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와 비판, 그리고 판단과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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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수님의신부될자 작성일15-02-19 17:06 조회6,36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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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와 비판, 판단과 분별,,,
성령께서 알게 하시어 그것이 죄임을 깨달을 때,,, 나뿐만 아닌
타인의 그런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죄를 짓고 있는 거야,,, 저건 죄야...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저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 이렇게 해야 하는데,,, 라고 말이죠.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저건 잘못된 말씀이야,,, 왜 저럴까?,,,
한심한 생각도 들고, 저보다 신앙생활을 훨씬 오래 하신 분들,,, 예를 들어 저희 시어머니,,, 젊을 때 예수님을 직접 환상 가운데 보셨으며
먹을 것이 없어 곤고할 때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았던 분입니다 , 제가 결혼 초기엔 시어머니가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신앙적으로 말이죠,,,
허나 지금은 집도, 돈도 다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돈, 돈 하며 돈 벌 생각만 하십니다.
돈이 제 2의 생명이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으면 분명 돈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했는데,,,
그걸 볼 때,,, 저건 아닌데,,, 하면서,,, 그러지 말고 차라리 기도하며 말씀을 보시지,,, 왜 그러실까?,,, 안타깝지만 고쳐지지도 그 생각이 바뀌지도 않는 것을 볼 때에 저분도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진짜 궁금하기도 하구요,,, 저에게도 비추어 봅니다.
제가 신앙생활 잘 하다가,,, 저의 노년에 혹여라도 돈 이외 다른 것들로 인하여 제대로 된 믿음을 갖추지 못하면 아버지께 갈 수 없는 것인가?,,, 만약 끝까지 경주를 제대로 못 하면,,, 마지막은 영벌인 것인가?,,, 말이죠...
자꾸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과 판단들로,,, 제가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분별과 판단,,, 정죄하는 것과 비판한다는 것의 차이가 확실히 무엇일까요?...
너무 초보적인 질문 같아 부끄럽지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댓글목록
은혜로님의 댓글
은혜로 작성일
'너무 초보적인 질문 같아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사실 이것보다 어려운 질문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답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인데, 두서 없는 것이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조심스레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찾아오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님과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그래서 전혀 거리낌 없이 행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죄로 여겨지고 거부감이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님께서 일전에도 나누었듯이, 깎지 않은 과일을 상에 차려두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고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아니, 예배를 드리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영이신 하나님께 하면 되는 것이지, 저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노골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방식처럼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과일이며 음식을 상에 차려놓는 것은 일종의 변형된 제사 형식은 아닐까?
기도도 있고 찬송도 있고 말씀도 있으니 겉보기에는 예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일종의 변형된 제사는 아닌가?
이건 제사도 아니고 예배도 아닌, 변종 우상숭배는 아닌가?'
이런 등등의 의구심들이 들게 되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도 들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 기도하면서 분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 불편한 마음이 예전에는 없었거나 희미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자꾸 보이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전에는 우리 자신도 그것이 옳은 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도, 우리 자신도 그것이 옳은 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온전히 보지 못한, 둘 다 소경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명의 말씀을 만나 듣게 되면서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눈으로 보니 이전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치거나 함께 동참했던 것들이 잘못된 것이요 명백히 죄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분별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는 대부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일종의 고급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고급 죄라니? 고급 죄도 있고 저급 죄도 있나?'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설명하기 쉽게 하려고 명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고급 죄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롬2:1-3,21-22)
고급 죄란, 위의 로마서 말씀처럼, 남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그럼으로써 나는 그와 같은 죄를 범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나는 그보다 더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바로 제 자신의 경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는,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말씀)를 판단하고, 그분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것을 넘어 정죄하고,우리 자신이 어느새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분명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아니야.
만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맞다면, 어떻게 검은 색 가운을 입고 강단에 설 수가 있지?
어떻게 성찬식에 쓰이는 빵을 이스트(누룩) 넣은 빵으로 할 수 있는 거지?
평신도인 나도 분별이 되고 금방 알 수 있는데, 어떻게 목사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를 수 있지?
어떻게 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아, 정말 가스러워!!'
이런 말들은 다른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이 내뱉은 말들입니다.
때로는 혼자 속으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열심히 성토를 했던 말들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제 입에서 나간 말들이 부메랑처럼 제게 다시 돌아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너는?
너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 했니?
너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분별이 되고 처음부터 아니다 싶은 것은 과감하게 순종이 되더냐?
저 목사는 가짜네, 저 목사의 전하는 말(씀)은 거짓이네 하기는 쉽다만,
그가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그도 순종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사정과 이유 때문에 안 되는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
목회자가 무엇을 결단하고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
교회까지 걸려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남에 대해 말할 때 쉽게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남의 경우를 나와 같은 경우로만 생각해 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다른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게 되는데, 왜 저 사람은 안 되는 것인가?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하며 쉽게 남을 판단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나와 다른 처지와 형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쉽게 판단하게 되고 판단하다 못해 정죄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이야 어찌하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나 자신이나 잘하면 되겠네?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그랬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나를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같은 경우라면, 나는 어떤가? 하고 자신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똑같이 우매하고 어리석음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도 역시 우매하고 어리석은 처지에 있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은혜로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되고, 명백히 죄 된 것들에 대해 분별하게 되고 버릴 수 있었듯이, 그 역시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입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고 내가 은혜를 받았으니, 그 역시도 아버지의 크신 은혜와 긍휼을 입혀 주시라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혹여라도 연약함 때문이라면, 기다려 줘야 합니다.
