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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생자란? (요3:18)신성엽목사님말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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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인 작성일15-04-13 10:42 조회12,78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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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5:
 
                                                                                   독생자, 은혜, 진리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맘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4,16-18)
 
 
 
오늘은 14절에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신 것과 16절에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하신 것과 17,18절을 연결해서 말씀을 깨달아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독생자의 영광이요 또 18절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신 독생자에 대해서인데, 그런데 독생자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이제 정확히 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도 오늘 말씀의 순서니까 그 뜻을 재차 말씀드리려 합니다. 아멘이십니까?
‘독생자’하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하나뿐인 아들, 독자라 했으니 외아들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대표 기도를 해도, 설교를 해도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하나님은 외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으니……. 외아들을 내어주신 그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크시냐? 그러니 너희들 감동 좀 해 봐라 하는 식으로 외아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아멘'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외아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 만들어 놓으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뱃속에 들어 있다가 우리사람처럼 배불렀다가 어느 날 배 아파 낳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마리아를 아내로 두셨나? 하는 이런 계산이 들어오고, 착각하여 상상이나 하게 되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골치 아프다. 알면 뭐하고 모르면 또 어떠냐!’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믿는 예수님을 아는 능력도 없고 바른 믿음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믿음이 바로 설 수 없도록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이런 일들로 인하여 같이 구덩이로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사단에게 치욕거리가 되게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독생자’하는 것은 ‘외아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그 사건 속에서 ‘네 아들 네 독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독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말하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독자라 하셨으니 당연히 아들이 하나여야 맞는 말이잖습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이삭만 있었습니까? 이스마엘도 분명히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모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독자라 하심이 아니고, ‘오직 이삭만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난 자’라는 뜻에서 독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유일한 아들이라는 뜻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독생자가 누구십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독자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에서도 ‘외아들’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로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동의가 되고 깨닫는 바가 되면 즉시 무지함의 죄를 회개․고백하고 외아들이라고 하던 것을 그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외아들’하는 것은 예수님의 본질도 모르고 독생자의 본질의 뜻도 모르고 그 영광의 뜻을 아주 가치 없게 왜곡하여 놓는 일로써, 복음을 제대로 흠집 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뜻을, 예수님의 깊고 큰 뜻을 가진 ‘독생자’에 대해서 그렇게 한낱 ‘외아들’이라는 것으로 가려 놓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버리는 사단의 작전이요 거짓된 것을 유포하는 사단의 흉계일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외아들’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뜻’이 되는 구원도, 죄 용서도, 영생을 얻는 그 어떤 것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십니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에는 아들의 신분으로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요1:1-18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 예수님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셨고, ‘말씀은 신성과 인성이시라는 것이요.’ ‘신성은 영이요 인성은 생명이요.’ 그러므로 신성과 인성이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인성)으로 계셨던 분, 그 독생(인성)하신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품속에 함께 계셨던 독생(인성)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실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눅1:31-32) 했고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품속에 함께 계셨던 말씀이 하나님 품속에서 나와 여자를 통해 사람으로 나타내실 때는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버지이시요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그분은 아들이시다 하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있게 한 누가 있습니까?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이요, 아들의 행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일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4절에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한 것이 바로 그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도 나를 보는 것은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12:45)하셨어요.
