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와 침례자 요한의 관해 궁굼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왕가의제사장 작성일24-03-11 04:17 조회558회 댓글2건관련링크
본문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11:11-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3:29-
안녕하세요.형제님들~!!
오래전부터 궁굼한 말씀이 있어서 질문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계속 궁굼증을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무슨 말씀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테넷을 찾아 보자니 또 이상한 소리들을 듣게 될 것이 뻔하고,
제 스스로는 알 수 없으니 '예수님의 교회'에 물어보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네요.
궁굼한 것은...
침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는 말씀은...구약에 아브라함도 있고 모세도 있고 다윗등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 하나님의 시선으로 볼 때는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는 말씀이 맞는거 같습니다. 모태로 부터 성영님의 충만함을 입었지만 아마 사역을 시작 하기 전 30년 동안,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과 물두멍과 등잔대를 거치는 훈련을 철저히 받았을 것이구요. 광야에서 메뚜기나 석청, 낙타털로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지낸것도 그렇구요.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선포하고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되고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누린게 없는 분이네요.
그런데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 보다 크니라"는 말씀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책에 있는 작은자(미달) 큰 자(맞게 채워졌다)의 그 큰 자, 작은 자로 지금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땅에 있는 침례자 요한보다 크다 그런 말씀은 아니겠지요?
또 침례자 요한이 자신을 소개할 때 신부라고 안하고 신랑의 친구라고 했는데...
왜 신부가 아니고 친구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약 사람들은 신부가 아닌가요?
성경에서 신부를 말할 때 어떤 분들을 신부라 하는지 제가 모르기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신부란...요한계시록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신부를 보여주는데 거룩한 예루살렘과 성곽과 기초석을(사도들의 이름) 보여 주고(계21장), 엡2:20~22에서는 우리가 사도들과(신약?) 선지자(구약?)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고 연결되어 지어져 간다 그러셨으니, 신약시대 사람들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담부터 예수님 공중에 오시기전 까지 구원 받는 사람들인거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마태복음의 왕의 혼인 잔치의 말씀에서 처럼, 손님들이 있는걸 봐서는(구약사람들이 손님인가요?) 신부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 신약시대 사람들만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신약 시대 구원 받은 성도 중에서도 지성소까지 들어간 신앙만이 신부인가? 싶기도 하고....그렇습니다.
이런 주제들이 인터넷에서 요란하지만
질문 드리는 의도와 저는 그런 쪽에 전혀 관심도 없고
관계되지 않는다고 말씀 드립니다.
오늘도 예수님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하시고 승리하시길 바라며,
답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작성일
왕가의제사장님이 질문하신 내용은
<열 처녀 비유(슬기 있는 자, 미련한 자)>의 말씀과
<혼인에 모자란 포도주의 영적 의미> 말씀,
<침례를 알고 받으십니까(1),(2)> 등의 말씀을
잘 연결하여 읽으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명을 조금 덧붙이면,
예수님은 신랑, 친구는 침례 요한,
신부는 메시아 언약을 받아 가진 이스라엘입니다.
침례 요한이 자신을 신부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의 혼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혼인식 날 신랑의 친구는 신랑보다 앞서 가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며 신랑의 도착을 알리게 되고,
신부는 등(기름)과 예복을 준비하고 있다가
신랑 친구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가 신랑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사40:3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보다 앞서 보냄을 받아 이스라엘에 회개를 외치며 침례를 베풀었고,
하나님이 언약하신 메시아(그리스도)가 "내 뒤에 오실" 것임을 전했습니다.
높은 산과 같고 울퉁불퉁한 길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한 마음으로는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을 알아볼 수도 없고, 영접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기로 언약하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스라엘에 소개했고,
예수님께 직접 침례를 베풂으로써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드러내셨습니다.
피 흘리러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기다려 온 이스라엘 백성들, 곧 죄인들은
침례 요한을 통해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신부인 이스라엘(죄인)에 안내한
신랑의 친구로서 자신을 소개한 것이고,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라고 명확히 했던 것입니다.
