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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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6-15 07:19 조회10,6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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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신18:13)
최근 이런저런 영적 책망을 듣게 되고 몇몇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제 자신을 살펴보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 하신 말씀이 떠오르면서,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제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하는지 생각하며 고민하는 시간들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과 생각을 주장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가운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하신 신명기의 말씀 앞에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제가 신명기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펼쳤던 마음과 생각의 흔적들을 대화체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 개인의 생각과 사정인 점을 감안해 혹여 일말의 오해라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성령님, 완전하라고 하셨는데, 완전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고 흠 없는 자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완전하라고 명령하신 이유와 뜻은 무엇인가요?
-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의 말씀, 특별히 4절-5절의 말씀을 보라.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사랑으로 예정하사)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상태, 곧 완전함에 대하여 나와 있군요!
- 네가 완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언젠가 네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자로 서게 될 날이 올 것인데, 그날 너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야 할 것이다.
그분의 얼굴 앞에 부끄럼 없이,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은 자로서 당당히 서야 할 것인데, 지금 네 삶의 과정은 그날을 향한 연단의 시간들이다.
너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피를 힘입어 깨끗함을 받은 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너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피를 힘입어 깨끗함을 받은 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그날 주 예수님께서 “저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자녀들을 보십시오”(히2:13) 하며 당당히 자신의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소개할 것인데, 과연 그때 너 역시 당당할 수 았겠느냐?
-......그렇지만 제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을 내가 믿음으로 그 피를 힘입어 나아가는 것 아닙니까?
- 7절을 읽어 보거라.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죄로 인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단절되었기 때문인데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셨기에 그 피가 우리 죄를 깨끗케 하시는 것 아닌가요?
- 물론이다. 피에 대해서는 레위기 17장 11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는 게 좋겠다.
-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여기 말씀에도 분명히 피가 죄를 속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인지, 이 사실을 분명히 믿지만,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영어 성경을 살펴 보거라.
- “For the life of the flesh is in the blood: and I have given it to you upon the altar to make an atonement for your souls: for it is the blood that maketh an atonement for the soul.”(KJV)
-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창세기 2장 7절의 ‘생령’과 같은 의미로, 히브리어로 nefesh를 말한다.
nefesh, 곧 혼이며 생명이며 생령을 말하는 것이다.
nefesh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는 생명을 뜻하는 것임을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은 하나님의 숨에 그 생명이 의존돼 있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자,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 어느 누구나 혹은 무엇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이 우주 안에 누가 있느냐?
자,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 어느 누구나 혹은 무엇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이 우주 안에 누가 있느냐?
-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생명의 근원이 그 안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근원은 그 안에 생기를 불어 넣은 하나님의 숨(호흡)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시냐?
- ??? 예수님은 어떠시다니요?
- 예수님은 사람과 똑같은 육체로 오시지 않았느냐?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자 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생명이 스스로 말미암은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의 숨(호흡)에 의존하는 것이냐?
- 예수님은 당연히 스스로 생명을 갖고 계십니다.
- 육체의 생명,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호흡을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이 살아 있는 생령이 되지 않았느냐? 생령, 다시 말해 생명이 피 안에(in the blood) 있다고 분명히 나와 있지 않느냐?
생령과 피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마치 중력의 법칙이 모든 물질계의 법칙으로서 중량을 갖는 것이라면 물질이든 생명체이든 중력의 법칙의 지배를 받듯이, 생령(생명)과 피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의 유기적인 결합체인데,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 사람이다. 하나님이 부어 주신 영과 진흙이 하나가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되었는데, 그 존재가 아담이며 사람이며 nefesh이다.
그런데 이 생명, 곧 nefesh가 피 안에 (녹아)있는 것이다. 피가 온 몸을 돌고 흐르므로 사람은 존재하며 호흡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말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의 유기적인 결합체인데,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 사람이다. 하나님이 부어 주신 영과 진흙이 하나가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되었는데, 그 존재가 아담이며 사람이며 nefesh이다.
