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해 생각해 보는 며칠이었습니다.
저의 두 사례를 통해 여러분께서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나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자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 사례 하나
어떤 분이 제 블로그에 예배에 대한 질문을 해오셔서 그분의 질문과 제 답글(댓글)을 올립니다.
답글을 너무 급하게 올려서 좀 어수선하지만 가려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질문(방문자) : 축도예배랑 장례예배가 왜 잘못됐는지 알려주실수 있나요??
답글(나)
먼저 예배에 대한 의미부터 살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예배란 '신이나 부처와 같은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하는 의식. 또는 그런 의식을 행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즉 예배란 사람이 아닌 신 또는 초월적 존재에게 경배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인데, 지금 교회 안에는 초월적 존재가 아닌 사람을 경배하는 예배가 너무 많습니다.
예컨대 무슨 축하예배라든가 기념예배라든가 뭐 이런 식의 예배가 있는데, 이들 예배는 누구를 기념하고 기리는 것인가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한경직목사템플턴상수상기념예배>가 과거에 한경직 목사 생전 시 영락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이 예배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이신가요, 아니면 한경직 목사인가요?
예배 순서에 말씀이 있고 기념이 있고, 하나님 은혜로 수상했다는 감사가 있다 하더라도, 이 예배는 엄연히 하나님이 아닌 한경직 목사를 기리고 기념하는 예배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다면 '예배'라는 용어 대신 '수상기념행사' 등의 형태로 용어 자체를 바꿔야 하고, 그 행사 순서마다 혹여 하나님 아닌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부분은 없는지 철저히 살펴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됐든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이런 기념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기보다는 사람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국어사전적 의미로 단순히 신이나 부처와 같은 초월적 존재가 예배의 대상이라면 다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부처나 여타 다른 신을 믿는 자들이라면 그들이 믿는 대로 그들의 초월적 존재에게 예배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삼위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 자들로서, 우리가 예배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예컨대 장례예배 같은 경우 겉으로는 예배가 드려지지만 과연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고 있는 귀신들이 그 예배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은 자를 위하지 않고 남은 유족들을 위한 예배라고 하지만, 남은 유족들을 위한 예배라니요? 예배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신데, 남은 유족들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일까요?
물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들을 위로한다는 것으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과 기도와 경건함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받아 주는 예배이겠지 생각하면 이건 엄청 착각이요 망령된 것입니다.
또 한편, 망자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것도 금해야 할 것입니다.
영정 앞에 헌화를 하고 묵념을 하는 것도 그를 기념하고 예배하는 것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여 저는 문상을 갈 때 부조금은 내고 유족은 만나 위로는 하지만 절대로 영정 앞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유족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헌화도 하지 않고 묵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유족들이 차려주는 음식은 먹습니다. 그 음식은 망자를 위한 것도, 귀신을 위한 것도 아닌 저를 위해 차려준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어머니 장례예배를 교회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죄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것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장례예배며 추도예배며 이런 것들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돌이켜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기일이 되어서도 기독교적 추모예배 형식으로 하지 않고, 형제들 앞에서 영생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대체했고, 예배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해서 형제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돌아보도록 초점을 맞추어 진행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식구들이 준비한 음식을 서로 나누었고, 영정 사진도 꺼내지 않았고 일체 다른 것은 생략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하고 있는 무슨 무슨 예배니 기념이니 하는 것들을 철저히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분별하지 못하고 관행적으로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관행적으로 행하기에 덮어놓고 따르고, 목사님들이 괜찮다고 하니까 무조건 믿고 행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능히 분별해야 할 때입니다.
예배에서 사용하는 용어 하나 하나, 순서 하나 하나,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관행 하나 하나 철저히 검증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일례로, 성가대 찬양이 끝나면 많은 교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고, 그들이 부른 성가에 감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분별해 조심해야 합니다. 찬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성가대의 수고와 아름다운 선율에 감사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오직 삼위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참된 신이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며, 우리가 예배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댓글이 길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점검하고 돌아보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예배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이 영광 받고 내 기쁨을 위하는 것은 없는지 늘 살피고 조심하여 경계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 사례 둘
최근 자의반타의반으로 아이들마저 다니던 교회를 떠나게 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교회를 다녀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야 혼자 인터넷으로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예배가 되었지만 아이들까지 그렇게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아이들이 다닐 만한 교회를 찾아야 했습니다.
