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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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본질 작성일16-03-15 20:42 조회8,60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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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2-[팔복] 애통하는 자는(마5:4) 의 동영상 말씀으로 예배드리던 예수님의 날 두가지 생각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저의 지난날의 이야기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런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지만 (22:23~27) 약혼한 처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 불미스런 일을 당했는데 그곳이 들이었으면 남자만 죽일 것이고 성읍 안이었으면 소리지르지 아니한 여자까지 같이 돌로 쳐죽이이라는 내용입니다 소리지르지 않고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용한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시요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의 구주이시지만 죄인을 심판하실 심판의 이름이시기도 합니다 같은 죄인이지만 전자와 후자의 죄인은 하늘과 땅차이로 본질적으로 다른 죄인입니다 그러면 그 구분은 어떻게 할까요? 연약한 육을 입은 우리는 때로는 원치 아니하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반응은 애통하는 자와 애통하지 않는자로 갈립니다 후자는 소리지르지 아니한 음란한 마음이 있는 여자같이 죄에 대해 감각이 없는 사람이겠죠
제가 집옆 큰 교회를 다니다가 군대에 가기전 까지는 고생은 부모님과 형만 했지 전혀 고생을 모르고 살았는데 그 이후
의 삶은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찬송가 가사 그대로의 삶이었던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에 가득했던 기쁨은 안개 걷히드시 빠져나가고 예수님을 위해 살고 죽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는 반대로 나의 육에서는 원치아니하는 악만 쫓아가고 (사26:13)주 외에 다른 주가 우리를 관할한다는 말씀처럼 죄의 종으로 무너지는 저의 모습에 탄식하며 괴로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회개하고 일어섰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고 나중에는 스스로를 가망없는 자로 선고하고 자포자기의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늘 미간은 찌푸려 있고 "대낮이 어두워 어두워 밝은 길을 더듬네~"어떤 복음성가 가사가 꼭 저의 하루 하루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삼십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군대 제대후
형의 일을 몇년간 도왔는데 하나님께 나아가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싶은 간절한 소원과 달리 눈을 뜨면 일을 시작해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잠이드는 삶이었고 저에게는 마치 하루가 일년같은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동생은 정신병으로 처음접한 슬픔에 온 가족이 소동하고 아버지는 지병과 동생의 일로 늘 한숨과 근심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시고 어려서부터 상처와 한이 많으신 엄마는 날마다 원망과 한탄과 분노로 늘 혈기를 부리는 삶을 사시다가 치매로 이어졌고...어느날인가 퇴근해서 보니 무슨 집안의 분위기가 포연이 가시지않은 전장에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며 죽어가는 모습처럼 보여 한사람이라도 정신차리지않으면 안되겠다싶었습니다
이제와 보니 마귀의 손아래 있던 가정에 복음의 빛이 들어오니 저와 가정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어보내지 않으려 방해한것 같은 영적 어려움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나의 목마름과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누구를 만난들, 무엇을 한들 즐거움이 있을까요? 홀로 다른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저는 늘 심각한 솔로였습니다 (이성에 목마른 솔로는 아니고)
유일한 기쁨은 예수님과 그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찬송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게는 잘못된 것이 많고 세상도 거짓되지만 예수님께서 걸어가신길 나를 위해 하신일은 내게 가장 크고 귀하고 복되고 아름답고 놀랍고 찬송할 일이요 나의 가장큰 보배는 예수님의 피라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 온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합하여 내품에 안기운다해도 내인생의 짦은 하루의 끝이 오면 끝나지 않을 영광이 어디있겠으며, 그 모든 영광이 나의 죄 단 하나를 깨끗이 씻을 수 있겠으며, 그 모든 죄악의 낙을 누린 기억이 지옥의 끔찍한 몸부림속에서 혀끝의 물한방울 만큼의 위로라도 줄 수 있을지요..
흉악한 죄는 내가 짓고 흉악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시고 아무 할말없는 죄인에게 오히려 생명과 평안으로 갚아주셨으니...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높이고 찬송하고 그 발자취를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찬송을 찬송가 복음성가 성가곡 가리지 않고 찾아서 부르는 일이 참 행복했습니다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죄인에게만 환영을 받으시고 죄인만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적게 사함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합니다 적게 사함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니 감각이 없는것 뿐이지...
예수님이 육의 것들을 풍성히 채워주실 보따리를 가지고 오신것이 아니기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육의 사람들에게 무시와 배척을 받으십니다 내안에 육이 살아있으면 예수님을 홀대하게 되어있습니다
전에 누가 상대가 들으면 매우 불쾌할것 같은 말을 모두가 듣는데서 거침없이 하는 것을 보고 제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는데 정작 본인만 홀로 자신이 무슨일을 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것보고 저에게도 저런모습이 있으면 어떻게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만약에 옆에서 자신의 잘못을 귀뜸 해주었다면 즉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좋겠지만 자기가 생각해보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뭘 그런걸가지고 그러냐고 따지고 나오면 답이 없겠죠
죄의 기준이 나의 가치관이나 여러사람의 생각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습니까
내가 괜찮으면 하나님도 괜챦으신건가요 내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어 올고그름을 내가 정할까요
죄를 짓고도 감각이 없다는 것은(애통함이 없다는 것은)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고 철저히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도 뭘 이런걸 가지고 그러시냐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겠지요
자기가 하나님보다 높아진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요 인본의 사람이라는 것이요 자기를 숭배하는 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인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른다는 것이요 자기의를 내세우고 스스로 의롭다하는 것은 그러한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거짓이라는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익한일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애통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인줄 안다는 것이요, 그의 영이 자신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 자신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곧 말씀앞에 그 거룩하심 앞에 서있다는 것이요, 그 거룩하심을 인정하고 그앞에 굴복한다는 것이요,
의가 없는 자신이 그 거룩하심앞에 설수 없어 죽게된 실체를 보고 예수님의 의를 갈망한다는 것이요, 자신이 섬기는 것은 자신의 생각도 인본도 아니요 진리라는 것을, 죄인의 구주가 필요한 겸손한 자요 구원받아야할 영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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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님의 댓글
영인 작성일
본질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네요.
예를 들면,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맑은샘물이 땅속 깊은 곳에 있는데,
그 물을 마시려면 땅속에 겹겹이 묻인 돌들을 파내야 하지요,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는 너무나도 힘든 고난도의 작업을 요 하지요. 그리고 그 물을 얻기까지는
오랜날이 소요되는 난감한 일이구요 그러나 목마름으로 죽을 수는 없으니 기어코 물을 얻기 위해
그 힘든일을 해나가야 하는 거지요. 하루하루 땅을 파고 돌을 파내는 힘든 날을 보내지만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물줄기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한 거지요.
그 수고와 고생끝에 비로소 그 샘물을 얻게 되었을 때 살게 되었다는 그 기쁨이라는 것은
천하를 얻은 것보다는 더 크지 않겠어요.
이와 같이 본질님의 영혼속에는 진리를 알아보는... 진리를 참으로 갈구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진실의 요소가 있는데, 그 요소가 바로 인간 자아의 가진 착한 마음, 좋은양심 개념등이
겹겹이 두껍게 덮어져 있어 그것을 깨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힘든여정을 거쳐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소유되지 않은~ 오직 하늘의 것만을 소유하게 하시는~~ 그래서 일생의 가장
큰 복을 얻은 것이라 여겨 그 고백을 기쁨으로 드리고 있는 본질님이, 이같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었다는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저도 절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