그러면 독생자의 뜻이 무엇입니까? ‘독생자’하는 것은 지금까지 요한복음1장에 들어와서 말씀드린 것, 계속 예수님에 관하여 말씀드렸잖아요? 그것이 독생자의 뜻입니다. 다시 요약해 드립니다. 한 분 하나님의 품속에 말씀, 즉 인성의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유일한 생명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생명이요, 생명을 주시는 생명이요, 구주가 되시는 유일한 생명이다. 하는 이것이 독생하신 하나님이라 하시는 것이요, 독생하신 하나님이 아들로 나신 것, 즉 사람으로 오셨다는 이것이 독생자의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이신데, 인성 안에 유일한 생명이 있어 그 생명은 생명을 주는 생명으로 참 사람의 생명이요, 의가 되시는 생명이요, 거룩한 피를 흘리실 수 있는 생명이요’ 하는 이것을 ‘독생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이 세상에 구주로 보내신다고 언약하셨던 그 유일한 생명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한마디로 독생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독생자의 뜻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의 품속에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이분이, 아버지로부터 나와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 같은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을 확실히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보니, 즉 복음을 전하시고,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죄 사하시고, 구원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많은 무리를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자연이 복종하고, 중풍 병자를 치료하시고, 문둥병을 깨끗케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나셔서 하늘로 올 리우시고, 그 모든 일의 영광을 보니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바로 그분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계시던 참 사람(독생)이신 그분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셔서 행하시는 그 모든 일을 보니 참으로 독생자요 독생자의 영광인 것을 확실히 사도 요한은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독생자를 주신 것은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독생자라 하신 이 독생자에 대해 분명히 알고 이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독생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하도록,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볼 수 없게 하고 독생자 예수님을 믿을 수 없게 하려고 인본주의자들을 ‘주의 종’이라는 자리에 세워서 독생자의 뜻을 가려놓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외아들이라는 것으로 연막을 쳐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생명 없는 예수를 믿는 겁니다.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사람의 영이 구원받아야 하는 것도,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주 무지하여 모릅니다.
독생자를 '외아들'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생명의 뜻을 인간이 자기 머리로 가려 놓는 어리석음이요, 사단의 흉계요, 바리새인이요, 서기관입니다. 예수님을 전혀 의식 없이, 다시 말해 확실한 뜻을 모를지라도 마음에 ‘외아들’ 하는 것이 어쩐지 걸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래도 믿음에 가능성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외아들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이, 확신도 없이 그저 앵무새처럼 따라 외우고 또 그렇게 아는 것이면 그것은 예수님 믿는 것 아닙니다.
 그 외아들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가운데 외우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무슨 구원이 있고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외아들이라 하는 것에 구원이 있는지 생명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외우고 받아들인 것이면, 그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니 예수님과는 거리가 먼 겁니다. 구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생명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그 독생자의 이름을 믿는 자라야 멸망치 않는다 하셨으니, 그러므로 지금까지 말씀드린 독생자라고 하신 생명의 뜻을 잘 듣고 자기 믿음으로 받아들여 믿는 예수님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 분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을 우리도 봐야 하는 예수님이요, 이같이 예수님에 대해서 확실히 열어드리는 것을 가지고 오히려 더 깊고 더 큰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이같이 말씀을 열어서 최고의 음식으로 만들어 입에 넣어 주는 것과 같이 드리는 이 말씀을, 참으로 믿음을 위해 사는 것이면, 말씀을 깨달아 보기 위한 고민이 있었다면, 참으로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말씀으로 만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앞에서 아무런 말씀의 맛도 모르고 감각들이 없다면 그것은 왜이겠습니까? 믿음을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믿음은 독생자를 분명히 알고 독생자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제 여러분이 독생자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분명히 아셨습니까? '외아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생명의 뜻을 가리고 생명 얻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과 원수 된 인본주의가 펼친 연막이요, 그 근거가 누구로부터인지 분명히 아셨습니까?
제가 <조용기 목사에게 하나님의 주신 경고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나간 말씀 동영상 후반부에 이 외아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여러분이 거기서 다시 듣고 참고하여 분명한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듣는다고 돈 내라 하지 않을 테니까 듣고 바로 서시라는 말입니다.
그다음 14절에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무엇이 충만하더라. 입니까? (은혜와 진리) 독생자의 영광인 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했습니다. 그러니까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께서 이 독생자의 영광인 충만하신 은혜와 진리를 받아서 은혜 위에 은혜가 되셨습니까? 그런데 독생자도 모르는데, 예수님도 모르는데, 그래서 외아들이라 하는 것에 무지한 수준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은혜와 진리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어떻게!
