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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돌립니다

나는 교회를 사랑하는데, 교회도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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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5-05 21:16 조회10,073회 댓글6건

본문

 
1.
며칠 전 교회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일하는 틈틈이 몇 줄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인데, 오늘은 어떤 계기를 통해 제 개인에 얽힌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최근까지도 교회를 다녔으나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고 혼자 예배하는 것으로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13년을 다녔던 교회를 그만 다닌 지 두 달 남짓 되었습니다.
개척한 지 한 달 만에 다니기 시작한 곳이며, 그곳에서 목사님의 주례를 받아 결혼식을 올렸고, 아이들을 낳아 유아세례도 그곳에서 받았고, 어머니 장례식이며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치르며 의논했던 곳입니다.
때로는 피붙이보다 더 가깝고 의지가 되었던 그 교회를 오랜 고민과 갈등 끝에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했습니다.
 
오늘, 다녔던 교회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들만 주일학교에 보내고 엄마는 나오지 않으니 궁금했을 법도 할 터, 오늘 드디어 전화가 온 것입니다.
엄마가 집에서 혼자 예배한다고, 가끔은 서울에 있는 교회도 간다고,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 아이들 입을 통해 저의 사정이 알려진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말씀들을 하시면서, 어떻게 아이들만 교회를 보내고 엄마는 나오지 않는 것인지, 아이들이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혼란을 겪지 않겠냐고, 아이들의 믿음은 부모의 믿음인데 엄마가 교회도 다니지 않고 혼자 예배하고, 가끔은 서울에 있는 교회도 가고 그러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본인이이야 내키는 대로 그런다고 하지만 남아 있는 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교회 공동체의 혼란과 갈등은 생각하지 않느냐고, 작년부터 베리칩이니 뭐니 교회에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목사인 나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 같은데, ○○○ 씨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그러냐고, 그럴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고....
 
아이들이 ○○교회를 계속 다니고 싶어 해서 아이들만 계속 보내게 되었다는 제 말에, 교회가 무슨 유치원도 아니고 계속 보내고 싶다고 해서 보낼 수 있는 곳이냐고.... 우리 교회만큼 좋은 교회도 찾아볼 수 없으니 다시 나오라고, 다시 나와서 다니되 어쩌다 한 번씩 서울에 있는 교회 가고 싶으면 갔다 오라고, 그것까지는 말리고 싶지 않다고, 어떻게 아이들만 교회를 보낼 수 있느냐고, 아이들만 교회 보낼 것이면 아예 보내지 말라고.... 그렇다고 지금 교회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 것은 본인이 더 잘 알 것이고, 다시 아이들과 함께 교회 나오라고....
 
통화를 하는 내내 저는 몇 마디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 어떤 변명이나 설득도 싫었고, 또 어쩌면 그렇게도 호통을 치는지, 모든 것은 저의 잘못이고 제가 돌이켜야 할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분께 무슨 변명이나 이유가 필요할까 싶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한참이나 먹먹해진 가슴을 다독여야했습니다.
앞에 앉아 제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남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통화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것마냥 표정 관리하느라 또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2.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 안에서 진정 거듭난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으며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다 가짜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었지만, 그 믿음이 거짓이며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식으로만 동의하는 믿음임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는 알되 그 앎이 도리어 내게 화가 되고 저주가 되는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죄와 짝하며 하나님과 죄를 겸하여 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안다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또 얼마나 수없이 고백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죄의 자리에 드러누워 죄와 짝하여 뒹굴고, 내 양심은 또 얼마나 하나님께 염치없는 변명을 늘어놓는지, 이번 한 번만 더 용서해 주시라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또 얼마나 낯간지러운 다짐들을 회개라는 이름으로 쏟아 놓았는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야말로 모범적이고 착한 사람 그 자체인 제가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인지, 세상은 몰라도 하나님과 내 자신만은 알았기에 그렇게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신앙을 훈장처럼 붙잡고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 그러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얼마나 거룩한 삶을 갈망했는지 모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집사가 되고, 교회 중직을 맡아 봉사를 해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는 내 만족과 내 배부름을 추구하고, 음란을 버리지 못해 죄에 중독이 되어 죽어가던 제게, 서서히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이렇게 살기 싫어요, 저 이대로 살다간 죽을 것 같아요, 하나님, 제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더럽고 추한 음란의 죄에서 저를 건져주세요!!! 
 
