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 때"는 언제인가?......천년왕국에 대한 견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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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4-10-27 15:29 조회4,3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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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 때"는 언제인가?......essence님의 글에 대한 답글
essence님께서 댓글을 통한 저의 질문에 답글을 올리셨기에 이에 대한 답글을 저도 또한 올립니다.
essence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천년왕국이라는 특정한 나라의 도래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관심도 없으며 신앙에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견해부터 말씀을 드리면, 저는 천년왕국의 도래를 믿습니다.
essence님께서는 개혁주의적 신학의 관점을 수용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셨지만, 저 역시도 개혁주의적 신학을 고수하는 보수 장로교의 신자이지만, 저는 천년왕국의 존재와 도래를 믿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한 말씀들을 살펴봄으로써 글을 전개해 가고자 합니다.
먼저, 이사야 11장입니다.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6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13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4그들이 서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15여호와께서 애굽 해고를 말리우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1~5절 말씀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천년왕국의 때에 예수님이 친히 왕으로 이 땅(세상)을 통치하실 것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위에 제시한 구절들이 천년왕국을 말하는 것이라고 단정을 짓는지 물으신다면, 이어지는 6~10절의 말씀이 그 근거입니다.
6~8절이 묘사하는 광경을 이제껏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역사상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8절을 보십시오.
‘젖 먹는 아이’ ‘젖 뗀 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젖을 먹는 아이, 젖을 뗀 아이가 있다는 것은 생육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고 자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혹 아이들이 독사가 우글거리는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 장난을 치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TV에 나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런 장면이 아니라, 먹고 먹히는 천적의 관계인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있고, 그런 짐승들이 어린 아이에게 다스림을 받으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 그런 일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본 사람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십시오.
행여 들은 적이라도 있다면 알려 주십시오.
저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때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때인데,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알고 들어본 적이 있는 그 지식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관계에서의 그 지식의 충만을 말하는 때입니다.
그것은, ‘여호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의 근거가 바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1~16의 말씀이 그 날, 곧 천년왕국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함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사야 11장이 천년왕국의 때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어느 때를 말씀하는 것인가요?
무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교회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사야 11장에 이어 또 다른 이사야의 말씀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이사야 65장 말씀입니다.
17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19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21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23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24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니 계시록 21장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사야서 65장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제가 essence님께 질문을 했던 마태복음 19장 28절의 ‘세상이 새롭게 되어’의 그 때이며 천년왕국의 때를 말합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을 짓느냐고요?
먼저 25절을 보시면 이사야 11장의 6~10절의 표현과 거의 흡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절을 보시면,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했습니다.
그때에는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죽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남(生)이 있고 죽음(死)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위의 이사야 65장의 말씀이 계시록 21장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 것이라면 결코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죽음이 있다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21:4) 하신 말씀과 상치되기 때문에 이사야 65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은 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과 다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부활의 때, 곧 천국에서는 시집도 아니 가고 장가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22:30, 막12:25, 눅20:34-36).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눅20:34-36)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일이 없고, 여성, 남성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죽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천사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생명을 간직한 부활의 자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에서는 결혼도 없고, 결혼이 없으니 생육이 있을 수 없고, 죽음도 없다고, 분명히, 예수님이 친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11장과 65장에서 묘사하는 ‘그 날’과 ‘그 때’와 ‘새 하늘과 새 땅’의 때에는 분명 탄생(生)이 있고 죽음(死)이 있는 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비록 죽음이 있지만 그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는 어린아이가 독사와 장난을 치며, 사자와 표범과 함께 뒹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때라고 하십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때가 언제 있었던가요?
역사상 없었습니다.
역사상 없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때는 언제입니까?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30)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 죄로 물들기 전의 그 때, 곧 에덴동산의 때가 바로 그러했다고 하십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고, 사람도 채소와 과일만을 먹었던 그 때가 있었습니다.
그랬었는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지 못하고 동물을 잡아먹게 된 때가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로 급격한 자연의 변화(노아의 홍수 심판 이전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바다)로 나뉘어 있었는데, 홍수로 인해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지게 되었고, 그 물층이 오존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사료되는데, 홍수 사건 이후로 이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지면서 지구의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공룡들도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았을 것이라고 봅니다.)로 식물이 아닌 동물을 먹게 되는 환경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창9:3).
천년왕국의 존재를 분명히 말해 주는 또 다른 말씀을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시할 말씀은 계시록 20장의 말씀인데, 제가 essence님께 질문한 마태복음 19장 28절 이하의 말씀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했습니다.
이들은 4절에서 말하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이나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 인해 죽은 자들’과는 다른 자들입니다.
저는 이들을 산 채로 들림 받은 자들, 곧 휴거된 자들이라고 봅니다.
이들 휴거된 자들과 목 베임을 받은 자들과 짐승의 표를 거부한 자들이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4절과 6절에 두 번이나 걸쳐 기록이 돼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천 년을 상징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지만, 저는 기록된 말씀 그대로 천 년(a thousand years)이라고 믿습니다.
그 근거는, 5절의 ‘그 천 년이 차기까지’입니다.
‘그’(헬라어 Τὰ)라는 분명한 정관사를 사용함으로써 특정한 때를 지칭하고 있고, 그 때가 바로 ‘천 년’이 차기까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제시한 이사야 65장의 말씀에서 사람들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모든 자연 만물이 회복되는 그때에는 나무의 수명이 아마도 수백 년은 예사이고 천 년은 능히 넘을 것이라고 봅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아까 제가 말한 대로, 이 계시록 20장의 말씀들이 어떻게 마태복음 19장 28절의 말씀과 연결이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을 보면,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했고, 4절과 6절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돼 있습니다.