그런데 이 생명, 곧 nefesh가 피 안에 (녹아)있는 것이다. 피가 온 몸을 돌고 흐르므로 사람은 존재하며 호흡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말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피 안에 있는 생명(nefesh) 역시 피를 타고 온 몸을 돌고 흐르는 것이다. 만일 피가 멈추면 사람의 육체의 생명은 끝나게 되고 피 안에 있는 생명(nefesh) 역시 멈추게 되는 것이다.
- 그렇군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피가 멈추고, 혼이 빠져 나간다고 하는 것이군요? 그 혼(영)은 죽은 피 안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 오직 스스로 생명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사람이셨기에 그분 역시 피를 가진 존재였으며, 그분의 피 안에는 그분의 생명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단 한 방울의 피도 남김없이 쏟아 부으셨다. 다시 말해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피와 함께 쏟아 부으심으로 온 우주 공간에 자신의 생명을 방출한 것이다.
이 피는 사람의 피이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피이기에 피조물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지금도 이 예수님의 피는 온 우주 공간을 물들여 충만히 채워져 있어서 그 누구라도 이 피를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 아, 그런 심오한 뜻이......
- 자,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너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이 왜 너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까 보았던 에베소서 1장 7절의 말씀, 레위기 17장 11절 말씀도 그렇고, 또 로마서 3장 25절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다”(KJV)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구약 전체 수많은 말씀들이 예수님의 피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다고 약속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약속하시기 때문에 그걸 믿는 것입니다.
- 죄는 네가 지었는데 저주와 심판은 예수님이 받지 않았느냐?
- 네, 맞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죽음이 너의 죽음이 될 수 있단 말이냐?
네가 죽어야 네가 죽는 것이 아니더냐?
- ??? 그건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간주해 주셨기 때문 아닌가요?
내가 어떻게 내 죄를 위해서 죽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내 죄에 대해 책임질 수 없습니다.
내 피는 이미 죄로 오염돼 있어서 내 피 안에는 죄가 (녹아)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기 때문에(롬5:12), 내 죄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나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 죄에 대해 책임질 능력이 없습니다. 내 죄에 대해 내가 책임진다는 것은 곧 심판 받아 영원한 형벌 가운데 처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결코 죄에 대해 책임질 수 없고 죄를 해결할 능력도 없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으심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값없이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 삼아주시는 것 아닙니까?
-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다뇨? 왜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십니까?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신다고(민23:19) 하시지 않았습니까?
- 네가 반드시 네 죄 값을 물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 ???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요?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무엇이더냐?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잘들 외우더구나.
그러나 이 말씀대로 자기 죄에 대해 책임지고 죽는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어렵구나.
예수님의 죽으심이 너의 죽음으로 여겨져 그대로 경험되지 않는 이상 너는 네 죄에 대해 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몸이 벌거벗겨져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저주로 몸부림치며 죽어갈 때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너 역시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너에게 무효가 되느니라. 그 고통과 감당할 수 없는 저주의 몸부림이 너의 것이 되지 않았다면 그의 죽으심은 아무런 효력이 없느니라.
너는 정녕 죽었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죽어갈 때에 너도 그와 함께 죽었느냐? 그분 혼자만 죽지는 않았더냐? 그분이 온 우주를 다 주어도 해결할 수 없는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놓아 고통 가운데 죽어갈 때에 너는 편안하게 앉아서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들을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지는 않았더냐?
너는 결코 죽지 않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너는 네 죄에 대해 네 스스로 책임지고 죽어야 하느니라.
- ??? 제가 죽지 않았다뇨?......
-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았느니라. 죽는 시늉만을 했을 뿐, 결단코 죽은 것이 아니니라.
그들은 언제나 죽기 직전에 십자가에서 내려와 버렸느니라. 십자가를 지고 그 위에 매달리고 조롱과 고통을 맛보기도 하지만, 결코 완전히 죽지는 않았느니라. 언제나 완전한 죽음 앞에서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와 버렸느니라.
