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허용하는 이혼은 언뜻 보면 음행 외에는 갈릴 수 없다는 성경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영적인 의미와 연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믿는 형제나 자매에게 믿지 않는 배우자가 있어서 그들이 이혼을 요구하고 나온다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 영적인 것, 곧 신앙 때문입니다.
(믿는) 형제나 자매나 믿지 않는 자와 갈리지 않고 사는 그 자체가 신앙에 위협을 받는 것이면 이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믿는 자가 믿음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결혼생활에 위기가 온다면, 그래서 이혼하는 것 외에는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이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믿는 형제나 자매로 인해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이혼하지 말고 신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화평 가운데 부르신 것이기에 보이는 사람과의 화평을 지킬 수 있으면 최대한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때는, 자기 믿음(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형제나 자매나 구속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 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기에, 화평케 하는 자로서 최대한 화평을 구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믿음이 손상을 입거나 영적 성장에 심각한 방해를 가져오거나 신앙을 지켜낼 수 없을 정도라면, 굳이 또 그렇게 구속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혼이나 결혼의 문제도 결국 영적인 것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이혼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의 관계로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책임져 주시는 남편과 같은 존재이고, 우리는 그 남편만을 사모하며 남편의 보호와 돌봄 가운데 사랑의 다스림을 받는 아내와 같은 존재입니다.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관계로 우리를 부르셨고, 그 한 몸 됨의 관계는 하늘이 정하신 것이기에 결코 갈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행을 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관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결코 갈릴 수 없지만, 그러나 음행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한 몸이 아닌 남남이 되는 것입니다.
음행이란 무엇일까요?
육체적으로는 바람을 피우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영적인 간음, 곧 예수님 외에 다른 남자, 곧 세상과 바람이 나서 딴살림을 차리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고 사모하며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더 좋아 보이고, 세상이라는 남편이 자기를 더 만족시켜 줄 것 같기에 결국 본 남편인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에게 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예수님의 아내가 아니라 세상, 곧 사단의 아내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혼 문제로 자신을 시험하러 나온 바리새인들에게 음행한 연고 외에는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어서, 명문가의 자녀여서, 뭔가 잘난 것이 있고 사랑 받을 만한 건덕지가 있어서 우리를 사랑해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며, 조건 없이 아내로 맞이하여 우리를 돌보시고 책임지시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세상과 죄가 좋다 하며 같이 뒹굴던 창녀와 같은 우리를 아내로 맞아들여 주셨습니다.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 고멜을 취하여 아내로 삼게 하셨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한 하나님의 뜻, 그러나 세상이 좋다 하며 뛰쳐나간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아내로 맞아 주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 자신이 바로 고멜과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혹 바람이 나서 남편인 예수님을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우리가 세상이 좋다 하며 세상과 바람이 나서 예수님을 버리지 않는 이상 예수님 편에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늘이 짝지어 준 것을 그 누구도 갈리게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 편에서 음행한 연고 외에는, 예수님 편에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영원히 우리의 남편이 되어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시며, 아끼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기님,
이혼과 재혼에 관하여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정리 받기를 원해’ 그렇게 하셨다고 했지만, 예기님께서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부득이 다시 답글을 올리게 됩니다.
예기님,
예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정리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이혼과 재혼에 관하여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사람에게 정리 받고 사람을 통해서 확증을 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철저히 말씀을 살피고 말씀 안에서 정리를 하고 확증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더군다나 예기님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이끌어가야 할 목회자이시니, 성도들 스스로 말씀 안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본을 보이고, 깨닫지 못하는 부분들을 말씀으로 가르쳐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과 성령 안에서 도와주고 이끌어줘야 하지 않겠는지요?
세상이 참으로 요란하고 복잡하고 시끄럽습니다.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도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예기님이 말씀하신 그 부부의 경우도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그런 경우는 남사스러운 것인데, 교회를 다니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한 행동과 처신을 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보다는, 한없는 탄식과 절망의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기님의 글을 읽자마자 제 마음 가운데 떠올랐던 말씀은 고린도전서 5장의 말씀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5장을 꼭 읽어 보세요.).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5:12-13)
가장 큰 염려는, 교회 안의 작은 누룩을 허용했을 때 그에 따른 파장 내지는 악영향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했습니다(고전5:6).
그렇기에 누룩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고, 또 사단이 이 부부의 문제를 통해 끊임없이 교회 공동체를 참소하고 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에, 분명하고도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 부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게 태도를 결정해야 할 문제이자, 또한 교회 공동체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 안에서의 예기님의 태도와 정리와 확증이 필요하고, 성령님의 도우심과 지혜 가운데 문제를 해결해 나가시되, 말씀과 성령이 무어라 하시든 그 어떤 이유나 변명 달지 않고 분명하고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부디 말씀과 성령 안에서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 예수님만 드러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