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을 읽다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5-03-22 17:18 조회9,590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요한복음을 읽다가……
성경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부분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가 여러 모양으로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림자와 같은 구약을 통해 신약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도 되고, 신약을 통해 구약의 감추어진 비밀이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아담이 그 아내 하와가 건네준 선악과를 일체의 거부감도 없이 받아먹은 구약의 사건은 사도 바울이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한 신약의 로마서(5장 14절) 말씀을 통해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 가운데 일어난 것임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을 만나 기쁨으로 듣고 가는 중에 제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말씀이 바로 선악과 사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런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선악과 사건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가운데 예정된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동의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신성엽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신성엽이라는 사람은 어쩌면 이단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저는 괴로웠고, 저의 마음은 괴로움과 번민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싶었습니다.
신성엽 목사님의 모든 말씀에 내 영혼이 동의하고 이제껏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아멘’하며 들어 왔는데, 선악과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선뜻 동의할 수 없었고, 혹 이단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가르침에는 동의가 되면서 유독 한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일까?…….’
어찌하면 좋을지, 여러 날을 고민하며 고통 하던 저는 몇 날 며칠을 씨름하며 창세기 말씀을 제 나름 살피게 되었고, 마침내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신성엽은 이단이다!’
제 이성이 내린 아주 단호하고도 분명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의 모든 말씀을 멀리하며 듣지 않기로 결심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제 안에서는 ‘네가 틀렸고 신성엽 목사가 맞다. 만일 네가 틀렸고 신성엽 목사가 맞다면?……’ 하는, 알 수 없는 느낌이랄까, 혹은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두렵고 고통스런 마음으로 신성엽 목사님의 창세기 말씀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듣기 시작했습니다.
듣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창세기 말씀을 1번부터 다시 돌아가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창세기의 말씀을 듣고 들었지만 신성엽 목사님의 전하시는 말씀 그대로 백 퍼센트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은 여전했고, 가슴에 칼이라도 꽂고 있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으로 꼭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대로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순간에 정신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내가 꼭 그런 꼴이구나!’
그러나 무어라 거부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음성을 외면할 수가 없었고, 고통 가운데 울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서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말씀이 유독 제 귀에 많이 들려 왔고, 그 말씀처럼 ‘하나님 아버지, 제가 죽습니다. 제 생각과 이성과 판단을 다 내려놓고 죽습니다……제가 죽지 못해서 들을 수 없는 것이라면, 구하오니 저를 죽여 주세요! 깨닫게 해 주세요!’ 하며 피눈물로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날들을 깨닫기 위해 씨름하며 고통 하는 가운데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가 제 마음 가운데 떠올랐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과 그 아들의 가출(?)을 허용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어쩌면 선악과 사건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차츰 선악과 사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신성엽 목사님의 전하시는 모든 말씀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얻게 된 교훈은, ‘신성엽 목사님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믿는다!’였습니다.
누가 들으면 신성엽이라는 교주에게 빠진 맹신자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깨달을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하나님의 깊은 곳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제 자신이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더라도 영적 지도자의 가르치고 전하는 말에 대해서는 ‘네, 알겠습니다.’ 하며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우상으로 들끓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했을 때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순종했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 어떤 변명이나 이유 대지 않고 즉각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본분이요 도리라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태도에 대해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한심한 맹종자라며 손가락질하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든 말든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일 뿐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하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지시했을 때, 아브람이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렇게 지시한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비록 저의 경우를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련의 경험을 통해 저는 성경 말씀은 오직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성엽 목사는 이단이다.’며 내린 제 이성을 향해 ‘네가 틀렸고 신성엽 목사가 옳다.’고 했던 제 안의 알 수 없는 느낌(감동)에 순종한 그것이 저를 오늘까지 이끌어 왔고, 또 앞으로도 이끌어 가리라고 믿습니다.