보좌에 앉은 자들이 누구라고요?
예수님뿐 아니라 예수님과 더불어 보좌에 앉아 심판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가졌고, 그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 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 노릇을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천국, 곧 계시록 21장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성전이 별도로 있지 않습니다(계21:22).
왜냐하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계21:22).
그때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계21:3), 사람들(이기는 자들)이 친히 하나님의 얼굴을 볼 때이기 때문입니다(계22:4).
그렇기에 예수님과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 노릇을 할 수 있는 때와 장소는, 천년 왕국의 때이며,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마19:28)인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20장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의 때가 끝나고 이어지는 11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크고 흰 보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광대하고 광대하심을 크다고 표현했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완전무결하고 흠 없는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그 큰 보좌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크고 흰 보좌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앉을 수 있으며, 흠 없고 완전한 공의의 심판을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며 심판의 권세를 가진 자들도 보좌에 앉았다고 했는데, 그들이 보좌에 앉을 때란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은 분명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권세를 가졌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고, 말씀은 분명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곧, 천년왕국의 때를 분명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9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어라고 하셨나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쫓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나를 쫓는 너희, 곧 모든 믿는 자들의 터(엡2:20)이자 대표인 제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지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천년왕국의 때입니다.
혹 위의 마태복음 19장 28절이 천년왕국을 지칭하는 때라고 어떻게 단정하느냐고 의혹을 달 수도 있겠습니다.
essence님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놓친 부분이 있었습니다.
essence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 때’만을 생각하셨고, 보좌라는 말에 착안해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하신 말씀을 근거 구절로 제시했지만, 제가 볼 때 이는 마태복음 19장 28절과는 전혀 무관한 구절입니다.
그 이유는, essence님이 놓친 그 부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때, 곧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는 때’는 그 앞에 분명히 명시돼 있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하신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는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계시록 21장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때를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제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처럼, 열두 제자들이 함께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그때, 곧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될 천년왕국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essence님께서 근거 구절로 제시하신 히브리서 2장 12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부끄러움)을 참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그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 곧 교회의 시대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110:1,4)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눅20:43)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행전2:35)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10:12-13)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8:1)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24)
essence님께서 제시하신 히12:2의 말씀은 위에 제시한 여러 구절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때를 의미하며, 원수인 사단의 권세가 깨어져 그 발등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는 곧 ‘세상이 새롭게 되는 때’인데, 그 때는 essence님이 주장하는 교회의 때가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짐승과 그의 거짓 선지자를 산 채로 불과 유황의 타는 못에 던져 넣는 때이며, 용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일컫는 자가 일천 년 동안 큰 쇠사슬에 묶여 결박당한 채 무저갱에 던져진 후(계19:19~20:3) 다시 에덴의 때와 같이 세상이 회복되는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은 모든 신실한 자들이 그 행한 대로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와 심판하는 권세를 받아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마19:30)의 구절도 간단히 나누고자 합니다.
essence님께서는 나름대로 주장하는 것이 있지만, 솔직한 제 심정은 essence님께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당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포도원 비유에서의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마20:16)의 의미는 essence님의 글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나누기 원하는 것은, 마20:16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아닌, 마19:30의 '인자가 그 영광으로 앉을 때'를 말씀하신 그 부분입니다.
마19:28과 마20:16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고 또한 '나중 된 자' '먼저 된 자'의 순서도 다릅니다.
마20:16의 포도원 비유에서의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하신 말씀은, 품삯으로 정한 한 데나리온, 곧 천국을 얻기 위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님의 은혜 앞에 겸손하고 낮아지고 나중 된 자만이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행위와 공로를 의지하는 높은 마음의 소유자들, 곧 먼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어쩌면 하루치의 품삯마저도 얻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19:30의 말씀은 20:16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고 많은 성경 말씀들이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통치의 시대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롬11:28).
또한, 28절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하신 구절을 통해서도 세상이 새롭게 된 그때에는 구약시대처럼 세상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중심으로 나뉘고 그 열두 지파를 중심으로 역사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은 제자들에게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릴 권세를 얻게 될 것이고 영생까지도 상속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러나’ 하심으로써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의 말씀을 하십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는 이스라엘입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는 이방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메시아 언약을 이룰 ‘여자의 후손’의 계보를 이어갈 자들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여 세우심으로 처음 인류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구체적으로 전개해 가셨는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이새, 다윗 왕……맛단, 야곱, 마리아의 남편 요셉’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해 그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메시아를 기다려온 신앙을 대표하는 여자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배척했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에게 “이는 구원이 이스라엘에게서 나기 때문이다.”고 친히 하신 말씀(요4:23)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을 통해 ‘여자의 후손’이 오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할 ‘먼저 된 자’로 택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예수님을 배척하며 복음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그 ‘먼저 된 자’의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고 그 자리를 ‘나중 된 자’였던 이방이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에서는 “가지 얼마가 꺾여졌다”(롬11:17)고 했습니다.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은 원래는 ‘나중 된 자’였지만 ‘먼저 된 자’였던 참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의 완고함으로 인해 그 가지 얼마가 꺾이고 그 자리를 이방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되는 그 때, 곧 천년왕국의 때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세상이 전개될 것이지만. 열두 지파(세상)를 다스리며 심판할 권세는 ‘먼저 된 자’ 이스라엘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은 자라면 그가 비록 ‘나중 된 자’라 할지라도 그를 열두 보좌에 앉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 이스라엘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인 이방은 먼저 될 일이 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마21:28~32과 눅20:9~18 말씀을 아울러 살펴보신다면 제가 말한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의 의미가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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