(혼인의 주인공은 신랑이고, 친구는 들러리에 불과하기에
신랑이신 예수님은 흥해야 하고, 자기는 쇠하여야 한다고 했던 것임)
침례 요한 또한 신랑이신 메시아를 기다려온 한 사람의 신부였으나,
신랑이신 예수님을 신부인 이스라엘에 안내해야 하는 그 사명(역할)을 맡은 자로서
자신을 신부가 아닌 신랑의 친구라고 했던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역할(한계)은 죄인을 예수님께로 안내하는 등불과 같은 것으로써, 신부를 취할 수 없음)
또한,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 침례를 베풂으로써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드러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여러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것은
한마디로, 피 흘릴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피 흘리러 오실 분이 오실 것이라고 수없이 외치고 증거했지만,
직접 메시아를 만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드러낸 사람은 침례 요한뿐이었기에
여자(이스라엘의 신앙)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이 피 흘리러 오실 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증거하고, 직접 보았다고 해도,
침례 요한 역시 예수님을 맞아 영접해야 하는, 한 사람의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만나 영접한 것이 아니면, 결단코 천국에 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침례 요한이라도,
제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 모세라도,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의 종일지라도,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클 수 없는 것이고,
천국에서 아무리 작은 자라도,
이 땅에서 그 어떤 위대한 종이나 선지자보다 큰 것입니다.
이스라엘(구약)의 선지자 모세나 엘리야나 침례 요한 등은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시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들어서 사용하신 종이었을 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하나님이 친히 해산의 고통으로 낳으신 자는,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
죄인으로 예수님을 만난 자일 뿐입니다.
구약의 모세나 엘리야나 침례 요한은 종에 불과했지만,
죄인으로 예수님을 만난 자는 지극히 작은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는 후사인 것이니(롬8:17),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후사보다 더 큰 자가 어디 있으리요!!
예수님의 교회 성도님들께서 충분히 답변을 하실 수 있는 내용인데,
다들 바쁘신 것 같아 우선 제가 부족하나마 간단히 댓글을 올립니다.
(혹시 미흡한 부분은 다른 성도님들이 댓글로써 보충해 주시리라 믿고.....)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샬롬을 전합니다.
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작성일
본향님이 올려주신 답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의 댓글에 좀 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 보충을 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라고 침례 요한이 말한 것처럼,
신부를 취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신랑뿐입니다.
신부가 아무리 예쁘고 아름다워도
신부를 취할 수 있는 자는
신랑 친구도 아니고, 하객도 아니고
앞으로 신부와 함께 살아갈 신랑입니다.
구약의 믿음은
율법으로 정죄받아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
피 흘리러 오실 메시아를 기다린 믿음이었다면,
신약의 믿음은
오시리라 약속하신 메시아를 만난 믿음,
죄인으로 예수님을 만나 성영님으로 거듭난 믿음입니다.
오시리라 약속하신 분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죄를 깨끗게(처리)하셨으므로,
성영님이 믿는 자 안에 들어오실 수 있었고,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랑이신 예수님이 신부를 취한 것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믿음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믿음이었다면(히11:16),
신약의 믿음은 천국이 믿는 자 안에 아예 들어와 버린 믿음입니다.
구약의 믿음은 믿음의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은 아직 받지 못한 믿음이었다면(히11:39),
신약의 믿음은 더 좋은 것을 이미 받은 믿음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의 때까지이기에(눅16:16),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드러내 줌으로써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칭함을 받은 침례 요한일지라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좋은 것을 아직 받지 못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성영님으로 믿어 예수님과 한 몸 연합을 이룬 믿음이면,
이미 신랑이신 예수님의 신부요,
아버지의 아들이요,
영원토록 보혜사가 함께하시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천국에서는 저보다 큰 것입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주기를 간청하여 보게 되었으나,
바위틈에서 지나가시는 하나님(여호와)의 모습(등)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하나님의 지나가시는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와 계신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친히 아버지의 얼굴을 뵙는 자들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장차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영님과 함께 신부 단장을 하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