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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예수님께' 드리는 개인적인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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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7-28 02:38 조회4,503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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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예수님께.

자나깨나예수님께서는 자나 깨나 질문 글을 올리시니 참으로 부지런도 하십니다.
제가 부지런하다고 한 표현을 한 데에는 두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그만큼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열심히 있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 궁금증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음에 의문이 있고 궁금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묻고 보자는 식의 질문은 결코 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열정에 감탄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 적이 불편한 마음 또한 없지 않아 있음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여전히 말씀을 배워 가고 있는 부족한 자요, 평범한 신자에 불과하지만 님의 질문에 함께 고민해 봄으로써, 답을 제시한다기보다는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함께 성령님의 인도와 가르치심을 구하는 의미에서 조심스럽게 저의 생각을 나누고자 하니, 부디 판단하는 마음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질문/상담>란은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곳이기에 비록 정답은 아니더라도 함께 말씀을 고민하고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서로 간에 유익이 되고 믿음의 동반자로서 말씀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이해를 가졌으면 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삼위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립니다.

님의 질문을 계기로 창세기 선악과 사건의 말씀을 다시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님의 질문처럼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을까요? 저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것이 해결하지 못할 질문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문을 품거나 성령님께 질문을 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절실한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나깨나예수님’께서 <질문/상담>란에 이 질문을 하셨기에 저도 이를 계기로 성령님께 질문을 해보았지요.
“성령님, 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나요?”
“......”
성령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안 하시더군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창세기 말씀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고, 졸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또 졸면서도 비몽사몽 중에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뭐 그러다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창세기 말씀들을 다시 살펴보니 아담과 하와가 내쫓기는 장면의 구절이 창세기 3장 23절이더군요.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사 그의 출처가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KJV흠정역)

그런 까닭(therefore;그러므로), 즉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이유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 까닭은 바로 앞 구절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신 이유는, 그들이 선악을 알게 되었는데, 선악을 알게 된 그 상태 그대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해서 그렇다고 분명히 그 이유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떤가요? 님의 질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것에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요?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네요.)
자, 그러면 신성엽 목사님의 창세기 말씀들을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봅시다.
선악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들에게서 듣고 배운 선악의 개념은 선한 것, 악한 것 등등 뭐 그런 것이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선악에 대한 뜻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선이신 하나님(예수님, 율법, 성령 등이 선이라고 배웠지요.)과 악의 실체인 사단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상 아담과 하와는 선을 택한 것인지 악을 택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으로 보입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동물의 피 흘림의 희생을 통해)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습니다.
22절에 보면 선악을 아는 자 중의 하나가 된 아담과 하와가 그 상태로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그대로 영생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출처가 된 땅, 곧 흙을 갈게 하셨습니다.
땅, 곧 흙을 갈게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땅을 갈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그런 의미라면 농사짓는 자가 되었던 가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고 양치는 자가 되었던 아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한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다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을 간다는 의미가 단순히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요? 저의 견해로는 땅을 간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근원인 흙,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을 경작하고 가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 넣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먼지와 같은 존재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호흡, 다시 말해 당신의 생명을 불어 넣으심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생령(네페쉬)이 되었는데, 네페쉬란 하나님께 의존함으로써 살아가는 의존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이에 대해서는 저의 간증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를 읽어 보시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숨을 의존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게 되면, ‘훅’ 하고 불면 사라지고 말 흙먼지와 같은 존재가 바로 아담과 하와이며 우리 자신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네 근원의 강이 흐르고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네 근원은 곧 하나님(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임을 신성엽 목사님의 창세기 말씀들과 최근에 업로드 된 <천국에 들어갈 자> 말씀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을 예표하며, 천국은 하나님이 친히 법이 되시고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곳은 이기는(overcome)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며 환영하고 그분의 다스리심에 연단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기는 자는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니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계21:7)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21:3)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이제 그들에게는 그들의 근본 된 토지인 육(육의 본능)과 육의 지배를 받는 성품과 기질을 경작하고 다스릴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가 천국을 예표하는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그들의 근본 된 육을 다스리고 경작함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을 자들로 변화되고 다듬어질 때에만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21:27)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을 예표하는 것인데, 예수를 믿어 죄 사함 받는 것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행위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러나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말장난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결코 말장난이 아닙니다. 제가 위에서 제시한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의 특성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들에게서는 하나같이 육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분명하다면, 그들은 그들의 생애 동안 그들의 근본 된 토지인 육과 그 본성을 경작하고 다스림으로 그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 됨의 성품을 열매로 드러낼 수 있고 반드시 드러내야 합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6:7-8)