수없이 반복했던 회개와 영접의 기도가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뻔했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9~10절 말씀을 의지하여 탄식과 아픔의 기도를 토하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라고, 제발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 마음대로가 아닌 예수님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 주시라고, 나는 이제 이 운전대를 내려놓고 싶다고, 나는 이제 저 보조석에 가서 앉고 싶다고, 제발 주 예수님이 내 주인이 되어 주시라고....
사실은 내가 얼마나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아느냐고, 그런데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고 싶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싶은데, 죄의 사슬에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내 영혼의 고통을 하나님 당신께서 더 잘 아시지 않느냐고....
 
그렇게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주인으로 모셔 들인 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그날의 기도가 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토록 헤어나고 싶었던, 오직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었던 그 음란의 죄를 단번에 끊게 되었고, 아주 작고 사소한 죄에도 고통스러워하며 민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남이 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의 피에 대한 갈망과 분명한 믿음을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갖게 되었고, 지금이 주 예수님 오실 그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벌써부터 드러나 활동하고 있는 짐승의표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고, 부활절이며 성탄절을 지키는 것이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교회에서 비판 없이 전통으로 굳어 있는 추모예배며 장례예배 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제가 거듭난 이후 폭풍처럼 저에게 밀어닥쳤고, 그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분별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마지막 때를 말하기 시작했고, 짐승의표(베리칩)를 알리기 시작했고, 추모예배 등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기 시작했고, 부활절을 지키지 말자고 말하기 시작했고, 성탄절 예배에 홀로 참석하지 않았고, WCC의 해악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 즈음 신성엽 목사님을 만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이단이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저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이며 권사님이며 신실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제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저의 외침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꼴이었습니다.
베리칩 받아도 된다고, 받아도 지옥 가지 않으니 안심하고 받으라고, 우리의 구원이 그따위 칩 하나로 좌우되는 것 아니라고, 베리칩은 우리가 응당 받아 누려야 할 문명의 이기에 불과하기에 받아 누리라고, 베리칩 운운하는 사람들 이단이라고.... 설교 시간에 당당히 외치는 목사님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목회자와 전쟁을 벌이는 꼴이 되었고, 저의 패배는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교인들 아무도 집사의 말 따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목사의 말만이 분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아무렴, 일개 집사의 말보다 목사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피눈물을 흘리며 견뎠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처럼 그렇게 지내야 했습니다. 견뎌내는 것이 저의 십자가라고 여겼기에, 교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단으로 몰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나를 괴롭게 하여도 나는 괜찮다고,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깨달아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접기를,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고 단언하지 않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그런 가증한 절기행사며 예배들을 버릴 수만 있다면, 내가 이단 삼단으로 몰릴지언정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이를 악물고 견뎌내던 세월이었는데,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들도 견뎌내며 차마 돌아서지 못했는데, 무엇이 나로 하여금 교회를 버리고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했는지....
 
 
3.
어느 때부터인가 예배 시간이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도통 감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살아 있고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며 갈구하는 제게 모든 설교가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기쁨과 감격으로 드려야 할 예배 시간이 졸음으로 시작했다 졸음으로 끝나기 일쑤였습니다.
 
