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죽으리라'에 대한 내용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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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8-06 00:09 조회5,3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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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제가 올린 글을 읽고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해주셨기에 이에 대해 내용을 보완하고자 합니다.
먼저 해당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정녕 죽으리라’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눈이 곧 밝아져 벌거벗은 것을 알아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끄러워 나무 가운데 숨었습니다. 영생하는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지만 결코 먹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육체의 죽음을 거쳐야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죽음), 가장 친밀해야 할 부부 간에도 서로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관계의 뒤틀림(죽음), 흙에서 취해졌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육적 종말(죽음), 이 모든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빚어진 결과, 곧 ‘정녕 죽으리라’입니다.
위의 내용대로라면 아담(하와)이 죽음에 처하게 된 것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 그렇게 되었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고 있고, 말씀의 바른 가르침 또한 아담(하와)이 죽음에 처하게 된 것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기 전에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데, 선악과를 먹게 됨으로 인해 그것이 죽음으로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먹기 전에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생명, 즉 생령이 되었는데, 이 생명은 살리는 영이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글의 내용은, 자칫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죽음에 처하게 되었다고 오해하기 쉽게 씌어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잘 지적해 주셨고, 지적해 주신 분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글이 표현된 것 같고, 제 의도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정녕 죽으리라'를 받아드린 결과를 강조한다는 것이 그렇게 오해를 사도록 표현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변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다소 아쉬움이 있어 말씀을 드리자면, 이곳 홈페이지는 한 편의 글을 게시하는 데 일정한 용량이 있어서 그 용량을 초과하면 글이 잘리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저의 경우 대체로 긴 글을 올릴 때가 많은데, 이번에 올린 글도 끝까지 다 올라오지 않고 글이 중간에서 잘리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파일 형식으로 글을 올렸는데, 파일 형식은 아무래도 번거로운 면이 있어서 다시 글을 게시판에 직접 올렸고, 그 과정에서 글이 잘리는 현상을 방지하고자 '자나깨나예수님'께 드리는 개인적인 당부의 내용을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악과에 대한 내용은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그만큼 더 추가하고 보완해야 할 내용도 많았지만 게시판 편집 용량이나 개인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글의 내용을 더 이상 확대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특히 선악과 사건에 대한 영적 이해와 깨달음은 성령님의 열어주심과 가르치심이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저 역시도 신성엽 목사님의 창세기 말씀을 수십 시간을 투자하고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되었던 만큼, 더 이상의 설명과 내용의 확대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기준, 즉 성령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모든 말씀이 다 그렇지만 특히 이 '선악과'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성령이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 말씀의 바른 뜻을 갖는 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일 이 선악과 사건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없다면, 왜 예수님이 오셔야 하고 우리가 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대신해 죽으셨고 또한 부활하신 그 사실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고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언젠가는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믿음이 이 선악과 사건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그저 십자가 은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봅니다.
제 자신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신성엽 목사님을 만나면서, 제가 갖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겉껍데기와 같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많은 부분 제가 잘못 믿어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특히 선악과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고 잘못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데에는 많은 고통과 아픔, 시간이 요구되었는데,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신성엽 목사님 외에는 그렇게 가르치는 분을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신성엽 목사님이 가르치는 내용이 옳은 것인지, 베뢰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구하고 묵상하고, 신 목사님의 창세기 말씀 시리즈들을 듣고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결론을 내리고자 했는데, 제 나름의 결론은 '신성엽 목사는 이단이다'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나름 신성엽 목사님에 대해 이단 판정을 내렸음에도, 제 영만은 '신성엽 목사의 가르침이 옳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단으로 판정했으므로, 아니다 싶으면 깨끗이 돌아서면 될 것을, 이상하게도 제 영의 음성은 '신성엽 목사님이 옳다' 하는 것이었고, '네가 옳든지 신성엽 목사님이 옳든지 둘 중 하나는 옳은 것인데, 하나가 옳다면 나머지 하나는 그른 것이다' 하는 나름의 논리적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악과 사건을, 다시 말해 신 목사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저의 이성이 지옥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고통과 죽음을 경험해야 했고, 신 목사님이 늘 강조하셨던 것처럼,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오실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녕 죽으리라'를 받아들여야 그 죽으리라의 바통을 이어 받아 예수님이 생명으로 오실 수 있다, 하신 그 말씀이 제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해도 안 되니, 결국에는 깨달아 보려는 그 생각도 버리게 되고, 내 이성에 사망 선고가 내려지니 오로지 예수님만 부르고 또 부르게 되더군요.
그리고 결국 내가 죽고 나서야 아침에 돋는 태양 빛처럼 서서히 이해와 깨달음의 빛이 캄캄한 제 이성의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죽자, 부활이 있었습니다.
어정쩡하게 죽은 척했을 때는 절대 부활은 없었습니다.
완전한 내 이성의 죽음, 그것만이 열쇠였습니다.
'정녕 죽으리라'를 받아들여야만 그 바통을 이어 받아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께서 깨달음의 생명을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는 제 경험담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출발이자 완성은 바로 '선악과' 사건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녕 죽으리라'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그 터가 되어야만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다시 오심이 빼대를 이루어 완전한 집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정녕 죽으리라'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함께 실제로 '정녕 죽으리라'를 받아들임으로 예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과 영광을 얻게 되기를 구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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