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신부와 침례자 요한의 관해 궁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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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본향 작성일24-03-12 02:50 조회5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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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는 말씀은...
그런데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는 말씀을
모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11:11-
'여자가 낳은 자 중에'하는 것은 (침례 요한의 어머니인 개인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 중에서 태어난 침례요한이
가장 큰 일을 하는 자요, 이스라엘 중에서도 영광이 크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왜냐? 이스라엘이 대대로 신앙하여 기다리며 만나기
원하던 그 메시아,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이고, 그 예수님께
침례주어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주었으므로 '구약 사람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하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성영님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았어도 성영으로 거듭나지 않고, 그냥 믿음을 가지고 죽었습니다)
'천국에서 작다' 했지만 그러나 침례요한은 예수님을 만나 침례를
주었고,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믿었고, 영접해 모셔들였기 때문에
그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질문2. 또 침례자 요한이 자신을 소개할 때 신부라고 안하고
신랑의 친구라고 했는데... 왜 신부가 아니고 친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요]3: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3: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
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침례요한이 자신이 '신랑(예수님)의 친구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와 같은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비추는 등불의 역활을 할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 오시기 약 칠백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그것을
예언을 했고, 약 사백여 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가 그것을 예언했던
사람으로 침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시면 영접할 수 있도록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예수님 앞서 보내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친구는 허물이 없는 사이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고민 따위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친구
에게 말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전부 다 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영님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내 영이 되어 주
셨다면 친구처럼 비밀 없이 성경 말씀을 다 열어서 성영님으로
깨닫게 하시고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모릅니다. 구약의 선지자
중에 예수님을 침례 요한처럼 대면하여 본 자는 결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자가(이스라엘이)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하신 말씀입니다.
질문3. 구약 사람들은 신부가 아닌가요?
성경에서 신부를 말할 때 어떤 분들을 신부라 하는지 제가
모르기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호]2: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호]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가드는 남편이라 하셨습니다. 여자의 남편처럼
책임지고 돌보시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사모해야 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뜻입니다.
구약은 언약 관계로 하나님과 정혼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정혼한 이스라엘을 맞으러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계)3:20에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으니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함께가 되어서, '함께'라는 것은
헬라어로 '프로스'라고 하는데 '프로스는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신랑의 뜻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신랑을
사랑하는 증거요, 존중하는 증거요, 신랑이 있는 곳에 신부이면 반드시
'프로스'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간 것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갔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다면 이것만큼 확실한 관계가 어디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로 더불어 먹고 나로 인하여 기쁘고 배부르셔야 합니다...
제 6 장 5장의 말씀으로 믿음이 됐는가? 말씀 중에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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