밭가는 자에게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그가 가죽옷을 입은 자이며, 용서 받은 죄인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면 그는 애초부터 가시와 엉겅퀴였던 것이지 무화과나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 하더라도 그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얻을 수 없고 포도나무에서 엉겅퀴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난 자,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힌 자는 반드시 새로 태어난 본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고 그에 맞는 열매를 반드시 맺게 돼 있습니다.
그 나무가 무화과나무인지 엉겅퀴인지를 판별하는 유일한 기준은 그 나무에서 나는 열매입니다. 만일 그 자신은 무화과나무라고 확신하는데 열매는 엉겅퀴 열매를 맺는다면 그는 거듭난 자가 아니며, 제 스스로 가죽옷을 지어 입고 짐짓 거듭난 체하는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행위 구원이 무엇인가요? 내가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그 행위에 근거해, 구체적으로는 율법에 규정된 행위들을 통해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요?
또한 제가 생각하는 행위 구원은, 그것과 함께 더 나아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자가 가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이 아닌 자기가 보기에 그럴듯하고 고상하고 결과 지향적인 구원관을 갖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은 받아들일 수 없는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propitiation;달래기, 화해, 속죄)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롬3:23-25)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만이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하고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을 달랠(화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행위 구원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는 곧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노력과 자기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글이 잠깐 곁길로 빠지긴 했지만,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가죽옷을 입은 자, 다시 말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반드시 그 본성과 행위가 거듭 난 자로서의 흔적이 드러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아담과 하와는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신세가 되었는데, 이는 곧 죄로 물든 인간 본성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경작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엡4:13)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성령의 다스리심 가운데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기에, 육과 육의 본성과 죄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온전히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의지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나아가는 점진적인 과정, 그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이고, 우리의 근본 된 토지(흙)를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 미숙하여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분명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으로 지음 받았고, 수백만 종류의 동물들의 이름을 직접 지을 정도로 그 지혜와 지적 능력이 탁월한 자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린아이가 그렇듯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담(하와)이 그 열매를 따 먹은 것은 그것을 봄으로 인해 먹고 싶다는 욕심에 이끌렸고, 그 욕심, 다시 말해 먹고 싶다는 육의 본능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3-17)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오직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며, 죄는 욕심의 결과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님의 질문과 같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죄로 인해 자신들을 죽음에 내어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마련한 결과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보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인데 왜 에덴동산에서 내쫓기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다시 봉착하게 됩니다.
저는 이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마침내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심으로 십자가 죽음을 결코 원치 않는 고뇌하고 갈등하는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원하셨지만 또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우주보다 무겁고 고통스러운 형벌 가운데 자신의 아들이 죽기를 결코 원치 않았지만, 인류의 죄를 대신한 속죄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했던 것이 또한 하나님의 마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하셨지만 원치 않으셨고, 원치 않으셨지만 기꺼이 원하셨던, 이 모순되고 이중적인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자신의 아들이 죽기를 바라는 아비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러면서 또한 자신의 아들이 누군가를 대신해 죽는 죽음 앞에서, 내려오라고, 그 처참한 십자가에서 어서 내려오라고 소리 지르며 혼절하지 않을 아비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아들이 고통 가운데 죽기를 원치 않으셨지만 기꺼이 희생 제물로 죽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과연 우리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거짓됨이 없으시며, 한쪽으로 치우침도 없으시며, 완전한 빛 그 자체로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셨고,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하와)은 그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먹었으니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 따라 반드시 죽어야만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아담에게는 죽음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담(하와)의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물론 그들 자신이 육의 본능을 다스리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 육의 본능을 부추기고 확대시킨 자는 다름 아닌 뱀(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는 변명의 기회를 주시지만 뱀(사단)에게는 결코 변명의 기회를 결코 주지 않고 곧바로 뱀에게 유혹(죄)의 근원됨을 지목하고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아담(하와)이 비록 선악과를 따 먹기는 했지만, 이것은 뱀의 유혹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담(하와)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그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인 ‘정녕 죽으리라’에 걸렸으므로 아담과 하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정녕 죽으리라’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눈이 곧 밝아져 벌거벗은 것을 알아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끄러워 나무 가운데 숨었습니다. 영생하는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지만 결코 먹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육체의 죽음을 거쳐야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죽음), 가장 친밀해야 할 부부 간에도 서로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관계의 뒤틀림(죽음), 흙에서 취해졌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육적 종말(죽음), 이 모든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빚어진 결과, 곧 ‘정녕 죽으리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부터 우리에게 복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자신의 아들들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우리가 지음 받기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예수 안에서 미리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예수 안에서 택하여 아들들로 택하여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함께 의논하시고 이루기 원하신 뜻이 있었는데, 그 뜻은 다름 아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대로 어떤 존재를 만들어 그로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존재는 동물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바로 사람(아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인 사람이 온 땅에 편만하기를 원하셨고, 그 사람을 통해 이 땅과 바다와 공중이 다스림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발현이며, 거룩한 의지의 표현이며, 또한 지극히 기뻐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동역자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통해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편만하기를 원하셨고, 궁극적으로는 오는 시대에까지(천년왕국, 새하늘과 새땅) 그 영광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제가 올린 글 <하나님의 아들들의 길, 구원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었고, 예정하심이었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아들들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막 선악과를 따먹고 ‘정녕 죽으리라’에 처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하심이라는 영원의 시간의 관점과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에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셨던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내쫓길 것까지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일까요?
그에 대한 저의 견해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아무것도 알고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담(하와)이 선악과를 따먹기를 결코 원치 않으셨지만 또한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에 처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괴변이며 말장난인가 싶지만,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 모든 것은 우리 인간의 지혜와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경륜이요 지혜요 비밀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륜 : 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 또는 그 계획이나 포부(표준국어대사전)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이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정녕 죽으리라’를 적용하셔서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내쫓으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근본 된 땅을 갈게 하셔서 수고하고 땀 흘려야만 먹고 살 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또 한편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용서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변명할 기회를 주시지만 뱀(사단)에게는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 뱀 역시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욥기서에 보면 욥을 자랑하는 하나님께 욥을 참소하며 욥의 의로움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사단을 볼 수 있는데, 그 자신이 본래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참소하고 변명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것이 본질인 사단이 선악과 사건 앞에서는 무슨 영문인지 아무런 변명이나 항변도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뱀(사단)의 침묵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유혹(죄)의 근원이 바로 사단임을, 사단 자신도 인정하는 것이요, 그를 죄의 근원으로 지목한 하나님의 판결이 옳은 것임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부활하실 것에 대해 사단에게는 비밀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6-8)