새백 예배를 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베리칩을 받아도 된다고 당당히 외치는 목사님의 얼굴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수요 예배며 구역 모임이며 모든 예배에 차츰 발을 끊게 되었고, 주일 저녁 예배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일 예배만 겨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일 예배만 겨우 나가곤 했지만,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날마다 눈물로 고통을 호소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제 영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설교가 거짓이라고 제 스스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고,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제 영혼의 외침을 따라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예 대놓고 세상과 번영을 외치는 것이라면 차라리 분별이라도 쉬울 것을, 오직 말씀 묵상만을 강조하며 교인들을 묵상으로 이끌어 온 그의 외침이 거짓이라고, 어느 누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단 말입니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딱 꼬집어서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아, 그건 이렇습니다, 하며 말할 수 있는지, 그 분별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지, 제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주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복음을 분명하게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13년을 다녔건만, 단 한 번도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설교의 주제는 예수님이셨고, 자기 부인이었으며, 순종과 예배의 삶이었지만, 그러나 언제나 예수님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는 새신자를 초청해 놓은 그 자리에서도 복음은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하는 예수님은 너무나 모호하고 불분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죄성을 지적했지만, ‘당,신,은,죄,인,이,다’고 분명하게 선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 속의 예수님의 실체는 늘 희미하게 선포되었고, 피비린내 나는 피의 복음을 그의 입술을 통해 단 한 번도 분명하게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만 그런 건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왜 나만 이토록 고통스럽고, 그토록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복음을 듣고 싶고, 그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의 효력을 알고 싶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의 권능을 그토록 듣고 싶은데, 왜 그는 그런 얘기는 들려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궁금하고 듣고 싶은데, 왜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은 것일까?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내가 이단이 맞긴 맞는가?  
 
나는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에 대해서,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신 것을 매주 들려주고 싶은데, 어째서 아이들이 배우는 공과 교재는 온갖 무용담과 절기에 대한 것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것일까?
틈만 나면 휴대폰에 정신을 빼앗긴 채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님 피 흘려 죽으심을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데, 어째서 이 교회는 아이들에게 묵상을 강요하다 못해 숙제처럼 여기도록 하는 것인지, 오직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이 시작이자 전부인데, 어째서 이 교회는 아이들이 거듭난 것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고 분명하게 복음을 제시해 주지도 않는 것인지!!!....
 
 
4.
교회를 제 발로 걸어 나오기까지 많은 갈등과 고민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이제 주일학교 선생님도 하지 않을 것이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할 것이니 너희들끼리 교회 가라고 말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선데이 크리스천인 남편에게 이러저러해서 교회를 그만 다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그토록 힘들고 부끄러운 고백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자랑이라고, 교회가 복음을 들려주지 않는다고, 예수님 피 흘려 죽으심과 부활의 권능을 선포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교회를 향해, 당신들이 잘못되었다고, 순종하고 예배하는 삶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시라고, 예수 믿어 거듭나는 게 시작이라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에라야 순종도 가능하고 열매도 가능한 것이라고,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 계시면 열매 맺는 것도 순종도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복음이 제시되지 않고 예수님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 설교는 가짜라고, 피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외치지 않는 목사는 가짜라고, 당신들이 잘못되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백이고 나는 단 한 사람, 일개 집사에 불과한 자가 감히 목사를 가르치려 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교인, 뭐 좀 알았다고 마지막이니 뭐니 운운하는 교만한 사람, 믿음 약한 교인들은 도무지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인 내가 감히 누구라고 공룡과도 같고 주식회사와도 같은 교회를 향해 감히 싸움을 걸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나라도 살기 위해 교회를 제 발로 걸어 나가는 수밖에....

 
5.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착잡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잠시 울컥해집니다.
내일 아침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오늘부터는 너희들이 다니던 ○○교회는 이제 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나 있을지.
엄마가 너희들이랑 같이 ○○교회를 다니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엄마는 영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도저히 그 교회를 다닐 수 없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해줄 수 있을지.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유치부를 졸업하고 주일학교에 올라가면서 이제 언니가 되었다며 제법 의젓한 티를 냈던 아이들에게, 이제 너희들의 친한 친구들을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아, 차라리 교회가 그 목사님 말처럼 유치원이었으면....
아, 예수님 빨리 오셨으면....
아, 아니지, 우리 남편 아직 예수님 믿지 않는데, 지금 오시면 안 되지....
 