완전히 죽지 않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고 부활도 영생도 없느니라. 완전히 죽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느니라. 죽어야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죽지 않고서야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단 말이더냐?
너는 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의....아들입니다.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무엇으로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느냐?
- ........저는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해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가 사함 받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영생을 선물로 받는 것임을, 말씀을 믿음으로 제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그것 말고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몰아붙이지는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저는 제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때에 그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 것을 하나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내 안에 성령님 계시고, 또 성령께서 그것을 믿도록 저를 이끌지 않으셨던가요?
- 나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하기를 원한다.
- 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군요.
그래요. 하나님 앞에서 제가 완전해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18장 13절의 그 말씀이 저를 계속 두드립니다.
- 예수로 네가 사는 것이다.
- 예수님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내가 성령으로 더불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 너는 아직 죽지 않은 죽음이 있다.
- ??? 웬 또 말장난 같은 말들을 하십니까?
-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십자가 위에서 중단되었느니라. 너를 위해서. 너를 살리기 위해서. 너에게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분의 중단된 생명이 이제 네 안에서 계속 이어져야 하느니라.
너의 삶은 이제 너를 살리기 위해 너로 말미암아 중단된 그분의 생명을 네가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너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도 아니니라.
생각해 보거라.
생각해 보거라.
아들의 피를 갖고 나아오는 자를 어떻게 용서하여 그를 아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 피의 주인인 아들, 예수의 생명이 중단되었는데, 그 피를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통해 중단된 아들의 생명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으며 아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더냐?
대신 죽은 아들이 원하는 것 또한 바로 이것이 아니겠으며, 이 때문에 그 아들이 대신 죽은 것이 아니겠느냐?
-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란 말인가요?
예수님이 사셔야 할, 중단된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인가요?
- 네가 아직 죽지 못한 죽음이 있음을 깨달아 돌이킴으로, 아들 예수의 생명이 네 안에 충만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그렇군요. 요즘 제가 이런저런 책망을 많이 듣습니다. 제 본심과는 다르게 보는 것도 있고, 또 저 역시 미련하여 어리석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어서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런 책망을 들을 때에 저를 사랑하시기에 주는 것임을 알아 감사함으로 받기는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막연한 감사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한 자로 세우시기 위해, 제게 부족한 모습들을 자꾸 들춰내심으로 그 부분에서 제가 완전히 죽기를 바라시는 것이군요. 제가 완전히 죽어야 완전한 생명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나저나 올해는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제 안의 부족하고 모난 모습들이 너무 많이 들춰지고, 그래서 깨지고,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나저나 올해는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제 안의 부족하고 모난 모습들이 너무 많이 들춰지고, 그래서 깨지고,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 어린 자에게는 젖을 물리지만 장성한 자에게는 딱딱한 음식을 먹이는 법이다.
구원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다른 이에게 젖을 물리는 자로 네가 세워져야 할 것이다.
- 그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네요. 자극도 되고...... 그래도 정신을 차릴 정도는 해주세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잖아요? 여기저기서 저를 때려대니 저도 참 힘이 듭니다.
-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
책망을 달게 받으라. 책망을 사랑하라. 좋은 것만을 네게 먹여주는 자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니라. 책망을 사랑하는 자가 그를 사랑하는 자이니라.
네가 책망을 사랑해 달게 받아 먹을 때에 네가 책망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를 위하는 것임을 네 스스로 입증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협력이나 동의, 도움을 주는 정도로는 결코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미 네 자신이 알고 있느니라.
- 네...... 모든 것이 저를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시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임을 압니다. 저를 사랑하시기에 저의 부족하고 모난 모습들이 자꾸 드러나게 하시는 것임을 제가 압니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모난 것은 깎아내야지요. 그럼요. 더 부서지고 깨어지고 깎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제가 죽을 수 없으니까요.
아, 십자가의 길이라는 게 달리 있는 게 아니군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아들답게 살도록 계속해서 연단의 회초리를 맞아야 하는군요. 아버지 나라에 갈 때까지......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엡4:13, KJV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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