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여목사 제도에 대한 개인적인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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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13-07-08 23:10 조회7,61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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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
(여목사 제도에 대한 개인적인 소고)
1.
최근 chevy님께서 올린 여목사제도에 대한 질문글을 계기로 여목사제도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생각해 보고 말씀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여목사제도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던 터라 신성엽 목사님을 좀 더 일찍 만날 시기를 놓치기도 했고, chevy님께서 질문글을 올리긴 했지만 누가 올리든 올릴 것이라는 생각에 평소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신경이 쓰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신성엽 목사님의 설교 영상이 유튜브를 비롯한 여타 카페에 올려졌지만 단지 신성엽 목사님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폄훼되고 판단 받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하간 이런저런 이유로 여목사제도에 대한 성경적 입장 정리가 필요하긴 필요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해오던 차에 chevy님의 글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며칠 고민하며 생각들을 정리하고 여러 말씀들을 찾아 살펴보기도 했지만 해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쟁점화 될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를 괜히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물방울님과 끝까지사랑님이 좋은 답글을 올려 주셨으므로)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계기로만 삼기로 하고 글을 쓰던 것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에베소서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쓰다 만 글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는지 종종 생각이 났고, 어느 순간 제 마음 가운데 성경에서 여성과 남성이 차별 받은 내용의 구체적인 경우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섬광처럼 ‘슬로브핫’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모세가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배분할 때 자손 중에 남자가 없어서 여자 후손들이 땅을 분배 받은 경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관련 부분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
이는 므낫세의 종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오만 이천 칠백명이었더라(민26:33-34)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으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가로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 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찌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찌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지니라(민27:1-11)
슬로브핫은 므낫세 자손으로 불행히도 아들이 없이 딸만 5명을 두었는데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광야길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배분하는 때가 되어 슬로브핫의 종족들은 아들이 없는 관계로 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됐고, 이에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모세와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나아가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좀 더 쉽게 풀어 보면, 전통적이고 문자적인 해석대로라면 슬로브핫의 종족은 ‘아들(남성)’이 없기 때문에 땅을 분배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슬로브핫의 딸들(여성)은 어째서 아들(남성)만 땅을 분배 받을 수 있고 단지 딸(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자기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어 지금 없기는 하나, 아버지의 죽음은 고라 자손들처럼 여호와께 대한 반역의 결과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죽을 때가 돼서 죽었을 뿐인데, 만일 땅을 분배 받지 못한다면 고라 자손들처럼 불신앙과 반역을 꾀한 무리들이나 받을 수 없는 것인데 자신들의 아버지는 그 죄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땅을 분배 받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족속의 전반적인 여론은, 비록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슬로브핫의 딸들이 땅을 분배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자손 중 ‘아들’에게만 땅을 분배하라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법)이므로 억울하고 분해도 수긍하고 포기하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고, 이스라엘 족속 중에는 일부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동정적인 반응도 조금씩 나타나는 것을 보고 모세가 이 문제를 여호와께 가지고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슬로브핫의 딸들이 말하는 것이 백번 옳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자손들과 똑같이 그들에게도 땅을 분배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구약의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가 오늘날 여목사제도에 대한 준거(遵據)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준거는 패러다임(paradigm), 다시 말해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은 물론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규정하는 근거 틀이 된다는 것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준거는 여호와의 명령, 곧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제시하신 그 준거 틀을 스스로 뒤엎는 판결을 내놓습니다. 남자(아들) 자손에게만 땅을 분배하라고 해놓고 어느 순간 여자(딸) 자손에게도 땅을 분배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족속의 반응은 유추컨대 상당히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한 틀을 스스로 뒤엎는 판결을 내리셔야 했던 것일까요?
저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절대 자신의 성품을 거슬러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분배하면서 분배의 기준을 아들(남성)로 정한 것은 당시의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를 인정하셨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해 당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기를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회적 질서 유지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슬로브핫의 딸들은 결코 땅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지만, 또 한편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차별 받거나 소외당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위해 기준을 정하기는 했지만, 어느 사회에나 예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기에 이를 위한 예외적 기준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만일 남성(아들) 혹은 여성(딸) 중 아무나 유력한 자가 분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기준을 정했다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야말로 혼란과 무질서가 초래되고 급기야는 공동체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일정한 선에서 제동을 걸어주지 않으면 절대 끝이 없고 그 끝은 경쟁과 싸움일 뿐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유들로 인해 일정한 기준을 정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기준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해 놓은 기준을 스스로 뒤집는 판결을 내리면서까지 슬로브핫의 딸들(적은 무리이지만 이들에게 동조하는 무리들)과 이스라엘 공동체 간의 분열을 원치 않으셨고, 나아가 슬로브핫의 딸들로 대변되는 소수의 무리도 결코 소외 받지 않기를 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어지는 하나님의 판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아들이 없을 경우에는 딸이, 딸도 없을 경우에는 그 형제에게, 형제도 없을 경우에는 그 아비의 형제(삼촌)에게, 그 아비의 형제도 없는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라는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경우까지 자세히 제시해 주시면서 이스라엘의 판단 근거로 삼게 하신 것입니다.
3.