요한복음을 읽는 중에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베다니로 급히 돌아가시지 않고 이틀이나 더 머무십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서 일부러 이틀이나 뭉그적거리신 겁니다.
병든 나사로는 결국 죽게 되고,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베다니에 돌아갔을 때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시체가 썩기 시작하면서 냄새까지 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나사로를 살리시겠다며 무덤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죽기 전에 빨리 와서 고쳐 주시기를 부탁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으시고 이틀이나 더 뭉개시더니,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이제야 살리시겠다고 하시니, 그 누이들도, 주위 사람들도 예수님의 그런 처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37절) 했던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올 것이었으면 진즉 와서 병든 나사로를 고쳐 줄 것이지, 죽게 내버려 둔 예수님 처사를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49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요5:49-53)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살리셨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나사로도 그렇게 말씀 한 마디로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사로가 아예 죽기를 바라 이틀이나 더 뭉그적거리셨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 병든 나사로를 살려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겁니다.
본래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 이들 형제들을 사랑하셨다면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사랑과는 정 반대로 나사로를 죽도록 내버려 두셨으니, 예수님의 그런 처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4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갖고 계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드려지실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미리 보여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23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병든 나사로를 통해 미리 보여 주시기를 원하셨고, 그렇기에 병든 나사로가 죽어 가는 중에도 그를 고치러 서둘러 가시지 않고 반대로 그가 죽기를 바라 일부러 이틀을 더 유하셨고, 마침내 나사로가 죽고 나서야 움직이셨던 것입니다.
마르다의 고백처럼,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그대로 하늘로 올라갈 들림의 신앙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뿐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을 간직한 자라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 생명의 생명, 생명의 근원이심을 가르쳐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사로는 필연적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다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 둬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경험해야 부활을 경험할 수 있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죽은 자라야만 다시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사로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릴 병이요,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부활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영광 받으실 병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사로의 죽음은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 안에서 예정된 죽음이요, 반드시 겪어야 할 죽음이요, 반드시 죽어야만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읽으면서 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선악과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쩌면 그리도 꼭 닮았는지, 구약판 선악과 사건을 신약판 버전으로 읽는 것 같습니다.
‘정녕 죽으리라를 받아들여야만 예수님이 오셔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며 당당히 외치시는 신성엽 목사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아무리 듣고 들어도 늘 처음 듣는 것 같고, 캐내고 또 캐내도 새로운 보물들로 가득한,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생의 말씀을 들으며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은혜인지, 오늘도 감사, 감사, 또 감사하며, 이 생명의 말씀이 더 많은 나라와 민족과 언어권 가운데 전해지기를 바라 기도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차고 넘치도록 거두신 예수님께, 그 예수님의 손 위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기를 바라 기도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6:9)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부족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작지만, 그러나 내가 아닌 예수님이 이루시고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 기도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성엽 목사님을 통해 주시는 이 생명의 말씀을 듣기를 바라고, 들을 귀 있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내 평생의 소원, 내 유일한 소원, 오직 그 한 가지만을 바라 기도합니다.
오직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바라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57:5,11)
댓글목록
영인님의 댓글
영인 작성일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은혜로님!
신앙의 연단을 위한 영적인 전투에서승리하며 가는 모습에 기쁨니다.
신성엽은 이단이다 라고 결론 내렸던 은혜로님의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이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요 성령님이 신성엽목사님과 함께 전하신 것임을 깨달아 믿게 하여 주신 것 성령님이신것을 믿습니다.
이제는 온세상에 전하고 싶어 내 평생의 소원, 내 유일한 소원이라 고백하며 오직 그 한가지만 바라 기도 한다는
은혜로님의 하나님의 사명과도 같은 자기 할일에 대하여 알게 하여주시기까지 하셨구나 생각하니
내 마음에도 큰 감동으로 동합니다.
은혜로님의 믿음과 기도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앞으로 돌아와 온전 한 구원안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의 역할이 될 것이라 믿어 같은 마음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