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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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혜로 작성일23-12-20 18:14 조회6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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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근래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크게 책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목사님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목사님의 의도나 요구대로 처신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편에서는 제대로 한 것으로 착각한 경우가 종종 있었고, 때로는 목사님의 의도를 잘못 파악해 제 편에서 오해를 하거나 목사님으로 하여금 오해하도록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목사님께서는 저를 책망하시거나 탓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라 서로 오해할 수도 있고, 오해를 했다면 오해 되는 일은 풀면 되는 것이기에, 인간적인 문제나 실수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근래 제가 목사님께 잘못한 것이 있었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시지 않고 아주 크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의 이야기에 제가 동조를 하게 되었는데, 이게 영적으로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그게 아니구요…….’ 하는 말이 목구멍에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습니다.
목사님께서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너무 결론만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내 생각, 내 입장도 충분히 헤아려 주시면 좋겠는데 목사님 입장에서만 말씀하시는 것 같아 못내 섭섭한 마음도 들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목사님께 이런 저런 책망을 많이 받아 왔지만, 그럴 때마다 당혹스러웠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다를 때는 그야말로 ‘멘붕’이었습니다.
그날도 저로서는 이미 ‘멘붕’ 상태였기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목사님께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지금도 상세하게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려 했을 것이고, 어쩌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심란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용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동안도 늘 그랬지만, ‘목사님이 잘못 생각하시고 잘못 판단하셨다.’는 생각보다는 ‘제 자신을 살피고 점검하기 원하오니, 성영님, 저를 보게 해 주세요.’라고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 일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저만이 알 수 있는 저의 성격이 보였습니다.
저로 하여금 보게 하신 것은, 저의 성격 뒤에 자기도 알지 못하는 고약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자기가 자기를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보니 자기 자신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자기가 옳은 줄로 착각하며 자기 성격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고, (목사님께서) 그런 숨은 의도를 지적하시면 솔직하게 받지 못하고 반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동안 사람들에게서 솔직하다, 뒤끝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터라, 저는 제 성격이 굉장히 솔직하고 소탈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하다는 그 성격의 이면에는, 하지 않아도 될 말, 해서는 안 될 말까지도 가감 없이 하는 경우가 있었고, 남에게 상처 되는 말이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말,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말들을 ‘솔직하다’는 자기 성격에 속아서 너무도 쉽게 해 왔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일임에도,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가까운 관계이니까, 이 정도는 말해도 이해하겠지 하는 이유들로 너무나 쉽게 혀를 놀려 왔다는 것을 아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도 그동안 뭔가 불만이나 못마땅한 것이 제 안에 있었던 것인지, 이런 기회를 빌미 삼아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보니, 제 자신이 너무도 창피하고, 한심하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가 자기(실체)를 알지 못하니,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았을 것은 뻔한 사실이었기에,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새김질해 보았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의 절제되지 못한 혀의 말이 ‘육’에서 나온 것이라 하셨고, 육의 사람이 성영의 사람을 함부로 판단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갈이 사라를 판단할 수 없듯이(갈4:22-30), 인본의 생각이 성영의 생각(말)을 판단할 수 없다(고전2:14-15)고 하셨습니다.
자기(너)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하나, 다른 사람의 말에 동조하여 거들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육의 사람이 성영의 사람을 판단한 것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이 말씀(책망)을 듣는 그 순간에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자기가 자기에게 속은 줄도 모른 채, 자기가 옳은 줄로만 알고, 자기 성격을 틈타 인본의 생각으로 성영의 사람을 함부로 판단한, 크고도 중한 죄를 지었다는 것밖에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이 미련한 자를 깨닫게 하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2.
지난주 예배 시간에 예배 말씀(개와 돼지)을 듣고 있는데, 제 안에서 문득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 예수님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마16:24)고 하시지 않았니?
- 그렇지!
- 그러면 너는 너를 부인했니?
- 당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옛사람 나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어! 이제 나는,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야!
- 그러면 너는 너의 옳은 것도 부인할 수 있니?
- ?????………
- 사람들이 자기가 틀렸거나 잘못한 것은 쉽게 수긍하고 부인을 한다마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내려놓지를 못하더구나
-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인데, 자기 부인이란 너의 옳은 것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부인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네 생각, 네 뜻, 너의 옳은 것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네가 죽은 것이야.