아, 세상이 우리를 버렸으면 차라리 상급이라도 바라볼 것을, 이건 고통도 아니고 아픔도 아니고, 믿는 자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지금이 마지막 때요 배교의 때이구나!
아, 비록 교회는 우리를 버렸으나, 우리만은 교회됨을 버리지 말아야겠구나!
내 안에 예수님 계시고, 예수님 안에 내가 있으면 내가 교회인 것을, 나만은 교회됨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겠구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시는 내 아버지여,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주권 가운데 있음을 믿나이다.
오늘 당신께서 왜 고린도전서를 보게 하셨는지 이제야 내가 깨닫나이다.
모든 것은 당신의 지혜 안에 있나이다.
당신의 지혜는 신비이며 감추어 놓은 비밀입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결코 당신의 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넘어짐도, 다시 일어섬도 당신 안에 있음을 내가 믿고 찬양하나이다.
 
아버지여,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릴 때, 그 때가 마지막 때임을, 주님 오실 날 멀지 않은 때임을 우리가 깨닫고 도리어 기뻐하나이다.
버림받은 영혼들이 당신께서 오시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오, 성령님,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열어 주옵소서.
우리의 영혼을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아멘. 아멘. 아멘!!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느니라.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잇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전2:6~12) 
 

댓글목록

최엘리님의 댓글

최엘리 작성일

오직주의은혜로님,
그 마음, 본인이 겪는 만큼 어느 사람도 이해해 줄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똑같은 경험은 아닐지라도 마음이 곪아 터져, 말은 못하고 숨쉬기 곤란할 즈음에 답답한 그곳을 뛰쳐나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독대하시길 원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답니다. 지금의 이 시간을 말씀 속에서 거하며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하신 시간일 겁니다.
 
저의 경우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에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양을 먹이라 ‘하시고, ‘나를 따르라’ 할 때, 느닷없이 베드로가 예수님께 요한을 보고,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하자 예수님이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하신 이 말씀이, 마치 예수님이 나에게 직접 하신 말씀으로 여겨지면서 그들과 나는 상관없이 나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가 없으면 불신자와 똑같은 것인데, 내가 왜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하고 그들이 하는 불신앙의 것들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없는 자들과 논쟁해 봤자 헛된 시간뿐일 겁니다. 나는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인데, 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똑같이 대적하지 마시고, 나 자신이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내가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질그릇으로 인내하십시오.

그리고 지금의 이 시간이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기 위한 훈련으로 세상의 전통적인 방법에서 떠나는 시간이었고, 지금껏 내가 가지고 지녀왔던 나의 관념과 나의 올바름이 깨지는 시간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 되면서, 내가 여전히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러기 때문에 정말 나는 한순간도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고백과 감사가 터져 나오는 소중한 시간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이 나에게 바로 실제적인 체험으로 다가오게 되는 복중의 복으로,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럽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의 피만이 소중하다는 것을 내 마음 깊숙이 파헤치고 들어 오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나의 영과 혼과 육에 푹 젖게 만들어 주게 되었던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답니다. 지금도 그러한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쁨이 솟구쳐 올라오게 됩니다. 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모두 선하게 자동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경험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에는 무엇을 하든 오직 예수님의 그 구원의 사랑을 가지고 모두를 대하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진짜 거룩한 성도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지금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과 과연 어떤 세상의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나의 견해로는 아주 올바르게 보였던 것들이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나를 움직이시고자 하므로, 정말 순종하는 삶으로 때로는 불구덩이와 같은 곳에도 들어가겠다는 순종의 자세가 나올 때까지 훈련받기를 꺼리지 않게 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구약의 사울 왕이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자기 생각에 비추어 하나님을 섬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의 피만을 의지하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나의 절규의 기도가 되어가곤 합니다.