앞서 제가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가 오늘날 여목사제도에 대한 준거가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요,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여자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명시된 구절이 없기 때문에 더욱 이 경우가 좋은 준거 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여자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 왜 없느냐고 반박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주로 근거 자료로 제시하는 다음의 구절들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2:8-15)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고전14:34-35)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
위의 구절들은 아주 명백하게 여자는 교회에서 일체 입도 뻥긋하지 말고, 모르는 것은 집에 가서 조용히 남편에게 물어보고, 남자를 주관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고, 감독(목사)은 분명 남편(남자)만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식의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절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는 말씀들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위의 말씀들을 여목사제도를 반대하는 근거 구절로 제시하곤 합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이 구절들에 발목이 잡혀 제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을 해왔고, 또 오랜 동안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그 결과 신성엽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말씀을 들어보기도 전에 일단은 거부감부터 보였고,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성엽 목사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아, 아무데서나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이 말씀은 성령께서 열어주시고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씀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이 성령께서 열어주시고 말하게 하심을 따라 주시는 것임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또한 성령이신데, 성령과 말씀을 기준 삼아 신 목사님의 말씀이 참 말씀임을 제 영은 분별할 수 있었고, 사모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 특히 남성 목회자들이 신 목사님의 말씀을 단지 여성 목회자라는 이유만으로 폄하하고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제시한 구절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번에 chevy님께서 올린 질문글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위에 제시한 말씀들을 살펴보게 되었고, 또 물방울님과 끝까지사랑님의 답급들이 많은 도움이 되면서 이 구절들에 대한 종합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사랑님께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듯이, 1세기 당시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특히 억압 받고 소외 받아 왔던 여성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껏 무시 되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여성의 권리와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지극히 좋은 현상이지만, 이것이 이단 사상과 결합하면서 도리어 교회 공동체를 위협하고 급기야는 교회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이단 사상은 다른 것이 아니고 영지주의적 가르침인데, 끝까지사랑님께서 잘 설명해 주신 것처럼, 영지주의는 육(육체)을 부인하고 영(정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였기에 그 결과 육에 대해 지나치게 부인하거나 금하게 되는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으리라 하셨으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1-3)
영지주의자들은 육을 부인하고 정신(영)을 숭상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육체적 결합이 필수인 결혼을 금하는 것이 당연했고, 먹어야 살 수 있는데도 정신적 고양을 위해 음식 섭취를 거부하고 수도와 금식의 생활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부인하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한 사상으로, 이에 대해 성경 말씀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은 영지주의 사상을 따르는 자야말로 예수를 부인하는 자요,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한2서 7절)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하나님(영)이시자 완전한 사람(육)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영으로 오신 하나님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건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온갖 고양된 것들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결국에는 사람들이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합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쫓아 헛되이 과장하고(골2:18)
만일 예수님께서 영으로만 오셨다면,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수가 없는 것이고, 이는 결국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다(히9:22)는 말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
성경 말씀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혈육, 곧 육으로 오셔서 피 흘려 죽어야만, 죽음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마귀를 멸할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또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에-다시 말해 피에 종속돼 있기에-(레17:11) 반드시 피 흘려 죽으셔야만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며, 그 피 흘려 죽는 죽음만이 효력이 된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사상은 단지 육체를 부인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육체로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하고, 나아가 개인의 신앙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까지 위협하는 거대한 악의 뿌리로 작용하는데, 만일 이런 영지주의적 사상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가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당시 영지주의적 사상은 얼마나 교묘하고 또 매력적인 것이었는지, 억압 받고 소외 받던 여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고, 이 여성들의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커지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력까지 얻게 되어, 특히 남성들은 물론 교회 공동체 전체를 뒤흔드는 악의 축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딤후3:6-8)
문헌에 따르면 당시 여성들(영지주의적 이단 사상에 물든 여성들)은 결혼을 부인하고 자녀를 낳는 것마저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바울은 이 누룩과 같은 사상을 따르는 여성들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계의 차원을 넘어 아예 뿌리부터 잘라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니 디모데전서2:8-15 말씀이나 고전14:34-35 말씀과 같은,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무시하는 듯한 강도 높은 발언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결코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롬16:1-6)
뵈뵈는 자매, 즉 여자인데, 여자 집사인 뵈뵈를 바울은 로마 교회에 추천을 합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부부인데, 브리스가는 여성입니다. 부부가 바울의 사역에 동역자로 함께 일했는데, 성경을 보면 항상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먼저 기술된 것을 봅니다. 아마도 아내인 브리스길라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리아 또한 여자입니다.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전16:14-15)
루디아 역시 여성으로, 루디아를 통해 빌립보교회(제 기억에는 빌립보교회가 맞는 것 같은데, 틀렸다면 양해를 구합니다.^^)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정황과 말씀들을 살펴보건대, 분명 바울은 여성들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디모데전서나 고린도전서의 말씀들을 보면 교회 안에서의 여성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사뭇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바로,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특히 영지주의사상과 같은 뿌리 깊은 이단 사상으로 인해 교회 공동체의 존립마저 흔들리게 된다면, 천하에 바울이라도 아예 싹을 잘라 버리는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4.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시고, 어느 누구라도 공평하게 사랑하고 돌보는 분이십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9:14-15)
또한 하나님은 남자만 더 사랑하고 여자는 덜 사랑하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모두를 사랑하시며, 남자와 여자 모두를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 아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6-28)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동일한 복을 주셨으며, 남자와 여자 모두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이 땅에 가득히 채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26-31)
자, 그렇다면, 이제 여자는 절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는 남성들의 주장과, 왜 남자만 목사가 될 수 있고 여자는 될 수 없는지 묻는 여성들의 물음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갈 모세와 같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까?
“왜 남자만 목사가 될 수 있고 여자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까?”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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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작성일
개인적인 생각이라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양해를 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좀더 넓은 마음으로 목회자들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렸습니다.
우리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