먼저 ‘은혜’는 뒤로 미루고 ‘진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라고 하는 것은 ‘참 법이라는 말입니다. 진짜 법, 그러니까 절대로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법,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법이요, 하나님 나라의 이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 쪽에서는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 이럴 수 있느냐? 저럴 수 있느냐? 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무조건 받아 들여야만 사는 법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히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서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확고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와 법 앞에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무조건 받아들여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생자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는데 요14:6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헬라어로 진리를 ‘알레데이아(ajlhvqeia)’라고 합니다. 알레데이아는 감춰진 것이 드러난 실제, 살리는 참 법, 생명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실제 법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의 법이 실제로 보이도록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법이 되시는 분, 생명의 법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 이 진리는 참이요, 영적인 것이요, 신령한 것이요,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는 것으로, 살리는 생명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에게서 나신 이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삼년 반 동안 행하신 모든 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신 이것이 진리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이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모든 인류를, 즉 이 모든 진리를 믿는 자를 사망 권세에서 놓임 받게 하시고 죄를 사하여 자유 얻게 하신 이것이 진리요, 이 진리로 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병을 짊어지신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늘로 가신 뒤 성령님을 보내신 이것이 진리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모든 것이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즉 독생자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참 법이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은혜와 진리가 차고 넘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참 법' ’진리'이신 데 또한 예수님이 이루시고 행하셨던 모든 일도, 그리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도 다 ‘참 법' '진리'이시니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모든 진리의 법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가진 자마다 그 진리의 법에 적용되어 죄에서 용서받아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17:17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시니 이 진리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을 거룩케 한다 하셨고 또한 오직 예수님만이 죄를 사하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보내신 죄인이 용서 받는 법이요,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법이요, 저주가 떠나가는 법이요, 날마다 용서 받으며 사는 법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이요, 생명 얻고 영생하는 법이요, 마귀와 귀신들이 굴복하고 쫓겨 가는 법이요, 병이 치료되는 법이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법이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웃기는 소리가 어디 있냐고 비웃어도, 바로 진리이시고 하늘의 법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신 자는 그 모든 진리의 법에 적용되어서 그대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님이 믿는 자 안에 가지고 오신 이 진리가 지금도 앞으로도 진리의 법이신 예수님으로 죄 사함을 얻고, 생명을 얻고, 마귀와 귀신들을 굴복시키고, 모든 병, 즉 영과 혼이 치료 되고 육체의 병이 나음을 얻는 영원히 죽지 않는 법으로 역사가 나타나는 법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삼년 반 동안 다니시며 행하신 일들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 독생자의 영광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다 할 때 이 진리를 알고 이 진리의 법에 적용되기만 하면 너무나 자유 한 것입니다. 무거움이 전혀 없습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아주 가볍고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에게 들어온 영적인 저주, 즉 죄와 사망에 대한 영적 지식이 있고 이 진리의 법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다면, 그 영혼의 수고와 짐이 다 벗어지기 때문에 참으로 자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하여도 사람에 대하여도 물질에 대하여도 참으로 당당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에 서 버리면 그 진리가 그렇게 쉽고 당당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믿으려면 믿음을 위해 살 것으로 뜻을 확실히 정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위해서 훈련해 나가야 합니다. 진리로 살고 진리로 자유를 얻고 진리 위에 서도록 끊임없이 훈련을 계속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죄를 장사지내 버렸고(옛 생활, 옛 사람), 피로 죄를 사하여 죽음에서 건져 의로 살게 하시고, 병을 가져가 버리셨고, 마귀의 권세가 깨져 모든 저주를 속량하신 이 진리를 내게 주셨으니, 이 진리를 가진 나는 죄에서 자유하다. 난 죽음으로부터 자유하다. 용서 받았으니 나는 자유하다. 예수님의 생명을 얻었으니 나는 영생한다. 나는 다시 산다. 나는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하다.