오직주의은혜로님의 댓글

오직주의은혜로 댓글의 댓글 작성일

최엘리님,
제 블로그에 있는 답글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최엘리님의 삶을 나누어 주심 또한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 안에서 한 마음으로 위로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직주의은혜로님의 댓글

오직주의은혜로 작성일

에구~
최고관리자님, 겁나게 힘듭니다요.
홈페이지 편집 용량을 좀 키워야할 것 같아요.

이래저래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하고, 또 한편 고맙고 그렇네요.
즐거운 주일 저녁 되세요.

예수사랑언제나..님의 댓글

예수사랑언제나.… 작성일

오직 주의 은혜로님,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태복음18장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 이야기가 왜 생각날까요?
아흔아홉마리의 양에 치어, 그 무리에서 나올수 밖에 없었던 한마리 어린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에 있던 님의 맘이 느껴져 맘이 짠 합니다.

그래도 사랑의 예수님은 님 같은 영을 찾는다 하시니..얼마나 복되고 복된 은혜입니까
지금은 힘이들고, 아프고 왜롭겠지만..
예수님의 평안 안에서 승리하시리라 믿습니다.

JesusReigns님의 댓글

JesusRei… 작성일

'오직 주의 은혜로'님
사연을 읽어보니 교회를 나오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네요.
물론.. 저는 베리칩 자체를 중요하다 여기지는 않습니다. 베리칩 보다는 예수 믿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설령 누가 베리칩은 짐승의 표로 여기고 받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해도, 예수를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알고도 받는 결과를 경험할 뿐이기 때문이죠. 또.. 베레칩일지 다른 이름일지 사실 분명한 것도 아니구요.

물론 저는 받아도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은 세상 방법, 마귀가 제시한 방법대로 따라서
살다가 베리칩 하나만 안받는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죠..

아무튼.. 그런 믿음이 있으려면 잘못된 교회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먹이시는 교회에 가셔야
합니다. 여기 신성엽 목사님을 저도 잘은 모르지만 최소한 두세편 들어본 설교에서는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일꾼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하시면서 꼭 교회에 가셔서
예배하시길 바래요. 아이들과 남편분은 웬만큼 반항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시길 권유드립니다. 지금 조금 다투시는
것이 길게 봤을때 덜 힘들것입니다. 아이들이 심하게 반대하면 남편만이라도, 남편분이 심하게 반대하시면 아이들만이라도,
이도 저도 아니라면 집에서 쫓겨나더라도.. 꼭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기도할꼐요.

화이팅!

오직주의은혜로님의 댓글

오직주의은혜로 댓글의 댓글 작성일

JesusReigns님, 감사합니다.

저 역시 베리칩보다 예수님 믿는 믿음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베리칩이든 베리칩 할아버지든 그것이 무엇이든,
짐승의표는 진정으로 예수 안에 있는 자들과는 결코 상관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예수 안에 있는 자인가 여부이고,
내가 진정 예수 안에 있는 자라면 에녹과 같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믿고 있는 것인데,
그 믿음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검증된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믿어버리는 착각에 의한 믿음이라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고, 영생을 좌우하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복음은 선포되는 것입니다.
선포되고 전해질 때 그것을 듣고 믿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강단 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복음이 선포되지 않고 두리뭉실 희미하게 전해진다면,
그것을 듣는 자들 역시 희미하게, 막연하게 믿게 되고, 막연히 구원 받았겠지 생각해 버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로마서 말씀이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이고,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레마인데,
성령께서 열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들려 주시고 감동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이 가르쳐지고 선포되어야 하고, 그런 말씀이 들려져야 합니다.

저는 이 레마의 말씀을 '믿음의 비밀'(딤전3:9)이라고 봅니다.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그 마음 깊이 믿음의 비밀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열어주시고 깨닫게 하셔서 감동으로 들려 주시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말, 자기 깨달음을 마치 성령이 주시는 것처럼 전하는 것이고,
그 전하는 것도 희미하고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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