특히나 목회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해야만 할 경우가 더더욱 크기에, 위해서 기도해 주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어떤 사역자가 자신은 성탄절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불법 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지키지 않아야겠다고 결단한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위의 목사나 담임 목사가 있는데 그들은 성탄절을 지켜야 한다고 할 경우, 문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 사역자는 사역을 사임해야 하고,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가정이 있고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문제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 '성탄절은 하나님께 불법 행하는 것이니 당연히 지키면 안 되지! 목회자가 어떻게 그런 것 하나 분별을 못 하냐? 당신, 가짜구만!' 하며 말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요?
내 자신이 그와 같은 처지라면, 나라면 분명하고 과감하게 순종할 수 있을 것인지, 그걸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나라도 그와 같은 형편과 처지라면 순종이 쉽지 않다는 것,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요?
그렇기에 쉽게,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옳으네 그르네 하기 이전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할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 줘야 할 것입니다.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다려 주는 것이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대가나 결과는 그와 하나님과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면, 잘못된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무작정 기다리면서 기도만 하고 있으란 말입니까? 하고 또 반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의 경우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명백하게 죄된 것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언급을 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넘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치밀한 존재인지, 다른 사람의 죄나 잘못에 대해 지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리에까지 우리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티는 보면서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교묘히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말해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바른 뜻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그런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이가 바로 사단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고 말해 준다는 것이 어느 순간 그를 정죄하고, 나는 그와는 다르고 그는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교 우위의 교만한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되고, 어느 틈엔가 내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다려 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자칫 마귀로 틈을 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제가 이토록 세세하게 댓글을 다는 이유는, 제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거론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신성엽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 안에서 간다는 것이 너무나 큰 은혜이며 복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 자신을 지키고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 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고,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자신이 혹여나 고급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살펴보고, 경계하고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께서 젊은 시절 환상으로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고 하셨지만, 그 환상이라는 것이 과연 하나님(성령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광명의 천사로 가쟝한 사단에게서 나온 것인지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성령님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겉에 임한 성령의 나타남과 성령의 내주하심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외적 나타남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15-21)
이 말씀이 어찌 거짓 선지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의 열매로 그 자신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 나쁜 나무는 절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매가 '돈'이라면, 그의 뿌리가 돈이지 예수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나는 어떠한가?
내 자신의 열매를 보면 되겠지요.
나에게서 맺히는 그 열매는 과연 무엇인가?
예수님인가?
젊을 때는 예수님을 맺다가 늙어서는 '돈'을 열매 맺을 수 있는가?
아니지요.
처음부터 무화과나무는 마지막에도 무화과나무이고, 처음부터 엉겅퀴이면 끝가지 엉겅퀴인 것이지요.
처음에는 양의 탈을 썼으니 양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그 탈을 벗기고 보니 늑대요 승냥이었던 것이지,
처음에는 양이었던 것이 늙어서 세상 근심에 노출되다 보니 어느 순간 늑대로 변한 것은 아닌 것이지요.
자기가 누구인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기에,
지금 내가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열매 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는지, 그것을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며, 믿는다고 하는 그것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것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으니,
하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 그 뜻대로 순종할 때에라야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
구원님의 댓글
구원 작성일
예수님의님 글 보아 저도 글을 올림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처음부터 어떻게
새워지느냐 하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고린도 교회에게 그것을 강조 하였읍니다
우리가 받은것 이상으로 더 아는것은 교만이고
자기가 선생이 되어 자기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가르치는 것은
여기에 판단은 가르치는것과 같은 뜻을 포함 함니다
마지막에 공력으로 그사람을 예수님이
판단 하실 것이다 했읍니다
받은 복음 외에 덜하고 더하고 하여
자기가 선생이되어 남을 판단 하지 말고
너자신이 지금 그 믿음의 터를 갖고있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를 갖고 가랴 사랑과 온유한 심령으로 가랴 했읍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아비가 되라 했지 선생이 되라 하지
안았읍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그 자체를 낳는 것이다 말이지요
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하면 네지식이 더해지는 것이니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님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판단 하신다고 봄니다
그러니 성령님이 예수님의님 자신을 교육 하시기 위해
그런 지혜의 마음을 주신다고 봅니다
모든것 성령님께 맡기고 더욱 목사님 말씀 듣고
성경 보세요 지혜의 성령께서 모든것 가르치고 알려 주실 것입니다
지금부터 걱정하는 것은 나의 염려로 나를 붙드는 것이니
그것은 나의 공력으로 세워지는것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는 성령님께 맡기세요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인지 성령님이 판단하는 것인지
나자신은 알것입니다
여기에서 판단은 나자신 율법의 선생이 되어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도 하나님이 받으셨으면 그도 처음에는 젖으로 먹다가
딱딱한 식물을 먹고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기까지
성령님이 양육 하시는 것이니 네가 율법의 선생이되어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은자면 세상을 판단할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판단하여 우리가 좌지 우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은 구별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으로(양심으로) 판단해서는 절때로 안됩니다 그것은 율법이죠
성령으로 판단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님의 마음속에 생명의 씨앗이 자라면
절때로 물질 때문에 염려 안으셔도 됨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납니다
그러니 달란트 사명 아시죠 세상것을 팔아 예수님을 사는것만 열심히 하십시요
성령님이 오시면 모든것하게 하십니다 염려 안으셔도 됩니다
성령님이 일 하심니다
잘못된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나무를 보고 열매를 안다고 헀읍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나자신보다 더 잘 암니다
그러니 모든 분별은 성령님이 하십니다
나도 전에는 똑같은자였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미워하면 안되겠죠 모르고 하는것이니 정죄하면 안됩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복음안으로 들어와
같은 은혜를 누릴수있도록 기도해야죠
그러나 타협은 절때 금물이라 생각 합니다