사단이 만일 하나님의 지혜를 알았더라면 예수님을 결코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 지혜는 비밀이요 감추어진 것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한 예수 안에서 우리를 아들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케 되기를 원하신 것이었는데, 그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사단도 알 수 없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만이 아시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세상에는 감추어져 있으나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열려 있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9-12)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함께 의논하심으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이루기 원하셨던, 지극히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당신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우셔서 우리로 영원토록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는 자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러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하나 됨의 온전한 연합으로의 부르심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을 은혜(선물)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 됨의 영광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그런 말들을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을 만들어서 죄에 처하게 하고 그런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느냐고요. 나는 원치도 않는데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느냐고요.
그런 질문들을 과거의 저 역시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질문들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10, KJV흠정역)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며 존재 목적 또한 하나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그 존재 이유와 목적과 방식이 정해집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바위틈의 꽃도, 바다의 고래도, 히말라야 산맥도, 천 년을 솟아 오른 나무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 존재 이유와 목적과 방식이 정해져 있는데, 그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드러내기 위한 그 한 가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며 우리는 그분이 만드신 그릇이기에, 그 그릇 안에는 오직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빛이시며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만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릇을 만들고 그릇의 사용 용도를 정하는 자는 토기장이인 하나님이시지 우리 자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그릇 안에 썩은 음식이나 배설물이나 더러운 이물질이 담겨져 있다면 그 그릇은 버려지든지 깨끗이 씻어 다시 사용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그릇들과 같은 우리들을 내다 버리지 않으시고, 예수 보혈로 깨끗이 씻어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은혜이며 신비입니까?!