세상이 병으로 가득 차서 병의 노예가 되고 병의 고통을 받고 병들까 불안하여 병과 두려움에 짓눌려 있지만, 나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셨으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나음을 얻게 하신 그 진리의 참 법을 내가 가졌으니, 내 것이 되었으니, 나는 병에서 자유하다. 나는 가난으로부터 자유하다. 나는 모든 저주로부터 자유하다. 이 진리의 법이 내 것이 되었다! 하는 외침이 자기 영혼에서 올라와 외칠 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진리의 법을 가진 그 앞에 사단과 그의 영들이 쫓겨나가는 것이요, 속일 수 없는 것이요, 자유 한 것이요, 쉽고 당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가지고 오신 이 진리의 법으로 온전한 자유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아무에게나 내줄 수가 없는 것이요, 영적인 것이요, 신령한 것이요, 참 법이기에 ‘참'과 진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내주는 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는 자에게 내줄 수 없는 법입니다(요8:31). 예수님의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진리가 적용되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참'이신 예수님을 제쳐 놓고 거짓을 진리라 하여 따르고 거기에 목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 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수모를 당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람들 속에 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과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신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똑같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사랑하여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요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진리가 없다는 거예요. ‘거짓'이 제 것이요, 그래서 거짓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에 속한 자는 그 속에 진리가 없어 진리에 서지 못하고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믿는다 할 때 진리에 서지 못하는 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속에 진리가 있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도 싸워 이기며 기어코 진리에 서게 되는 것이요, 그 속에 진리가 없으면 진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여러분! 그가 진리의 사람이냐? 진리가 없는 사람이냐? 예수님이 답을 정확히 해 주셨습니다. 알아들으십니까?
그다음 '은혜'입니다. 그 독생자에게 은혜가 충만하다 했습니다. 이미 은혜에 대해 듣고 배우신 분은 자기의 은혜가 되었는지도 자기가 잘 아실 것입니다. 은혜를 원어로 카리스(charis)라고 합니다. 카리스는 그 뜻이 ‘값없이 주는 선물,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값으로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선물로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못 박혀 죽으셔야 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6:20)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고전7: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야 할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천국을 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아주 충만하여 흘러넘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2:11-14)고 한 이 내용을 우리 다 배우셨잖습니까? 에덴동산에 네 개의 강을 두시고 강마다 이름을 주어 우리로 하나님의 영적인 뜻을 알도록 하셨잖아요? 그 중 둘째 강의 이름을 기혼이라, 그것은 곧 하나님이 거저 값없이 주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은혜라고, 하나님이 은혜를 흘러넘치도록 주신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비옥한 땅이 되어 풍요로움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그같이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영적 부유가 흘러넘치도록 풍부하게 하실 것이라는 그 뜻대로 바로 오늘 독생자 안에 그 은혜가 충만하게 있다고 한 것입니다.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셨습니다.
 죄에서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은 죄를 혐오하고 미워하고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버리고 싶어 하지만, 스스로는 죄를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죄를 내놓고 고백하는 자마다 용서하시되 깨끗하게 해버리겠다고, 예수님의 피가 죄를 사하시는 피로 전혀 부족함이 없고 흠이 없는 완전한 것으로, 그 용서의 은혜가 날마다 넘치는 생활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롬5:15에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넘쳤나니라고 했는데 여기의 넘쳤나니 는 ‘강’이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왜 은혜가 넘쳤다고 하는 것일까요? 혈통을 타고 내려 온 인간의 원죄, 그것은 영적인 죄인데, 그 영적인 죄를 용서하시고 또 살면서 지은 과거의 죄도 용서하시고 어쩔 수 없이 지은 오늘의 죄도 용서하시고 미래의 죄까지도 깨끗이 용서하시는, 또 세상의 유혹에서 건져 내시는 하나님의 넓고 크고 깊고 높으신 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생활, 용서가 넘치는 생활, 죄를 내놓고 용서 받을 수 있는 이 은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요, 그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하신 것입니다. 죄 용서의 은혜가 넘치는 데, 그 은혜위에 은혜가 또 있다는 것입니다. 죄용서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진리의 법으로 자유하게 하고, 천국이 그의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주신 은혜라는 거예요. 성령님이 가져오신 진리의 법으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이런 엄청난 은혜가 있고 아버지께 영생하러 가는 그 은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은혜를 입으려면 무엇부터 알아야 하겠습니까? 율법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모든 사람은 다 죄인으로 정죄당하여 사망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정죄당한 자기를 봐야합니다.
