말씀 앞에 절하셨다는 것으로 받으며
크게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두고두고 기억될 두 모자에게 이 후 어느 땐가는,
하나님아버지 나라에 가서라도 반가운 만남의 기회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하늘로 강림하실 예수님께로 들림받는 그날까지
데살전5장23, 24의 말씀대로 영혼몸이 강건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영님의 내주 교통이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영원한 샬롬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