댓글목록

자나깨나예수님님의 댓글

자나깨나예수님 작성일

은혜로님 감사합니다.
주신 내용들 성령님께서 저에게도 깨달음으로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나깨나예수님님의 댓글

자나깨나예수님 작성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니라.(빌립보서 3:18)
은혜로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예수님 아니면 큰일 날 뻔한 존재이고 꼭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만은 알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사역자도 아니요 사명자도 아니요 그러고 싶은 생각도 조금도 없으며 다만 나만이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함께 구원의 길로 같이 걸어가는이가 많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입니다. 위의 말씀이 저의 심정입니다.
한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의 생각까지도 아시는 듯 하시며 남의 믿음을 판단하시는 듯한 조언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질문에서 벗어나서 혼란스러울 정도로 곁가지가 많은 조언은 가득이나 궁금해서 질문한 사람에게 더 어렵게 할 수도 있음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성령님께서 말못하는 나귀를 통해서도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니 은혜로님이 말씀들 중에서 제게 주신 말씀이 있을 것으로 믿고 읽으며 반추해보겠다고 댓글을 올렸는데 그것을 진심으로 안 받아주시는 듯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댓글의 댓글 작성일

네.
'자나깨나예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좀 과민하게 반응한 것 같고, '자나깨나예수님'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댓글은 삭제했습니다.

다만, "자나깨나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성령님 의지하심으로
더욱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사랑하고
더욱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진심이라는 것만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믿음과 사랑 안에서 붙드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자나깨나예수님님의 댓글

자나깨나예수님 작성일

네 요즘 세상에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단지 한분 하나님아버지를 섬기며 사랑한다는 것으로
깊은 관심과 염려해주심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은혜로님 말씀대로 제가 영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의지하지 않고
저의 노력과 애씀으로 영혼을 인도하려 했던 것은 맞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어느 모임이나 만남에서도 결국은 저의 입에서 예수가 나오고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할 마음도 때로는 안 할려고 다짐을 하지만 결국은 예수이야기를 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제 자신을 참 이상하게
봅니다.
은혜로님의 조언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댓글의 댓글 작성일

'자나깨나예수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저도 과거 20대 초반 선교단체에서 몇 년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 역시 저의 혈기를 의지하고 선교단체의 조직의 힘을 의지하고 지식을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어느 때보다 삶은 순결했지만, 이상하게도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말씀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청년의 정욕을 쫓지 않고 헌신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었지만,
자기 힘과 자기 지혜와 자기 혈기를 버리지 못했던, 좌충우돌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형제님!
(형제님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면 말씀해 주세요.)
영혼에 대한 열정과, 믿음과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방법론적인 문제는 앞으로 점점 개선되고 성장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성령님 의지하면
결국 성령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이끌어 가시더라구요.

그리고 예수님 자랑하고 증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자꾸 억제 시키면 큰일 납니다.
입 꾹 다물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예수님 좋아하고 사랑해서 자랑하고 증거하는 그 마음을 억지로 막으면 안 되지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아도, 그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면, 남들이 그러든가 말든가 어디서나 예수님 자랑하세요!!
듣든가 말든가, 예수님 자랑하고 증거하다 보면, 그게 헛된 일 같아도 언젠가는 꼭 열매를 맺게 되더라구요.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0-11)

(위의 말씀도 제가 선교단체에서 훈련 받을 때 부지런히 외우던 말씀인데, 이럴 때 써먹게 되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씀이 증거하고 있으니
부지런히 예수님 자랑하시고 복음 증거하시면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다만, 내 열망이 넘치는 만큼 더욱 성령님 의지하시면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이 얼굴의 광채로 나타나고, 그로 인해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만큼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랑하게 된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서 규칙적으로 그 시간에 자신을 드려 보세요.
(너무 율법적으로는 하지 마시고요.)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이 차고 넘치는 것을 경험하실 겁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이치랍니다.
내 안에서 차고 넘치는 그 임재와 은혜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랍니다.
(제 자신은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남들한테는 이러쿵 저러쿵 잘도 말을 하네요.ㅎㅎ)


'자나깨나예수님'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자나깨나예수님님의 댓글

자나깨나예수님 작성일

감사합니다.
올리신 글 잘 새김질 해보겠습니다.

요한님의 댓글

요한 작성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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