기도하며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저와 가장 친한 친구가 다니던 교회가 생각났고, 남편에게도 아이들이 새로운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을 대략 이야기했더니 남편 역시 제가 생각하던 친구 교회를 추천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서 제가 생각하던 교회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 가운데 성령께서 남편의 입을 통해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감동이 왔고, 더 이상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좋은 교회를 찾아 섬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더 이상의 고민이나 갈등을 끝내야 했던 이유는, 좋은 교회를 찾는다며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직 믿음이 약한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컸고, 무엇보다도 교회가 무슨 물건도 아닌데 소핑하듯 여기저기 기웃거린다면 그 자체로서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제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섬길 교회를 찾는 것은 성령의 인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했던 것이고, 믿고 구했기에 이런저런 생각이며 갈등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제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한 번 결심한 것은 어찌 됐든 밀어붙이는 성격인지라, 다음날 아이들을 데리고 친구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했는지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남편과 제가 번갈아가며 설명을 했고, 아이들도 조금 당황해하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잘 받아들였습니다.
새로 다니기로 한 교회가 엄마랑 제일 친한 친구의 교회라는 점, 전에도 한 번 나간 적이 있어서 전혀 낯설지는 않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이 미술치료를 받았던 선생님이 주일학교 교사로 있다는 점 등이 그나마 아이들이 받았을 당혹감과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준 듯했습니다.
첫 주 예배를 약간은 낯선 마음으로 드렸고, 그리고 엊그제 두 번째 주일이었는데, 어버이주일이라고 했습니다.
5월 둘째 주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어버이주일로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지키는 게 옳은 줄 알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처음의 그러려니 했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목사님의 설교가 있고, 폐회 찬송을 부르기까지, 예배의 주제며 대상이 누구인지 참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주일로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배 시간 내내 저는 예배의 대상이 삼위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어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오로지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라는 내용과 예화가 전부였고,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하나님에 관한 내용은 단 한 번도 언급 되지 않았으며, 폐회 찬송마저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하며 부르는 <어버이 은혜>였습니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고, 왜 그런 노래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 폐회 찬송으로 불러야 하는지 선뜻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찬양할 대상은 누구이며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저는 힘차게 폐회 찬송을 부르는 교인들처럼 마냥 따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폐회 찬송뿐 아니라 예배 중에 불렀던 찬양 곡도 ‘어버이 은혜’에 관한 것 일변도였습니다. 찬송가를 펴서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의외로 절기나 행사에 관한 찬양 곡이 많이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런 류의 찬양은 가사(내용)도 우리가 부르는 찬송의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노래하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곡들이 너무나 많은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불편한 마음을 친구에게나 목사님에게 선뜻 표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니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교인이 교회와 예배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도 그렇고, 특히 목사님과는 아직 신뢰 관계가 쌓이지 않은 단계에서 말을 꺼냈다가는 자칫 저를 비판하고 정죄하기 좋아하는 교인으로 여길까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났고, 오늘 드디어 이 문제로 친구와 설전을 벌이게 됐습니다. 때마침 친구와 업무적으로 채팅(사내 전산망)할 일이 있었는데, 어찌 하다 보니 어버이주일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예배에 대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친구 역시 저와 같은 복지 공무원인데, 이 친구만큼 신실하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도 만나기 힘들지 싶을 정도로 제가 신뢰하고 사랑하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입니다.
친구의 주장은 어찌 됐든 사람(어버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 감사할 수 있다면 예배의 형식이나 내용은 어떻든 큰 문제는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저의 주장은 우리가 예배하는 예배의 대상은 물론 예배의 내용이며 형식도 오직 하나님(말씀)만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간에 어찌나 의견이 팽팽한지, 결국 친구는 욥을 비유로 들면서 저를 은근히 욥과 같이 교만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꽉 막힌 사람으로 몰아세웠고, 그런 친구의 말을 듣는 제 마음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제 마음도 마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배해야 할 분은 오직 삼위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는 것과, 그 어떤 고상한 목적이나 수단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제 주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심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더라도 그 예배가 옳은 예배인지 아닌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고, 그러기에 예배의 기준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되어야 하고.....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기에(요4:24)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예배는 우리의 영과 진리이신 말씀으로 능히 분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서로 간에 의가 상하고 관계가 깨어질 수도 있을 만큼 치열한 설전이 오고갔지만, 결국 친구도 저도 서로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컸기에 한 발짝씩 양보하는 것으로 싸움은 종결됐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그런 예배는 잘못된 예배라고 성령께서 말씀해 주셨다고 했고, 친구는 같은 하나님이시니 과연 제가 말한 것들이 옳은 것인지 주님께 기도로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친구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했습니다.
그렇다고 성령께서 직접 내게 음성으로 말씀해 주신 건 아니고, 내 영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분별한 것이니, 나를 무슨 신비주의자로 여기지는 말아달라고.
서로 사랑과 믿음 안에서 기도하며 섬기자고.
너나 나나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 아니냐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니 네가 보기에 꽉 막히고 교만해 보이는 나를 네가 용납해야 할 것이고, 나 역시 너를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성령께서 우리를 함께 이끄셨으니 앞으로 또한 당신의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를 인도해 가시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