- 네가 아무리 옳아 보여도, 하나님(성영님)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고, 네가 보기에는 아무리 틀려 보여도, 하나님(성영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이야. 옳은 것은 네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야.
- 하나님(성영님)이 세운 사람을 네가 왜 함부로 판단하니? 네 눈에 옳지 않아 보이고, 이해가 안 돼 보여도, 네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세우셨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야. 네가 하나님이니?
3.
10여 년 전, 처음 목사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것처럼 귀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충족되지 않으니, 타는 목마름, 영혼의 허기로 생명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던 중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목사님의 말씀을 만났고, 배부름과 만족과 생명의 풍성함을 얻었습니다.
나름 괜찮은 신앙인이라 생각했고,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을 통해 보내신 레마의 말씀에 비춰 보니, 거짓과 인본으로 찌든, 종교인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두멍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인본의 지식과 열심으로 행해 왔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음에도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 주일예배 등 예배라는 예배는 빠지지 않았고, 주일학교 교사, 구역의 총무 일까지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된 것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살도록 교회도 교인들을 가르쳤습니다.
바쁜 중에도 새벽이면 QT를 빠지지 않으려 했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안에 생명(예수님)이 없으니, 늘 허기지고 목말랐습니다.
어느 날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이 저를 사로잡았고, 무슨 뜻인지 알고자 무수한 세월을 고민하며 분투하던 중, 목사님을 통해 보내신 레마의 말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만나고 처음 2년 동안 매일 1시간씩,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독일, 아프리카…… 세상 모든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나 제 자신을 위해서나, 그 어떤 다른 것을 위해서도 아닌, 오직 목사님의 말씀이 세상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기만을 기도했습니다.
만일 지금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라고 하면 5분도 못 할 기도를, 그때는 매일 1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제 마음에 ‘과연 이게 이루어질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 제가 생각해 보아도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세상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지만,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목사님의 말씀이 온 세상을 덮기를 원합니다. 내게 생명의 말씀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이니, 이 말씀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하고 무식하게 기도했습니다.
2년이 지난 후부터는 더 이상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되지 않아 기도를 중단하게 되었지만, 저는 지금도 그 기도가 언제쯤 이루어질지 가끔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듣고 잊어 버리셨나?…….
어쩌면 천년시대에 가서나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지나온 세월들을 돌이켜 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기쁘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저의 부족하고 모난 모습만 부표처럼 떠오릅니다.
그동안의 세월 동안 나는 얼마나 이 말씀으로 세워진 믿음이 되었는가?
이 말씀을 받아 믿음 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힘썼는가?
죽으면 죽으리라의 각오로 이 말씀으로 살고자 했는가?
말로만, 입술로만 이 말씀을 높인다고 하고, 실제 삶으로는 이 말씀을 무시해 오지는 않았는가?
이 말씀을 만난 이후로, 나는 얼마나 변화가 되었는가?
자기에게 한없이 관대할 수밖에 없는 자기 기준이 아닌, 남들이 보았을 때 나는 얼마나 변화되고 성숙되었는가?
이런 질문들에 선뜻 힘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는 자신을 보면서, 아직도 갈 길이 먼데도 다 이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교만했고, 겸손하지 못했고, 되지도 않았으면서 된 척 자신과 남을 속여 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했다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요10:34-39).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셨으니, 성영님이 보내신 말씀을 받아 전하신 목사님의 말씀도, 인간의 말이 아닌 신(성영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처음 목사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동일하게 성영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솔함으로 인해 마치 목사님의 말씀을 대적이라도 하는 듯한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 큰 죄입니다.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 외에는 돌이킬 방법이 없기에, 마음을 찢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시는 아버지께 용서와 긍휼을 구하고 또 구합니다.
그러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내 안의, 나도 알지 못했던 숨어 있는 악한 의도(사단의 성품)를 뿌리째 뽑아 버리라고(죽음에 완전히 내줘 버림) 드러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육의 생각, 인본의 생각이 무엇인지 더욱 확실히 알게 하시고, 육의 사람이 성영의 사람을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옳은 것도 부인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시고자 친히 경험케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순종케 하시고자(살전2:13),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받아 높인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 아니라, 실제 능력을 갖추고 행함으로써 말씀을 존중하고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미련한 자를 책망하시고, 돌이키게 하시고, 싸매어 주신 목사님과 성영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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