 하나님께 죄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나간 죄악의 삶을 산 자기를 봐야하는 것입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그 율법을 통해 죄인으로 정죄 받았음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율법만도 613가지라 하는데, 그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살아날 자가 없다는 것을 율법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 인간은 절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으로 정죄 되어서 지옥의 형벌을 피할 길 없는 사람 앞에 용서받고 자유 얻는 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은혜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예수님에게만 있고 그래서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혜로만 율법이 정죄한 그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피 흘리신 은혜로 율법에 정죄당한 그 죄에서 용서 받았다는 것, 예수님의 그 은혜를 입었으므로 이제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는, 성경이 말씀하는 이 같은 확실한 지식을 가진 믿음이 아니면 아직 은혜 입지 않았습니다. 율법과 복음을 알지 못하면 은혜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정죄당한 죄를 알고 은혜를 입고 은혜의 깊이를 아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를 입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 이 독생자의 영광을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로 하였으면 먼저 율법을 알고, 즉 정죄당한 자기를 알고, 그다음 예수님의 죄 용서의 은혜를 입고 의롭다 함을 얻어 진리를 자기의 것으로 경험하는 그것이 순서입니다. 이렇게 죄를 알고 은혜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믿음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 함께 거하는 것이요, 더 구체적인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면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을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보면 그분은 은혜 받은 자에게 아버지이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만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얼마든지 아버지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느냐? 예수님을 보았느냐? 은혜를 아느냐? 은혜를 가졌느냐? 진리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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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님의 댓글

구원 작성일

아멘
언제들어도 샘솟는 말씀입니다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교회의 머리(권세)가되시고 우리의구주가 되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참생명을 주실수있는 생명이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릴수있는 분이란것
모든 교회의머리가(권세가) 되신분
믿는자는 예수님의 권세로 사단이 결박에서
벗어나 자유할수 있다는 것
이제 그 이름을 가졌으니 그 권세를 가졌으니
육으로 물질로 참소하던 모든것에서 자유할수 있다는것
성령의검 즉 말씀을 가지라 했읍니다
즉 성령님은 예수님(말씀)을 갖고 우리안에 오셨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로알고 바로 볼수있게 하십니다
그 한없는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날마다 그은혜를 감사와 찬미의 제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하신다고 봄니다
그것이 믿음의능력이요 저가 내이름을 안즉 내가 건지리라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리고 나를 영화롭게 한다
했읍니다
그이름을 아는것이 영생을 가진다고 하셨읍니다
그리고 참진리를 알아가는 능력을주시고
지극히 선한것을 분별할수 있게 능력주심도
감사하고 아버지께 모든영광 돌림니다

저는죄인입니다님의 댓글

저는죄인입니다 작성일

진리이신 예수님. 저를 진리가운데로 이끄소서.소원합니다.하나님의 참법이신 진리.예수님이 하신 말씀 또한 진리.
두렵고 떨리지만 성령님을 힘입어 그 진리 가운데로 들어갑니다.행 하다가 넘어지고 비틀거리더라도 내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붙들어 일으켜 세우시고 이끌어 가실것을 믿음으로 행하고자 합니다. 내 일상이 또 내삶이 예배가 되는 그날을 꿈꾸며 강하고 담대함으로 진리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큰 용기를 갖도록 말씀 전하시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되시는 목사님 감사드리오며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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